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몰수한 범죄수익서 비용 공제? 사기꾼 챙겨준 법원의 기묘한 논리

강서구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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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글로벌스탁 사건 후 벌어진 일 2편
범죄 수익 추징 취소한 2심 법원
피해자들에겐 판결 소식 안 알려  
법원 믿고 있던 피해자는 날벼락 
범죄 수익 사기꾼에게 돌아갈 수도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민사소송을 통해 알아서 하라는 사법부의 '이분법'적 사고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사진|뉴시스]


# 우리는 '글로벌스탁 사건 후 벌어진 일 1편'에서 2021년 사기 조직 '글로벌스탁'이 저지른 비상장주식 사기의 전말을 살펴봤다. 이들은 투자가치가 없는 비상장주식을 피해자들에게 팔아치워 돈을 벌었다.

그 과정에서 기업 정보의 조작은 물론 상장에 실패하면 투자금을 돌려주겠다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이 범행 기간 1년(2021년 1월~12월) 만에 1248명의 피해자로부터 193억원에 이르는 돈을 빼돌리는 데 성공한 이유다.  

# 다행히 2022년 검거된 이들은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글로벌스탁의 총잭 이○○에게 징역 12년에 벌금 5억원의 중형을 선고했다. 나머지 13명의 공범에게도 징역 2년 6개월~8년의 실형을 각각 선고했다.  

# 그렇다면 법원은 글로벌스탁 사건 피해자들의 금전적 피해까지 복구해주는 판결을 내렸을까. 그렇지 않다. 1심 법원에서 내린 추징 선고가 2심 재판에서 뒤집혔다. 2심 법원은 글로벌스탁의 범죄 수익을 몰수·추징할 근거도 범죄 수익을 특정 증거도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 사기꾼 비용까지 챙겨줘야 하나 = 2심 법원이 글로벌스탁이 피해자로부터 갈취한 모든 금액을 '범죄 수익'으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2심 재판부는 일반 상식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검찰은 글로벌스탁을 재판에 넘기면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물었는데, 2심 법원은 2017년 대법원 선고를 인용하면서 범죄 수익의 범위를 엄격하게 판단했다(대법원 2017.12.22. 선고 2017도126 49 판결). 

2017년 당시 대법원은 자본시장법 제443조 제1항 단서 및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을 이렇게 규정했다.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이란 원칙적으로 당해 위반행위로 얻은 이익(총수입)에서 거래를 위해 사용한 총비용을 공제한 차액을 말한다." 전체 피해액에서 사기꾼들이 사기를 칠 때 사용한 비용을 빼준 셈이다.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지만 법리상으론 문제가 없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다만, 따져볼 점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원한 법조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얻은 부당이익에만 죄를 묻겠다는 건 법적 상식이다"면서도 "하지만 여기엔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민사소송을 통해 알아서 하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사기꾼의 몫 = 문제는 2심 법원의 추징 취소 선고가 이상한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2심 선고로 글로벌스탁이 갈취한 범죄 수익이 사기꾼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참고: 글로벌스탁 사건은 피고인들이 대법원 상고를 취하(2023년 11월 13일)하면서 2심 판결이 확정됐다.] 

[사진|뉴시스]


글로벌스탁 사건은 2023년 마무리된 형사소송과는 별개로 각종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2심 법원의 몰수 취소 선고로 검찰의 몰수·추징 효력은 상실했지만 몇몇 피해자는 그 이후 사기꾼들을 상대로 가압류 등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피해 회복이 이뤄지고 있지만, 범죄 수익이 사기꾼들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글로벌스탁 총책 이○○가 시중은행에 맡긴 예금 49억2079만7881원을 사례로 들어보자. A시중은행은 법원 판결이 나온 지 5개월 후인 2024년 4월 이 돈을 법원에 공탁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더 흐른 지난 9월 23일 법원은 가압류를 신청한 피해자에게 배당을 진행했다. 

더스쿠프가 입수한 법원의 배당표에 따르면 65명의 피해자(채권자)에게 37억9114만8453원을 배당했다. 남은 돈은 11억2964만9428원이었다. 하지만 2심 선고로 이○○에겐 출소 이후 11억원이 넘는 돈을 챙길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생겼다. 

최근 법원의 배당과 별개로 29명의 피해자(7억2047만2407원)가 추가로 가압류를 신청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4억917만7021원이 이○○의 몫으로 남는다. 다른 피해자들이 소송 등의 절차를 밟지 않으면 남은 돈은 이○○가 가져갈 수 있다. 

문제는 또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얼마 전까지 2심 재판에서 몰수 취소 판결이 나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법원이나 검찰이 재판 결과를 피해자들에게 통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의 특성상 원고와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된 문제이긴 하지만, 피해자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김종희(가명·36)씨는 "지난해 10월 2심 재판 결과가 나온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며 말을 이었다. "법원에 판결서를 요청해서 받은 다음에야 몰수 추징이 취소된 것을 알았다. 이젠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선 변호사를 선임하고, 별도의 가압류 절차를 밟고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를 알지 못하는 피해자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돈을 날려야 한다." 

이 때문인지 형사사건이라도 피해자들에게 재판 진행 상황과 수사 과정에서 파악한 범죄자의 재산 규모 등을 고지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종희씨를 돕고 있는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은 범죄자의 처벌에만 집중할 뿐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는 관심이 없다"며 "피해자들은 범죄자를 특정하는 것은 물론 증거를 수집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이런 어려움 때문에 형사재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이후에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검찰과 법원에서 관련 자료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더 어렵게 만드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김종희씨는 "검찰이 기소 전 몰수·추징한 재산을 피해자들에게 알려주고, 법원이 재판 결과만 통보해줘도 피해자들이 손 놓고 있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신경 쓰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일부이지만 사기꾼에게 되돌아간 몰수·추징 금액. 하지만 피해 금액을 돌려받지 못한 이들도 숱하다. 이런 역설적 상황을 법원이 만들었다. 법망 안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비판할 점이 적지 않다. 사법부가 인정해준 사기꾼의 돈, 이런 합법적 결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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