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시대, 기업재난관리사를 아십니까? [視리즈]

김정덕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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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新직업 미래 보고서 14편
질적 탐구 | 박종필 기업재난관리사
안전 강조하면서 규제책만 난무
자율적 재해경감활동 지원 필요
재난 후 대처보다 예방 더 중요
기업재난관리 늘수록 안전 강화
뜻하지 않은 각종 재해는 기업 입장에서 엄청난 손실이다. 제조업일 경우 당장 생산을 멈춰야 하는 건 물론이고, 정상화가 늦어지면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방과 빠른 정상화가 관건인데, 이를 돕는 이들이 있다. 기업재난관리사다. 문제는 중대한 롤을 갖고 있는 기업재난관리사의 인지도가 여전히 낮다는 점이다.

기업재난관리사는 유망한 신직업이지만, 아직 인지도가 낮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공장에서 작업 도중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은 폭우로 공장이 침수되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현장 작업자들은 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돌발 사고나 재해 발생시 후속조치를 규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기업들이 숱해서다. 이럴 때 필요한 이들이 바로 기업재난관리사다. 이상기후 등으로 재해가 몰라보게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요한 롤을 갖고 있다. 

문제는 기업재난관리사의 존재를 아는 이들이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실제로 더스쿠프가 포털사이트 네이버(PC+모바일)에서 7월 14일~8월 14일 한달간 신직업 검색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재난관리사의 검색량은 0건이었다.  

정부가 2015년 신직업에 등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 이 문제를 기업재난관리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박종필(55) 기업재난관리사를 만나봤다. 

✚ 기업재난관리사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공기업에서 30년 넘게 근무 중입니다. 기계 유지ㆍ보수, 열배관 관련 업무, 안전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죠. 안전관리관으로 일하던 중에 '기업재난관리사 자격증 취득 과정이 있으니 지원해 보라'는 본사의 공지를 보고 도전했습니다."

✚ 기업재난관리사는 아직은 낯섭니다. 무슨 일을 하나요?
"재난에서 기인하는 기업의 리스크를 줄이는 업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기업재해경감법상 '기업재난관리 표준'에서 요구하는 업무들이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기업은 비즈니스연속성경영시스템(BCMS)이란 재해경감활동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운영ㆍ관리하며, 평가해야 합니다. 재난을 빨리 수습하기 위한 일종의 매뉴얼이죠. 이런 점에서 재난관리가 안전관리보다 더 상위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 업무 영역이 광범위한 듯합니다. 
"네, 맞습니다. 영역이 넓은 만큼 자격 요건도 다양합니다. 기업재난관리사는 자격 요건에 따라 3단계로 나뉩니다. 1단계는 계획수립ㆍ전략개발ㆍ위험평가 등 재해경감활동 실무를 담당합니다. 2단계는 정책수립ㆍ전략설계ㆍ위험평가ㆍ관리 등 재해경감활동의 수립을 대행할 수 있죠. 재해경감 우수기업을 인증하고(기업재해경감법 근거) 평가ㆍ심사하려면 3단계 자격증을 따야 합니다." 

✚ 지금 몇단계 자격을 가지고 있나요?
"지난해 3단계를 통과했습니다. 2021년 7월에 1단계를 통과했으니, 여기까지 오는 데 3년 넘게 걸린 셈이네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신재생에너지발전설비기사(태양광), 컴퓨터응용가공산업기사, 산업안전산업기사, 산업안전기사, 방재기사 등을 비롯해 또다른 신직업인 기계설비유지관리자(특급)까지 다양한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재난관리사는 그중에서 가장 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유가 뭔가요?
"일단 공공 영역에서 수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공기업은 재해경감 우수기업인증을 받아야 경영평가에서 가점을 받습니다. 지금은 인증만 받으면 가점을 주는 게 좀 아쉽지만, '인증 점수별'로 가점을 달리 주는 쪽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 민간은 어떤가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면서 민간 영역에서도 안전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요. 안전 분야가 인센티브를 많이 주는 분야가 된 것도 사실이죠. 정부도 안전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의지가 제도로 나타난다면 블루오션이 될 거라 봅니다."

✚ 자긍심도 갖고 있을 듯합니다. 
"그렇죠. 기업에 각종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고대응을 비롯해 2차 피해방지나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 등이 모두 기업재난관리사의 업무니까요. 쉽게 말해, 더 큰 피해를 막는 일이니까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소방관이 불을 끈 후에 느끼는 자긍심과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습니다."

✚ 어떤 아쉬움인가요?
"안전이나 보안을 담당하는 이들이 느끼는 고충과 비슷한 아쉬움입니다. 다름 아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기업재난관리사가 뭘 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컨설팅을 통해 재해경감활동계획을 갖추고, 리스크가 될 만한 요소들을 사전에 잘 차단하면 좋은 거잖아요. 하지만 적극적인 활약이 눈에 띄지 않으니까 인정을 못 받는 거죠. 게다가 안전 예산과 마찬가지로 재난관리를 위한 예산을 '쓸데없는 비용'이라 생각하는 경영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 재난을 예방하는 게 재난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인데도 그에 따라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기는 힘들겠군요. 
"그런 편입니다. 그래서 예방이 잘 되는 기업의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인식과 제도가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기업재난관리사의 인지도는 어떤가요. 많이 알려진 직업이라 생각하나요.
"사실 기업재난관리사는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 도전하기는 좀 힘든 분야입니다. 기업의 재난을 막겠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기계나 설비 관련 지식이 필요하고, 산업안전 관련 지식도 필요하니까요. 3단계까지 도전하려면 더더욱 그렇고요. 따라서 기존의 엔지니어들로 한정해서 기업재난관리사의 인지도를 따져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기업재난관리사의 인지도가 낮다고 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 그럼에도 기업이나 일반인에게 기업재난관리사의 역할이 알려져야 할 듯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여러 차례 말했듯 재난을 관리하는 건 중요한 문제니까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기업재난관리사 체계에서 보완해야 할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교육기간이 너무 깁니다. 1~3단계를 합쳐 총 14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하루 8시간 기준 18일 정도입니다. 이 교육을 받아야만 시험 응시 요건이 생기죠. 비용도 적지 않습니다. 3단계까지 하면 270만원의 비용이 발생하죠. 3단계까지 통과한 기업재난관리사가 130명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합니다. 물론 저로선 경쟁력이 있어 더 좋은 일이지만, 정부가 기업재난관리사를 키우려 한다면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직 기업재난관리사만으로 일정 수입을 보장하긴 어렵다는 것도 숙제죠."

✚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기업들의 안전과 재난에 관한 인식이 좀 바뀌면 좋겠습니다. 기업이 재해경감활동관리체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건 규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업을 위해선 좋은 일이죠. 우리가 운전할 때 안전벨트를 꼭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우수기업인증을 통해 인센티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재해경감활동에 나서야 하는 이유죠. 그러면 기업재난관리사들도 이 분야의 전문가로 널리 활동할 수 있을 거고, 그게 결국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니까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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