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내리면 가을이 저문다”…상강(霜降), 수확의 끝과 겨울의 문턱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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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기운 본격적 땅에 스미고 늦가을 문턱
곡식 수확 마무리, 단풍 가장 아름다울 때
전통사회선 농사 정리하고 작은 차례 지내
환절기 건강관리와 난방 점검·김장 준비
스물네 절기 중 열여덟 번째 절기인 상강(霜降)은 찬 기운이 본격적으로 땅에 스며드는 시기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23일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 상강(霜降)이다. 24절기 중 18번째에 해당하며 태양의 황경이 210도에 이르는 때를 말한다. 이름 그대로 ‘서리가 내린다’는 뜻으로, 찬 기운이 본격적으로 땅에 스며들며 늦가을의 문턱이 열리고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는 절기다.

낮에는 여전히 햇살이 따뜻하지만, 밤에는 기온이 크게 떨어진다. 이슬이 얼어 서리로 변하면서 농작물과 초목에는 하얀 결정이 맺힌다. 서리가 내리면 곡식의 수확도 마무리된다. 논밭에서는 벼, 조, 수수 등 주요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탈곡과 저장이 이어진다. 농가에서는 무와 배추를 캐내 김장을 준비하고, 가축의 겨울 보금자리를 정비하며 땔감을 마련한다. 농사일의 절정과 끝이 교차하는 시점이 바로 상강이다.

상강 무렵은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때이기도 하다. 한낮의 햇살 아래 붉게 물든 단풍이 산을 뒤덮고,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 가을의 마지막 정취를 완성한다. 옛사람들은 이 시기를 ‘상강홍엽(霜降紅葉)’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학자 정약용은 ‘상강일야백산천(霜降一夜白山川)’이라 읊으며, 하룻밤 사이 서리가 온 산천을 하얗게 덮는 풍경을 시(詩)로 읊기도 했다. 

상강 무렵은 단풍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때이기도 하다. 옛 사람들은 이 시기를 ‘상강홍엽(霜降紅葉)’이라 불렀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상강의 대표 음식은 국화전과 국화주다. 국화가 피는 시기와 겹쳐 옛사람들은 국화잎과 꽃을 띄운 술을 빚어 마시며 장수를 빌었다. 국화는 해독과 항균 작용이 있어 눈을 맑게 하고 열을 내려주는 약재로도 쓰였다. 이 시기에는 감이 단맛을 더한다. 서리를 맞은 감은 떫은맛이 사라지고 당도가 높아져 곶감으로 만들기 좋다. ‘상감이 곶감 된다’는 속담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전통사회에서는 상강을 ‘한 해 농사의 끝을 정리하는 날’로 여겨졌다. 땅이 얼어붙기 전 마지막 농사일을 마무리하고, 조상에게 한 해의 수확을 알리는 작은 차례를 지냈다. 농가에서는 논밭 거름을 보충하고 농기구를 손질하며, 겨울을 대비해 곡식을 저장했다.

속담에 담긴 상강은 추위를 대비하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상강이 지나면 아이도 덮고 잔다’는 말은 이때부터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뜻이다. ‘상강 뒤엔 된서리 온다’는 속담도 상강 이후 얼음이 얼 만큼 찬 기운이 닥치니 철저히 대비하라는 의미다. 옛사람의 지혜는 지금도 농사력과 기상 예보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오늘날에도 상강은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는 지표로 남아 있다. 농경사회처럼 절기를 생활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지만, 현대인은 상강을 기점으로 겨울옷을 꺼내고, 환절기 건강관리와 난방 점검, 김장 준비를 시작한다. 가을 여행의 막바지로 단풍 산행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서리’, ‘#가을의 끝’ 같은 해시태그와 함께 서리 내린 아침 풍경이 올라온다. 계절의 리듬은 형태를 달리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에 남아 있다.

◇도움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누리집·24절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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