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는 분양사기 실체➆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분양사기
아파트 분양상담 직접 받아 보니
허위·과장 설명으로 소비자 유혹
계약서 사인하게 만드는 게 목적
#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난 분양사기 따위에 걸려들지 않아. 분양사기에 당한 사람이 문제인 거야." 공교롭게도 우리가 만난 '분양사기 피해자' 역시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내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 욕망을 자극하는 분양상담사의 유혹은 멀쩡한 사람들을 '피해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 우리는 7월 30일 발간한 더스쿠프 통권 656호에서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분양사기의 실체'를 시작했다. 총 6편의 연재물을 통해 우리는 '분양사기'를 근절하지 못한 이유와 정부, 국회 등의 '불구경'을 꼬집었다. 그 속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비명도 취재했다. 그 마지막 연재물 '박 실장과 만나다' '분양사기 뿌리 뽑을 대안 AI 플랫폼'을 공개한다.
# 7편 '박 실장과 만나다'에선 분양사기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분양홍보관을 직접 방문했다. 분양상담사를 만나 그들이 어떤 말로 소비자를 유혹하는지 살펴봤다. 실제로 분양상담사는 분양 계약을 따내기 위해 온갖 허위·과장 설명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 분양사기를 근절할 수 있는 방안도 살펴봤다. 8편 '분양사기 뿌리 뽑을 대안 AI 플랫폼'에서다. 이문용 카이스트(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 교수팀이 개발한 'AI 부동산 분양분석 플랫폼'을 검증했고, 분양사기를 막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진단했다.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분양사기의 실체' 그 마지막 장을 연다.
분양사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분양상담사의 허위·과장 설명에 속아 분양계약을 체결했다가 어려움을 겪는 소비자가 적지 않아서다. 수법도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 꼬리가 밟히기 쉬운 전화상담에선 발톱을 숨기고, 분양홍보관을 찾았을 때 온갖 허위·과장 설명으로 소비자를 속이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 분양상담사는 어떻게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을까. 더스쿠프가 '박 실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분양상담사를 만났다.
자산가에게 부동산은 '자산증식' 수단일지 모르지만, 서민은 다르다. '내집 마련'은 그들의 꿈이자 목표다. 그만큼 우리나라엔 무주택자가 많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 무주택가구는 961만8474가구에 달했다. 전체 2207만3000가구 중 43.6%가 내집이 없다는 얘기다.
무주택가구는 가구원 전부가 전세나 월세로 거주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서울은 전체 414만1659가구 중 절반이 넘는 214만3249가구(51.7%)가 내집이 없었다. 부동산을 목표로 삼은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꿈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부동산 분양사기는 대표적이다. 누군가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진 마당에 무슨 분양사기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시장 침체로 쌓인 미분양 매물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려는 분양사기는 여전히 차고넘친다.
익명을 원한 분양 부동산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부동산 경기가 좋든 나쁘든 분양사기는 계속 발생한다. 부동산 분양 사기꾼들은 경기가 좋을 때는 투자가치가 높다는 말로, 경기가 나쁠 때는 지금 사두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로 소비자를 속인다."
# "나는 박 실장입니다" = 그렇다면 분양상담사들은 어떤 말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걸까. 더스쿠프 취재팀이 직접 분양상담사를 만나 컨설팅을 받아봤다. 분양 중인 부동산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서울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입주까지 500만원' '저렴하게 내집을 장만할 절호의 기회'와 같은 문구가 쓰인 분양 홍보 현수막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중 아파트를 분양 중인 곳을 골라 연락했다. 녹음을 의식해서였는지, 전화로 상담할 땐 허위·과장 설명을 듣지 못했다. '박 실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분양상담사는 분양 중인 아파트의 투자가치가 높다는 점은 강조했지만 "전매가 가능하다" "주변에 개발 호재가 있다"와 같은 전형적인 허위·과장 설명은 늘어놓지 않았다. 대신 분양홍보관을 방문해보라는 말만 끈질기게 반복했다.[※참고: 분양상담사와의 대화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1문 1답 방식을 섞었다.]
기자: "분양 상담을 좀 받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박 실장 : "미분양 아파트여서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해요. 지금 사면 돈 버는 겁니다."
기자 : "나중에 프리미엄을 받고 팔 수 있을까요?"
박 실장 : "그럼요, 아파트값은 올라요. 일단 현장에 오셔서 아파트도 구경하고, 상담도 받아보세요."
기자 : "분양가가 어느 정도인가요?"
박 실장 : "전용면적 84.5㎡(약 25.4평) 기준 4억원대예요.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말씀드릴게요. 언제 방문하실 수 있으세요?"
허위·과장 설명이 사라진 걸까. 그렇지 않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분양상담사의 수법이 교묘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투자의신' 허준열 대표는 "전화 상담에서는 꼬투리가 잡힐 수 있는 발언을 쉽게 하지 않는다"며 "통화 녹음이 일반화돼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말은 애써 꺼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허 대표의 말을 더 들어보자. "전화상으로는 진짜 분양받을 의사가 있는 소비자인지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일단 분양홍보관을 방문하도록 유도하고, 속된 말로 '간을 본' 이후 본격적으로 작업을 건다." 실제로 통화를 마친 후 박 실장이란 분양상담사는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 기자에게 현장을 방문해 컨설팅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 박 실장을 만나다 = 그래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기자는 평범한 직장인이어서 주말에만 방문할 수 있다고 말한 뒤 약속을 잡았다. 방문일은 8월 16일 토요일. 박 실장이 알려준 분양홍보관이 있는 경기도 김포시로 향했다. 주말 낮 시간에 방문했는데도 적지 않은 사람이 상담을 받고 있었다. 기자를 포함해 7~8명의 고객이 분양상담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기자가 분양홍보관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취재를 목적으로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분양상담사가 늘어놓는 허위·과장 설명에 넘어가지 않으리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박 실장은 차원이 달랐다. 수많은 분양 정보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허위·과장 설명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혹했다.
