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외교 토대로 양국 협력 모색을일본 정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자민당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가 일본 내각제 역사상 첫 여성 총리로 취임하면서 동북아 정세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성 리더십의 상징성 뒤에 ‘강한 일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첫날부터 방위비 인상과 안보문서 개정을 지시하며 군사 대국화를 향한 첫 행보를 내디뎠다. ‘여자 아베’로 불린 그가 평화헌법 9조 개정에 나서면,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럼에도 다카이치 총리는 표면적으로 절제를 보이는 모양새다. 그는 첫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이자 국제사회의 파트너”라며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22일 이뤄진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한국·미국·일본이 긴밀히 협력 중”이라며 협조 의지를 내비쳤다. 이는 미국·중국 갈등이 심화되고 북한·중국·러시아 협력이 강화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과 협력 유지를 전략적으로 고려한 발언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화적 언급이 실제로 정책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다카이치 총리가 국내 정치적 한계를 외교 이슈로 돌파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자민당은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소수 여당이며, 연정 내부 결속도 약하다. 내년 총선을 앞둔 다카이치는 우익 결집을 위해 과거사·영토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이재명 정부는 셔틀외교 복원으로 일본과 실용 협력 틀을 구축해왔다. 전임 이시바 정권에서 진전된 협력 토대가 흔들린다면 한미일 삼각협력도 균열을 피할 수 없다. 오는 31일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중대한 시험대다. 양국 정상은 과거사를 직시하되 안보정보 공유와 공급망 협력 등 현실적 의제를 중심으로 대화 물꼬를 터야 한다. 일본이 진정한 ‘뉴 재팬’을 원한다면, 군사력 증강이 아닌 책임 있는 협력으로 존재감을 증명해야 마땅하다. 한국은 감정적 대응 대신 냉철한 외교적 균형감각을 발휘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