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지도층의 후안무치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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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탈리아 정치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거짓말을 지도자의 통치기술로 평가했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24년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26.0%로 꼴찌였다. 정치인은 감정을 가장하고 숨길 수 있는 위장술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정치인은 자신의 비리나 조직의 부패를 숨기려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때론 모호한 변명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0일 국정감사 기간 국회에서 딸 결혼식을 한 데 사과하며 내놓은 해명이 논란이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최 위원장의 딸이 지난 18일 국회 사랑재에서 결혼하며 피감기관으로부터 축의금과 축하화환을 받은 점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제가 평소 스타일이라면 꼼꼼하게 따져서 화환 받지 말고 이런 거 저런 거 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시간이 없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둘러댔다. 시간과 장소를 딸이 결정했기 때문에 부모로서 어쩔 수없었다는 변명이다. 딸로부터 ‘결혼식이 내일인데 까먹지 말라’는 부탁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과 출신인 제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최 위원장의 해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을 챙길 시간이 없었다거나 결혼식 일정을 잊어버릴까 봐 딸이 걱정했다는 말에 실소가 나온다. 국정감사 기간 상임위원장이 국회에서 자식 결혼식을 하는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 이런 지적이 한 달 전에 제기됐으나 최 위원장은 원래 일정과 장소를 바꾸지 않았다.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고위관료의 ‘내로남불’ 행태도 실망감을 준다. 이상경 국토교통부 차관은 아내가 지난해 7월 ‘갭투자(전세를 낀 매매)’ 형식으로 33억5000만 원에 분당 아파트를 매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0·15 부동산 대책에 따라 분당 지역에서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가 금지됐다. 이 차관 명의인 성남시 아파트는 올 6월 매도했다. 그런데 이 차관은 부동산 유튜브에 나와 이번 부동산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나중에 집값이 안정되면 그때 사면 된다”고 밝혔다. 주무부처 차관이 갭투자 의혹을 받는 데 국민에게만 무리한 투자를 하지 말라고 하니 부동산 정책에 믿음이 가겠는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도층 ‘후안무치’행태에 국민의 울분과 분노가 쌓인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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