'대학 5학년'이 통과의례? 그게 문제입니다 [추적+]

김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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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졸업 미루는 '대학 5학년생' 증가
증가 배경은 당연히 취업한파 탓
문제는 파생 후유증이 크다는 것
인적 자원 효율 감소·가계 부담 증가
전문가들, 고용 구조 해결 강조해
누군가는 '대학 5학년은 이제 기본'이라고 말한다. 제때 대학을 졸업하는 게 이례적이란 말까지 나온다. 그래서인지 '졸업 유예생이 늘었다'는 분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드물다. 그렇다면 '대학 5학년생'을 이젠 통과의례쯤으로 봐야 할까. 그렇지 않다. '대학 5학년생'에 얽힌 사회ㆍ경제적 고리는 생각보다 중대한 함의를 갖고 있다.

대학에서 졸업 유예를 활용하는 학생은 해마다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 대학교 4학년 은솔씨는 얼마 전 졸업 유예를 신청했다. "아직 취업을 못했는데 바로 졸업하면 이력서에 공백기가 두드러질까 봐 걱정돼요. 졸업식도 마냥 기쁠 거 같지 않고요. 졸업을 미룬 다음 취업 준비에 더 집중하고, 스펙을 보완하고 싶어요." 은솔씨는 4학년 1학기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지만, 서류 전형에서 연이어 탈락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기정(26)씨는 취업 준비를 위해 지난 1년간 졸업을 미뤘다. 그러다 최근 하계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썼다. 취업에 성공한 건 아니지만, 졸업을 계속 미룰 순 없었다. 기정씨는 "공백기가 있으면 신입 채용에서 불리하다는 얘기를 듣고 유예를 결정했었다"며 "그동안 단기 인턴과 공모전에 참여하며 열심히 경험을 쌓았지만, 준비가 충분하다고 느끼진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 5학년생'이 늘고 있다. 형태도 다양하다. 최대 1년 혹은 2년까지 가능한 '학사 학위 취득 유예제(이하 졸업 유예 제도)'를 이용하거나, 초과 학기를 등록해 졸업 시점을 늦추는 식이다. 의도적으로 졸업요건을 채우지 않고 졸업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활용되는 방법은 '졸업 유예 제도'다. 학점 등 졸업에 필요한 조건을 다 갖춘 학생들이 졸업을 미룰 수 있게 허용한 장치다. 혹자는 '졸업을 미루는 게 요즘만의 일은 아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대학 5학년생'이 이전보다 더 늘어난 게 문제다.

지난 9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지방 거점 국립대 9곳(충북대ㆍ충남대ㆍ제주대ㆍ전북대ㆍ전남대ㆍ부산대ㆍ경상국립대ㆍ경북대ㆍ강원대)과 서울 주요 사립대 6곳(고려대ㆍ서강대ㆍ연세대ㆍ한양대ㆍ이화여대ㆍ중앙대)의 졸업 유예생은 총 9857명이었다. 2022년 6215명에서 3년 만에 58.6% 늘었다.

범위를 더 넓혀서 봐도 증가세가 뚜렷하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대학의 졸업 유예생은 1만7597명으로 집계됐다. 2022년 1만5682명, 2023년 1만4987명으로 주춤하다 다시 증가했다.

이렇듯 졸업 유예생이 증가한 배경은 당연히 '취업한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3월 발표한 '2025년 신규 채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100인 이상 기업 500곳 중 60.8%만이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신입사원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수시 채용으로 전환한 기업이 부쩍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고 신입직원을 뽑을 때 잠재력이나 성장 가능성을 중시하는 것도 아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6월에 발표한 '상반기 채용시장 특징과 시사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이 신입 채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은 요소는 '업무 경험(81.6%)'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졸업 예정자'란 신분은 이력서에 공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구직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문제는 대학 5학년생에서 파생되는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졸업을 미루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노동시장의 진입 연령이 높아져 인적 자원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김진일 고려대(경제학) 교수는 "졸업을 미루는 기간에 발생하는 직접 비용뿐만 아니라 기회비용은 학생에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개인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또 있다. 졸업을 늦추는 대학생들이 많아지면 가계 부담도 함께 커진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부모 세대의 재정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자녀가 취업에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쓰면 부모의 경제적 부담도 커진다"며 "이는 세대 간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는 중대한 문제다"고 말했다.

그럼 해결책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왜곡된 고용구조를 혁신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먼저 해소해야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은 첫 일자리가 사실상 전체 생애 수준을 결정해 버리는 구조로 고착돼 왔다. 이렇게 첫 취업의 중요성이 과도하게 부각되는 현실에선 졸업을 미루면서까지 더 좋은 일자리를 찾으려는 경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졸업 유예생이 확대하는 추세를 막기 위해선 양극화된 노동시장 간 격차를 줄이고, 다양한 경로로 이동할 수 있는 유연한 고용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소득, 근로환경 등에서 중소기업의 처우를 개선해 청년들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도 중요하다."
 



김진일 교수 역시 "한창 일해야 할 젊은 인재들이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는 건 사회적으로 큰 낭비"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는 물론, 대학과 기업 간의 산학협력 강화, 채용 방식의 다변화와 같은 종합적인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그 과정에서 신입 채용 시장에서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과 제도적 정비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5학년생'은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졸업 유예'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만, 그래선 안 된다. '대학 5년생'에 얽힌 경제적 고리는 국가경제까지 이어진다. 정부는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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