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네팔, 다음은? 아시아 국가 덮친 '불평등 도미노'

한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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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9.10. 오후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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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반정부 시위로 19명 사망
인도네시아 유혈시위로 장관 경질
방글라데시·스리랑카 정권 붕괴
경제적 불평등 방치한 결과
불평등 악화 동북아 3국 안심 못 해
네팔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反 정부 시위로 지난 8일까지 최소 19명이 사망했다. 이로써 지난 13개월 동안 아시아에서 대규모 유혈 시위가 벌어진 국가는 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를 포함해 3개 나라가 됐다. 2022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스리랑카도 포함된다. 이중 절반인 2개 나라에서 정권이 교체됐다. 표면적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 밑단엔 경제적 불평등과 부패가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아의 불평등 도미노를 자세히 살펴봤다.

지난 9월 8일 네팔 카트만두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겨냥해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 네팔=카드가 프라사드 올리 총리가 사임했지만, 시위대는 지난 9일에도 대통령궁과 대통령 사저, 여당인 네팔회의당 당사에 불을 질렀다. 대규모 시위와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강경 진압의 표면적인 이유는 소셜미디어(SNS) 접속 차단이다.

네팔 정부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26개 해외 SNS가 2023년 제정한 규칙에 따라 정부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접속을 차단했다. 하지만 SNS 차단의 진짜 이유는 경제적 불평등에 분노한 네팔 국민들이 SNS를 통해서 이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네팔 시위대의 주요 구호 중 하나가 "부패 종식"인 이유다.

네팔 청년들은 최근 유행한 '네포 키드(Nepo Kid)' 게시물을 정부가 막으려 한 데 분노했다. 네팔 '카트만두 포스트'는 지난 6일(현지시간) "최근 네팔 청년들은 해외 거주 동포들이 어려운 삶을 보내는 영상과 전직 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 자녀들이 해외에서 호화롭게 생활하는 영상을 대조하는 게시물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네팔 경제는 해외로 이주한 자국민의 송금에 의존하고 있다. '네포'는 족벌주의, 편애주의를 뜻하는 네포티즘(nepotism)의 약자로 권력자들이 친족을 중용하는 현상을 말한다.

네팔의 경제적 불평등은 2008년 국왕 제도가 없어진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비영리단체 '네팔 경제 포럼'은 이 나라 소득 상위 10%의 평균 가처분 소득이 하위 40% 평균의 3배 이상이고, 자산 상위 10%의 재산이 하위 40% 평균보다 26배 많다고 지적했다.

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2010년 0.490으로 세계 최악의 수준이었는데, 2019년 소득 지니계수는 0.585로 오히려 악화했다. [※참고: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뜻이다.] 

■ 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 반정부 시위 사망자는 8일까지 최소 8명에 달한다. 인도네시아 하원의원 580명이 지난해 9월부터 월 5000만 루피아(약 422만5000원)에 달하는 주거 수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위가 시작됐다. 하원은 이 수당을 올해 10월 이후 폐지한다고 밝혔지만, 시위는 중단되지 않았다.

급기야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9일 경제학자 출신 재무부 장관 스리 물야니 등 장관 5명을 경질했다. 5000만 루피아는 올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지역의 법정 최저 월급 539만6760 루피아(약 45만6000원)보다 10배 많고, 자바주州 최저 월급인 216만 루피아(약 18만2520원)보다는 20배 이상 많은 돈이다.

시위대가 공식적으로 밝힌 '17+8'이란 대對정부 요구사항을 보면 이번 시위가 경제 불평등 문제로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위대는 ▲예산 투명성, ▲대량 해고 방지, ▲계약직 근로자 보호, ▲최저임금과 파견근무 문제 해결, ▲부패 자산 몰수법 시행, ▲경제 및 고용 정책 재검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하지만 인도네시아 통계청은 지난 7월 이 나라 빈곤 인구가 전체 인구 2억8400만명 중 10%가 안 되는 2386만명에 불과해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8월 물가상승률은 2.3%로 하락했고, 지난 2월 발표한 실업률은 4.8%였다.

그런데 이런 인도네시아 경제 통계를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 인도네시아 싱크탱크인 경제법률연구센터(CLEAS)는 유엔에 공식적으로 경제 통계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실 역시 다르다. 인도네시아 일간지 콤파스는 지난 4일 "2014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40명의 자산은 국민 평균 자산의 69만배였지만, 2024년에는 126만배로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지난해 시위대가 정권을 무너뜨린 방글라데시는 20년간 연평균 6% 이상 성장하며 세계 32위 경제 대국에 이름을 올렸다. 표면적으로는 일반 청년들에게 불리한 공무원 채용 할당제가 문제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 지속된 분배 없는 성장에 이어 셰이크 하시나 정권이 '부자감세·서민증세(간접세 증세)'에 나선 것이 정권 붕괴의 본질이다.

특히 수출을 주도한 섬유산업에서 부를 축적한 '얼굴 없는 부자들'의 부패가 사회를 분열시켰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과거에는 중산층을 의미했고, 지금은 상류층을 뜻하는 무역업 종사 부자들을 코티포티(kotipoti)라고 부른다(독립언론 다카 쿠리어). 코티포티가 소유한 은행 계좌 수는 전체의 1% 미만인데, 이 계좌가 보유한 예금액은 국가 예금 전체의 43.4%에 달한다(방글라데시 중앙은행).

