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직업 미래 보고서 11편
질적 탐구 | 김준영 점역ㆍ교정사
시각장애인 의사소통 수단 점자
점자 새기는 일은 권리 새기는 일
하지만 처우와 인지도 좋지 않아
제도적 장벽ㆍ처우 개선 필요해시각장애인들의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 중 하나인 점자點字. 이를 만들고 교정하는 사람들이 바로 '점역ㆍ교정사'다. 이런 맥락에서 점자를 새기는 일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새기는 일과 같다. 하지만 이들의 사회적 인지도와 처우는 생각보다 훨씬 낮다. 김준영(38) 점역ㆍ교정사를 만나 그들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길을 들어봤다.
2006년 신직업에 등재된 '점역사點譯師'의 공식 직업군과 자격증 명칭은 점역ㆍ교정사다. 점역ㆍ교정사는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이용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일반 문자나 그림을 점자로 번역하고 교정하는 일을 한다.
단순히 글자를 점자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문장과 맥락, 도표와 그림의 의미를 살려 한 땀 한 땀 점자를 만들고, 교정한다. 그래서 흔히 '점역ㆍ교정'을 '예술의 영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회적 인지도와 처우는 아직 빈약하다. 점자를 새기는 일이 곧 권리를 새기는 일이라면, 그 손끝의 노동을 사회는 어떻게 대우해야 할까. 점역ㆍ교정사들의 처우 개선과 점역 의무화 확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김준영 점역ㆍ교정사에게 물었다.
✚ 점역·교정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8년 차 중도 시각장애인이며 자립생활센터에서 사회복지사, 그리고 점역ㆍ교정사로 6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재활을 막 시작할 당시 스스로 글을 보지 못하고 쓰지 못한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죠.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올바르게 행사하고 싶은데 선거철에 점자형 선거 공보물도 읽을 수 없어 편향된 정보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자라는 언어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점역·교정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지금은 시각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역할인 선거 공보물 담당 전문 점역ㆍ교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 실제 점역ㆍ교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나요?
"일반 문서 파일을 받아 '한소네' 같은 점자정보단말기에 넣고 점자 제작 프로그램으로 1차 변환을 합니다. 하지만 자동 변환만으로는 완전하지 않아 점자지 규격에 맞게 문단 배열과 줄 간격을 직접 조정해야 합니다. 이용자가 읽기 편하도록 줄ㆍ칸ㆍ문단을 재배치하는 데 많은 공을 들입니다. 어떤 점역ㆍ교정사가 작업했느냐에 따라 글의 '디자인'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후 점자 맞춤법 규정과 원문을 대조하며 오류를 바로잡습니다. 글자 하나, 띄어쓰기 하나만 달라도 의미 전달이 왜곡될 수 있어 교정 단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최종 파일을 점자 프린터로 출력해 종이 점자 문서를 완성합니다."
✚ 점역ㆍ교정사가 되기 위해선 어떤 자격증이 있어야 하나요?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관리하는 국가공인 민간자격 '점역ㆍ교정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합니다. 자격은 1급ㆍ2급ㆍ3급으로 나뉘며, 현재 시각장애인계에서는 이를 국가자격으로 격상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시행된 점역ㆍ교정사 자격증은 국어, 영어, 음악, 수학·과학(컴퓨터), 중국어, 일본어 등 6개 과목으로 나뉜다. 3급은 국어 과목 합격으로 취득할 수 있고, 2급은 3급을 가진 상태에서 영어, 수학·과학(컴퓨터), 음악, 중국어, 일본어 중 한 과목에 합격해야 한다. 1급은 3급을 소지한 채로 2급 과목 중 두 과목 이상(영어 필수)을 합격하면 된다.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의 점수 기준은 다르다. 100점을 기준으로 점역 시험은 시각장애인은 20점, 비시각장애인은 60점이 기준이다. 교정 시험의 기준은 반대로 시각장애인은 60점, 비시각장애인은 20점이다.
점역ㆍ교정사 자격증은 꽤 오래전부터 시행됐지만 직업 인지도는 낮다. 김준영 점역ㆍ교정사는 "시각계의 테두리 밖에 있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점역ㆍ교정사를 한다고 말하면, 백이면 백 '그게 뭐야?'라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 그렇다면 처우나 근무 환경은 어떤가요?
"점역ㆍ교정사는 점자를 한 땀 한 땀 번역하고 교정하는, 굉장히 물리적인 중노동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극강의 업무 난도에 비해 최저임금 수준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점역ㆍ교정사 처우 개선을 위한 법령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을 정도로 우린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 인력은 충분한가요?
"채용 정원(TO) 자체가 적어 인력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인천의 경우 점역ㆍ교정사가 2~3명뿐인데, 그중 한명이 저일 정도예요."
✚ 점역ㆍ교정사로서 바라는 개선 사항은 무엇인가요?
"점역ㆍ교정사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한 법적ㆍ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합니다. 지금처럼 최저임금 수준에서 인력난에 시달리는 구조로는 전문성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국가자격 전환, 공공기관 채용 확대 같은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여러 분야에 도입되고 있는데, 점역ㆍ교정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이 시장은 아직 AI로 인해 급변하고 있지는 않아요. 현재 점역 프로그램은 무료인 '점사랑', 유료인 '실로암브레일' 등이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문서 파일을 점자 파일로 단순 변환해 주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AI를 덧입혀 문맥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배열까지 해준다면, 점역ㆍ교정 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 그렇다면 AI 시대에 점역ㆍ교정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AI가 정말 비교도 안 되게 빨라지고 능력치가 계속 향상되고 있는 지금, 저 역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점역 의뢰인이 원하는 텍스트에 시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과 뉘앙스까지 담아내는 건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AI는 빠르지만, '인간적인 맥락'을 입히지 않는 이상 넘을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 부분이 앞으로 점역ㆍ교정사가 계속 자리를 지켜야 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점역ㆍ교정사로서 목표가 있나요?
"시각장애인의 알 권리와 참정권 보장을 위해 가장 시급한 '선거 공보물의 점역 의무화 확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지금은 대통령ㆍ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까지만 점자형 공보물이 의무화돼 있고, 광역의원(시ㆍ도)과 기초의원(시ㆍ군ㆍ구의원) 선거는 여전히 제외돼 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책임지는 기초의원들의 정책 역시 시각장애인이 제대로 알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앞으로 이런 제도적 장벽을 반드시 개선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점역ㆍ교정사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 처우 개선을 위해 힘쓰는 것이 저의 또 다른 목표입니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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