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가 너무 많거나 과격하면 종종 문제가 생깁니다. 수비수가 공을 뒤로 빠뜨려서 주자에게 공짜로 다음 베이스를 내어줄 수 있죠. 이는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 실책이 되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견제, 지연되는 경기 진행은 관중이 보기에도 좋지 않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이럴 때 “마!” 함성으로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하죠.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는 과도한 ‘견제를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2023 시즌부터 견제구 수에 제한을 뒀죠. 두 번까지는 봐줍니다. 그런데 세 번째 견제구를 던져도 주자를 잡지 못하면 ‘보크’로 칩니다. 이러면 주자는 다음 베이스로 무혈입성. 따라서 투수는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지만, 신중하게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권분립이라는 국가 작동 원리도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입법·행정·사법 세 개 권력이 각각 독립하려면, 견제에 따른 균형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견제는 직접적 수단으로 상대를 때리거나 잡으려 해선 안 됩니다. 상대가 지나치게 세력을 확장할 수 없게, 맘대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게, 자유를 무한정 누리지 못하게, 억누르고 제한하는 정도면 족합니다. 특히 견제는 고도의 심리 전술일 때 효과가 더 큽니다. 상대의 피선거권을 박탈하려는 의도로 비칠 만큼 무리수를 두거나, 심판 권한을 가진 상대를 끌어내리려 직접 행동을 취하는 건 ‘순수한 견제’로 보기 어렵습니다.
또 견제는 적당한 횟수로 멈추는 게 좋습니다. 같은 형태로, 같은 취지로 반복되는 견제는 시간만 끌 뿐, 국민 보기에도 좋지 않습니다. 짧고 굵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상대가 자기 베이스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고도의 전술이 필요합니다. 이런 게 진짜 견제가 아니겠습니까.
입법부는 사법부를 공격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덕수 전 총리를 만난 적 있나”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처리한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재판이 옳았다고 생각하나” “윤석열과 만난 적 있나” 등 고래고래 질문을 퍼부었지만, 소득은 없었습니다.
입법부 권력의 다른 한쪽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달았습니다. 그러고는 “대법원장 이석 없이 민주당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도록 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유례없는 일”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장도 국감장에 나와야 한다” 등 거친 말과 행동으로 항의했습니다. 역시나 국감장은 또 난장판. 견제는 사라지고 거친 공격과 충돌만 남았죠.
사법부는 철저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입법부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눈을 감거나 허공만 바라봤습니다. 대신 옆자리에 앉은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이렇게 말했죠.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삼권분립’ ‘사법부 존중’ 이런 부분이 이 자리에서도 실현되는 모습을 원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당리당략에 따라 사법부 편이 됐다가 적이 됐다가 하는 입법부, ‘독립’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모든 논란에 완전히 입을 닫아버린 사법부. 어느 쪽도 ‘견제의 기술’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충돌’이나 ‘싸움’은 견제의 효능을 크게 떨어뜨릴 뿐입니다. 투수가 주자 몸에 견제구를 직접 맞히면, 주자는 당장은 아프지만 다음 베이스로 달아나는 기회를 얻습니다. 역효과입니다. 결론도 내지 못하면서, 횟수 제한 없이 되풀이하는 견제구에 국민이 “마!” 함성을 지를 판입니다. 견제가 실종됐으니, 균형이 유지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삼권’이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