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경제, 제주의 다음 장] ① “뜨거워진 섬, 식어가는 산업”… 기후위기 속 제주경제, 구조가 무너진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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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3. 오후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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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흔들린 감귤, 짧아진 여행, 멈춰 선 풍력
기후가 산업의 질서를 다시 쓰고 있다
“기후가 산업의 리듬을 흔든다.” 폭염 속 감귤밭과 멈춘 풍력 발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편집 이미지.

“기후는 계절이 아니라, 경제다.”
제주의 산업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입니다.

온난화는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생산·소비·에너지 구조 전체를 재편하는 변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감귤의 당도, 숙박률, 풍력의 출력량. 이 모두가 하나의 기후 곡선 위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기후는 산업을 바꾸고, 산업은 경제의 체질을 바꿉니다.

[김지훈의 ‘맥락’] 이번 연속기획은 ① 기후 변화가 제주경제의 구조를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② 농업·관광·에너지 산업별로 어떤 균열과 재편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래서 제주가 어떤 방향으로 ‘기후경제’를 설계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기후를 환경 이슈가 아닌 경제 시스템 변화로 읽는 시도이며, 기후 이후의 제주경제’를 구체적으로 설계해봅니다.

이 기사는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주최한 ‘기후경제 세미나’ 발표 내용을 토대로 구성했습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와 제주상공회의소, 제주연구원이 21일 오후 제주시 엠버퓨어힐 호텔 2층 한라홀에서 '변화하는 기후, 변화가 필요한 제주경제: 산업별 대응 전략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 제공)불교방송(https://news.bbsi.co.kr)

■ 온도는 오르고, 산업은 식는다

21일 열린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주최한 ‘기후경제 세미나’에서 서울대 권오상 교수는 “지난 30여 년간 제주지역의 연평균기온이 꾸준히 상승해왔다”고 분석했습니다.
폭염과 열대야, 강수일수 모두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며, 계절 주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봄에는 장마가 겹치고, 가을엔 태풍이 잦아지는 등 기후 리듬 자체가 불안정해졌습니다.

권 교수는 “문제는 단순한 기후 변화가 아니라 주기의 붕괴”라며, “제주 농업은 기존의 계절형 구조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기후의 곡선이 산업의 리듬을 바꿔놓았습니다.

■ 감귤의 섬, 불확실성의 섬이 되다

감귤의 적정 생육온도는 12~17℃입니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 여름철 기온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감귤의 생육 균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당도는 들쭉날쭉해지고, 색은 흐려졌습니다.
불안정한 기후 패턴에 수확 시기는 매년 달라지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권 교수는 “이제는 품종 개량이나 하우스 재배의 수준을 넘어, 작목 다변화와 수확 구조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며, “기후가 바꾼 것은 작물이 아니라 산업의 체질”이라고 말했습니다.

분석에 따르면, 아열대 작물 전환이 늦어지고 만감류 등 생산성 증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 농업 부가가치 손실이 연간 600억 원대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기후변화가 곧 경제 손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관광, 숫자는 회복했지만 체감은 후퇴했다

이상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제주의 관광산업은 가장 기후의존도가 높은 산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발표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제주 관광객 수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평균 체류기간은 4.3일에서 3.2일로 짧아졌습니다.

폭염과 집중호우, 열대야가 잦아지며 야외활동이 줄고, 소비 패턴은 ‘단기·저위험형’으로 바뀌었습니다.
숙박·식음료·쇼핑 매출은 2022년 정점을 찍은 뒤 완만한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이 교수는 “제주의 관광은 계절산업이 아니라 기후 대응 산업으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여행 패턴 변화에 맞춰 체류형보다 기후 적응형 서비스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길어진 여름, 짧아진 여행.
기후가 여행의 리듬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이제 제주는 ‘여름 피서지’가 아니라 ‘기후 위험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 재생에너지, 바람은 돌지만 전기는 막혔다

강영준 제주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후위기가 에너지 구조를 거꾸로 흔들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제주는 전국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높지만, 전력망 용량 부족으로 인한 ‘출력제한’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풍력발전기는 돌지만, 송전망은 여전히 확충 속도가 뒤처져 있습니다.

강 연구위원은 “탄소중립의 섬을 외치면서도 화력발전에 일정 부분 의존하는 구조를 먼저 바꿔야 한다”며, “탄소감축을 넘어 기후 적응 자체를 산업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스마트농업, 그린모빌리티, 기후금융을 ‘제주형 신성장동력’으로 제시하면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구조를 기후산업 전반으로 확장할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 ‘기후경제’의 구조를 설계할 때

지금 제주경제는 기후모델의 최전방에 서 있습니다.
감귤밭의 온도, 관광객의 숙박일수, 풍력의 출력량은 더 이상 별개의 산업 지표가 아닙니다.
하나의 기후경제 시스템 안에 유기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기후는 더 이상 환경변수가 아닙니다.
제주가 기후를 ‘관리 대상’으로 볼지, ‘경제 전략’으로 볼지가 향후 10년의 경쟁력을 결정합니다.

제주의 미래는 온도계가 아니라 구조 설계도 위에서 결정됩니다.
그 설계의 첫 장이 지금, 열리고 있습니다.

[기후경제, 제주의 다음 장] ② “감귤의 섬, 산업의 체질이 바뀌다”에서는 기후 변화가 제주 농업을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기온 1도가 바꾼 산업의 균열, 그 현장의 변화를 추적합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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