2009~2018년 방글라데시의 모든 무역 거래에서 관세의 17.3%가 누락됐는데, 미국 싱크탱크 '세계 금융 무결성'은 연평균 82억7000만 달러에 달하는 이 누락금이 수출업체가 무역 송장에서 거래 액수를 위조해 빼돌린 돈으로 추정한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시위가 발생하기 6개월 전인 지난해 1월 부자일수록 세율이 내려가는 역진적인 간접세인 부가가치세율을 2년 만에 15.0%로 3배 높이고, 법인세 최고세율은 27.5%에서 25.0% 내리며, 재산이 4억 타카(약 44억 원)가 넘더라도 1년간 소득이 없으면 세금을 면제해 주는 식으로 재산세 부과 대상을 축소했다.

스리랑카 시위대는 코로나19를 겪으며 국가부도 상황을 초래한 마힌다 라자팍사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시위대는 2022년 7월 대통령궁을 점거했다. 대통령과 총리를 오가며 2004년 이후 스리랑카를 장악했던 라자팍사 대통령은 즉시 사임했다.

시위대가 처음부터 대통령궁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다. 2022년 4월 식품과 조리용 가스 등 물가상승률은 30.2%에 달했고, 정전도 수시로 발생했다. 국민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시위가 잦아졌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런데 그 목적은 물자 확보가 아닌 국민들의 침묵이었다. 정부는 시위 방지를 위해서 36시간 전국 통행금지령을 내렸고, SNS 접속을 차단했지만, 오히려 시위를 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스리랑카의 불평등은 세계 최악 수준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2023년 1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스리랑카를 중국, 미얀마, 태국, 인도와 함께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5개국 중 하나로 꼽았다.

UNDP는 "스리랑카 국민 상위 1%가 국가 전체 자산의 31%를 소유했는데, 하위 50%는 전체 자산의 4%도 채 소유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스리랑카의 2022년 물가 상승률은 70%, 식품 물가상승률은 90%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가부도로 이 나라 경제 정책 통제권을 사실상 대신 행사하면서 공공기관 430개를 민영화해 일자리 50만개를 추가로 없애라고 지시했다. 법인세를 최저로 유지하고, 근로소득세와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18%로 3%포인트 인상하라는 IMF의 요구는 이 나라 불평등을 오히려 악화했다. 스리랑카의 불안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시위대 3.5%의 법칙=최근 몇년간 아시아 4개국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2개 나라 정권을 갈아치울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시위대의 조직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조직되지 않은 세력이 분을 못 이겨 거리로 나서면서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이 더 강경해졌다. 그 결과 사망자가 발생했고, 역설적으로 시위대 수는 더 증가했다.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연구소(PRIO)의 에리카 체노웨스는 1900~2006년 비폭력 시위를 조사해 "비폭력 시위대가 인구의 3.5%를 넘어서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3.5%의 법칙을 완성했다.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선 것은 시위 인원의 증가를 막기 위해서인데,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결국 정권 붕괴로까지 연결된 셈이다.

인도네시아 시위에서는 지난 8월 28일 오토바이를 몰던 21세 배달기사 아판 쿠르니아완이 경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하면서 시위가 격화했다. 방글라데시 시위에서는 지난해 7월 16일 25세 대학생 아부 사예드가 경찰이 15m 앞에서 쏜 산탄총에 사망했다. 2022년 4월 19일 경찰의 총격으로 첫 사망자가 발생했던 스리랑카 시위에서도 시위대 대부분은 그 지역 동네 주민이었다. 19명이 사망한 네팔 시위는 'Z세대 시위'로 불리는 만큼 사망자 대부분이 청년일 것으로 보인다.

■ 동북아는 안전할까=아시아 4개국 시위의 본질은 경제적 불평등을 정부가 방치한 데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23년 1월 "2020년 이후 새롭게 창출된 42조 달러의 막대한 자산 중에서 3분의 2가 가장 부유한 1%의 차지가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는 올해 1월 세계 36개국 성인을 대상으로 경제적 불평등 설문을 실시한 결과, 54.0%가 자국의 빈부 격차가 매우 큰 문제라고 답했고, 60.0%가 부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악화했다고 응답했다.

한중일 동북아 3국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불평등연구소(WIL)는 지난해 1월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적 불평등 수준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나빠져 2020년 현재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수준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WIL은 일본의 불평등 역시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소득 상위 10%의 세전稅前 소득은 1990년대 전체의 30%대였지만, 2000년 이후 40%대로 증가했다. 중국의 소득 불평등도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악화해 2003년 이후 2019년까지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소득 하위 50%가 전체 소득의 10%대를 가져가는 데 그친 것과 대조된다.

동북아 3국의 불평등 처방은 제각각이다. 일본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주도 성장에 나섰지만, 물가 상승으로 실질임금은 3년 연속 줄고 있다. 중국은 검열과 삭제를 택했다.

2023년 12월 중타이증권 수석 애널리스트 리쉰레이가 베이징 사범대의 2021년 자료를 인용해 "월 소득 2000위안(약 38만원) 미만인 사람이 9억6400만명에 이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중국 경제 매체 '제일재경'에 게재했는데, 이 글이 하루 만에 삭제된 건 대표적 사례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대기업과 고소득층 세금 감면 등 부자 감세를 주도했고, 예상과 달리 이재명 정부에서도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 인하와 같은 초부자 감세 정책을 확정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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