기자 : "분양가가 정확히 얼마나 하나요?"
박 실장 : "평형 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전용면적 85.4㎡가 4억2000만원에서 4억8000만원 사이예요."
기자 : "주변 시세보다 정말 싼가요?"
박 실장 : "지금 이 동네 아파트 시세가 6억원 이상이에요. 비교하면 1억원이나 싼 가격에 아파트를 장만할 기회죠. 전세나 월세로 돌렸다가 1~2년 후에 팔아도 몇천만원은 벌 수 있어요."
기자 : "진짜 오를까요?"
박 실장 : "생각해 보세요. 우리나라 아파트값이 떨어진 적이 있나요. 단 한번도 없어요. 사놓으면 돈 버는 거예요. 서울에서 멀지도 않고, 곧 지하철도 개통할 예정이고, 특례시 전환도 앞두고 있어서 아파트값은 더 오를 수밖에 없어요. 서울에 있는 아파트 전셋값이면 내집을 장만할 수 있는데 왜 망설이세요."
내집 마련을 꿈으로 삼고 있는 이에겐 정말 유혹적인 말이다. 8월 서울시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이 6억5000만원(KB부동산)이란 걸 감안하면 내집 마련이란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로 확신할 만하다.
하지만 박 실장의 얘기는 대부분 과장이었다. 지하철 개통 소식은 수년 전부터 나온 얘기지만 아직 구체화한 건 아무것도 없다. 특례시 전환도 마찬가지다. 김포시는 2023년부터 특례 적용을 받고 있다. '특례시 전환'이란 말 자체가 거짓이다. 더구나 지난해 서울시 편입 논의가 진행되긴 했지만 흐지부지 끝났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박 실장과의 대화를 좀 더 이어나가보자. 가장 예민한 문제인 '계약금'부터 꺼냈다.
기자 : "분양가가 4억원 이상이면 계약금으로 최소 4000만원이 필요하네요. 목돈을 당장 마련하는 게…."
박 실장 : "원래는 그런데 지금 계약하면 분양가의 5%만 있으면 돼요. 중도금은 무이자로 빌려주니까. 잔금 치를 때까지 드는 돈은 없어요."
기자 : "당장 융통할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아서요."
박 실장 : "계약금으로 얼마나 내실 수 있는데요? 필요하면 계약금 대출도 알아봐줄 수 있어요"
기자 : "500만원이나 되려나…."
박 실장 : "그럼 가계약이라도 맺고 가세요. 좋은 기회를 날리실까 봐 그래요. 동이랑 호수만 정하는 거니까 부담가질 필요 없어요."
기자 : "그냥 분양 계약 아닌가요. 마음이 바뀌면 취소할 수 있나요?"
박 실장 : "아니에요. 가계약만 하는 거라 일주일 내에 마음이 바뀌시면 돈은 돌려드려요. 분양이 거의 끝나서 일단 물량을 확보하는 게 좋아서 권해드리는 거예요."
기자 : "일단 가족과 상의해 볼게요."
박 실장은 이후에도 수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원하면 책임지고 전매를 해주겠다" "분양가의 70~80%를 3%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다" "조건의 워낙 좋아서 분양을 받은 상담사도 적지 않다" "가계약을 맺은 사람들이 숱하다" 등 대부분 솔깃할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이는 분양 계약을 따내려는 분양상담사의 전형적인 거짓말들이다.[※참고: 이 이야기는 '"계약금 절반 내줄게요" 분양상담사 거짓말이 파멸의 시작이었다(더스쿠프 통권 659호)'와 '"아이코! 고객님 저도 분양받았어요" 분양상담사의 새빨간 거짓말(더스쿠프 통권 661호)에서 자세하게 다뤘다.]
모르긴 몰라도 많은 이들이 박 실장의 유혹에 넘어가 가계약을 체결했을 것이다. 그럼 가계약 서류에 서명한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박 실장의 말대로 '취소 의사'를 밝히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가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하면 서명한 문서를 들이대면서 불가능하다고 말했을 거예요. 십중팔구입니다."
실제로 취재팀이 방문한 분양홍보관에서 가계약을 맺었다가 취소를 못 해 위약금을 물어줘야 할 상황에 처한 피해자도 있었다. 허준열 대표는 "가계약으로 낸 500만원이 1차 계약금이라는 명목으로 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고 잡아뗐을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가계약이라도 돈을 걸고 서명하면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이후엔 위약금을 빌미로 본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압박하거나 시간을 끌어서 계약을 해지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 계약을 취소하려면 분양가의 10%를 위약금로 낼 수도 있다. 계약을 따내는 데 혈안이 된 분양상담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서민과 부동산 투자자를 울리는 분양사기를 막을 방법은 없는 걸까. 요즘 유행하는 AI 기술을 분양 정보를 분석하는 데 활용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 질문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분양사기 실체 8편에서 풀어보자.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김하나·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