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밭과 씨, 수도권 일극체제와 부산 민주당

송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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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찾기 힘든 수도권 일극체제의 비정상 국가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경계라는 표현을 넘어 남북 분단에 비교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공고해지고, 우리 사회의 주요 병폐이자 모순으로 평가될 지경이다. 협의의 수도권을 서울 인천 경기로, 여기에 서울로의 대중교통망이 형성된 충청과 강원까지를 광의의 수도권으로 정의한다면 남은 지역은 영남과 호남, 제주 밖에 없다. 비수도권이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 놓인 데는 지역의 정치지형이 결정적이었다.
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부산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식을 하면서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민주당 부산시당 제공
부산의 정치지형은 2006년 지방선거 때 실종신고까지 돼 선거운동기간 모습도 드러내지 못한 한나라당 후보자(선거일 이후 숨진 채 발견)가 당선된 일도 있었던 만큼 보수 우위의 일방 구도였다. 국민의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됐기에 선거보다 경선 등 공천 경쟁에 관심이 쏠렸다. 2016년 총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이 같은 보수 일방 구도에 균열이 생겼지만 이후 선거 결과, 특히 지난해 총선 등에서 나타난 부산 민심을 감안하면 부산에서는 여전히 국민의힘이 여당이면서 국민의힘 후보자에게 관심이 더욱 쏠리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 같은 정치지형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보수 정치인들과 ‘선거비용 보전’만 받으면 다행이라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진보 정치인들 간의 경쟁 실종을 고착화했다. 그 사이 수도권은 예나 지금이나 공천 경쟁은 물론 본선 승리를 위한 여야의 사생결단 장이었다. 여야와 정치인들은 상대보다 단 1보라도 더 나아간 공약과 정책을 쏟아냈고, 이 같은 경쟁 구도 속에 수도권의 삶은 윤택해져만 갔다. 수도권에서, 수도권을 위한, 수도권에 의한 입법에 여야가 진력하는 동안 부산은 정치적 경쟁이 실종된 식물 상태에 한동안 머물렀고 이 같은 부산의 정치지형은 오늘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급격하게 벌이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됐다.

‘밭’이 이러니 국민의힘에는 ‘씨’가 넘쳐났다. 국민의힘이 ‘몰려든 씨’를 나름 선별하는 동안 민주당은 ‘뿌릴 씨’를 찾는 데 급급했다. 민주당은 최근 18대와 19대 총선에서도 부산에서 후보자를 모든 선거구에 배출하지 못했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문재인 정부 시절 실시된 2018년에서야 처음으로 전 지역에 후보자를 냈다. 이런 인물난 속에 ‘선거 비용’을 한몫 챙겨보자는 심산으로 출마해 자질을 의심받는 민주당 후보자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그 시절 민주당은 ‘밭’이 문제였다고 하소연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치지형이 확 달라졌다. 부산의 정치지형이 보수 우위일지언정 더이상 보수 일방 구도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018년 불모지 부산에서 압승의 기적을 선보였다. 물론 ‘오거돈’과 함께 그 기적은 2년 만에 물거품처럼 사라졌지만 부산의 ‘밭’은 2018년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에는 희망을, 국민의힘에는 긴장감을 줄 정도로 변모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 중 처음으로 부산에서 득표율 40%를 넘어섰고 민주당의 부산 공략이 한층 강화한 상태에서 국민의힘도 부산을 지방선거 필승지역으로 분류하고 사수에 나설 정도니 ‘밭’의 변화가 실감된다.

달라진 밭, 그렇다면 이제는 부산 민주당이 뿌릴 씨의 문제다. 당장 유능하고 참신한 씨를 찾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부산 민주당의 검증된 선출직 인사들에게 큰 흠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밭이 달라진 만큼 최소한의 개량이라도 한 씨를 내놓는 성의는 반드시 보여야 한다. 부산 민주당의 분발을 촉구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부산 발전을 위한 여야 간 경쟁 체제를 구축하려면 부산 민주당이 바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더이상 부산 민주당은 ‘밭 타령’을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시기를 맞았다. 득표율 40%대의 패배를 ‘아름다운 선전’ ‘졌지만 잘 싸웠다’로 추켜세우면서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안일한 발상을 버리지 않는 한 ‘어게인 2018’은 신기루에 그칠 것이다. 아울러 밭이 달라진 만큼 이제는 경쟁 없는 부산의 정치지형을 초래한 책임의 화살이 부산 민주당으로 향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송진영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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