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 폭약 설치" 한여름 13세 소년이 던진 촉법 논쟁

김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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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촉법소년 범죄 빠르게 증가
최근 5년 새 116.7% 급증
촉법소년 빠른 증가의 원인
디지털 환경 변화·촉법 악용
연령 낮추기 외에 대안 없나
촉법소년 범죄가 빠르게 늘고 있다. 범죄 수법은 점점 흉포해진다. 자극적인 디지털 환경, 제도의 허점, 약화된 공동체 통제 기능이 뒤엉킨 결과다.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고 처벌을 강화하란 국민적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그게 실질적인 대안이 아니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촉법소년, 과연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까.

촉법소년이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신세계백화점 본점 절대로 가지 마라. 1층에 폭약을 설치했고 오후 3시에 폭파된다." 지난 8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신세계백화점 폭파 안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백화점 직원과 고객 등 4000여명을 밖으로 내보낸 뒤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다.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후 경찰은 해당 글이 게시된지 6시간 만에 제주시에 거주하는 범인을 검거했다. 중학교 1학년생 A(13)군이었다.

백화점 측은 당시 영업이 3시간가량 중단되면서 6억여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A군에게 법적 조치는 물론 배상을 받아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A군이 '촉법소년'이기 때문이다.

■ 관점① 양도 질도 악화 = 촉법소년이란 '소년법상 형법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벌인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의미한다. 현행법상 촉법소년은 법을 어겨도 형사책임이 면제된다. 소년재판(가정법원)을 통해 '보호처분'을 받는 게 전부다.

문제는 촉법소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범죄를 저질러 소년부에 송치된 촉법소년은 2020년 9606명→2021년 1만1677명→2022년 1만6435명→2023년 1만9653명→2024년 2만814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에도 6월 기준 1만여명을 넘어섰다.

출산율 저하로 유소년(0~14세)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인구는 줄었지만 범죄 발생은 더 증가한 셈이어서다. [※참고: 통계청에 따르면, 0~14세 유소년 인구는 2020년 631만명에서 2024년 549만명으로 13.0% 감소했다.]

단순히 양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범죄의 질도 나빠졌다. 가정법원은 청소년 범죄에 보호처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1~10호의 보호처분을 내린다. 소년재판에서 내릴 수 있는 보호처분은 총 10가지로, 호수가 높을수록 무거운 처분이다. 

▲1호: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해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에게 감호 위탁, ▲2호: 수강명령, ▲3호: 사회봉사명령, ▲4호: 보호관찰관의 단기(1년) 보호관찰, ▲5호: 보호관찰관의 장기(2년) 보호관찰, ▲6호: 아동복지시설이나 그밖의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 ▲7호: 병원ㆍ요양소 또는 소년의료보호시설에 위탁, ▲8호: 1개월 이내의 소년원 송치, ▲9호: 6개월 이내 단기 소년원 송치, ▲10호: 2년 이내 장기 소년원 송치 등이다.

[사진|뉴시스]


그런데, 이중 가장 무거운 수준인 9호ㆍ10호 보호처분이 크게 늘어났다. 법무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9호ㆍ10호 처분 건수는 2019년 1050건에서 지난해 2098건으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 관점② 왜 늘어날까 = 그렇다면 촉법소년이 증가하고 범죄의 질마저 나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디지털 환경의 변화가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권일남 명지대(청소년지도학) 교수는 "최근 SNS와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자극적인 범죄 수법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이를 따라하거나 단순한 호기심으로 범행에 가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디지털 환경 변화로 신종 유형의 범죄가 늘어난 게 소년 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고 말했다.

여기에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제도적 허점을 의도적으로 악용하는 사례까지 더하고 있다. 지난 8월 충남 천안에서 발생한 집단폭행 사건은 촉법소년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범죄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해 청소년들은 피해 학생에게 "우리는 촉법소년이어서 처벌받지 않는다"며 촉법소년 제도를 자신들의 '면죄부'처럼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 관점③ 연령 하향 갑론을박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정부는 2022년 촉법소년의 상한 연령을 현행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1살 내리는 내용의 소년법ㆍ형법 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개선 및 교화의 가능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어린 소년범에게 부정적인 낙인효과를 확대해 사회복귀와 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면서 반대 의견을 밝혔다.

22대 국회에서도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만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내용의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특정강력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소년부 보호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하도록 처벌을 강화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관점④ 또다른 대안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고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 모두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박선영 한세대(경찰행정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미국ㆍ영국ㆍ캐나다 등 선진국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강력한 형사처벌의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소년들은 범죄 처벌의 두려움을 인지할 만큼 뇌가 발달하지 않아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과 기록에 따른 '낙인 효과', 성인과 함께 수감돼 범죄 기술을 배우는 '범죄학교 효과'가 두드러졌다. 아울러 자신이 처벌받는 것에 억울함과 분노를 느낀 소년들이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숱했다." 현재 나온 대책은 부작용이 더 크다는 거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박 교수는 "촉법소년 문제는 처벌이 아니라 관리의 영역"이라며 "개별 맞춤형 상담과 치료, 가족 회복, 복지, 교육 등 종합적인 보호 체계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진국들은 이미 처벌 중심에서 벗어나 교육과 복지 중심으로 전환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도우 경남대(경찰행정학) 교수도 "문제의 근원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회적 통제기능을 지적했다. "과거에는 가정교육, 학교에서의 훈육, 지역사회의 관심 등 이른바 '비공식적 통제'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이런 기능이 크게 약해졌다. 국가와 법이라는 '공식적인 통제'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공동체 전체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회복해야 한다"며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다시 소년의 성장에 관여할 때, 비로소 실질적인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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