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원화 스테이블코인 ‘뜨거운 감자’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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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디지털 달러 패권 구축…정부, 통화주권 위해 추진
안전망 갖출 방안 급선무…BNK 발 빠른 대응 돋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암호화폐 사랑은 각별하다. 당선인 시절인 올해 1월 출시한 밈 코인 ‘$TRUMP’는 1달러 미만이었던 가격이 한때 75달러까지 치솟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들과 함께 설립한 암호화폐 회사 ‘월드리버티 파이낸셜’은 자체 암호화폐를 판매해 큰 수익을 거뒀다. 그는 이해상충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 스테이블 코인을 법제화하는 ‘지니어스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에 들어왔다.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을 국가전략 자산으로 규정, 디지털 달러 패권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지니어스법에 서명한 후 이를 보여주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법정통화에 가치를 연동한 디지털 자산이다. 가격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와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명칭 그대로 안정적인(stable) 화폐(coin)다.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때 달러 또는 미 국채를 1대 1 담보로 마련하도록 의무화했다. 미국 재정적자를 메우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최근 중국과 브라질·러시아 등 주요 수요처가 매입을 줄여 미 정부는 고민이었다. 스테이블코인이 미국의 천문학적 부채 문제를 완화할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다.

현재 시중 스테이블코인 90%는 달러화에 연동돼 있다.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한 달러 패권은 각국 통화 주권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거래가 확산하면 은행과 외환시장을 거치지 않는 국경 간 자금 이동이 활발해진다. 환율 안정과 통화정책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국 화폐를 버리고 미 달러를 공식 화폐로 사용하거나 자국 화폐와 달러를 공식 화폐로 함께 사용하는 ‘달러라이제이션 현상’이 심화할 전망이다. 통화 주권을 지키고 디지털 통화시대에 맞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스테이블코인은 벌써 우리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해외에서는 차량공유업체 ‘우버’ ‘그랩’에서 결제가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으로 송금뿐만 아니라 결제와 현금 인출이 가능하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에 집중하는 반면, 중국은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두 나라가 디지털 화폐를 둘러싼 패권 경쟁에 돌입했으나 한국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

앞서 한국은행이 CBDC를 추진했으나 이재명 대통령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창용 한은 총재가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은 부작용이 크다고 밝혀 관심이 집중됐다. 새로운 화폐 등장으로 중앙은행 통화정책이 무력화되고, 자본 유출입이 커져 외환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다. 범죄 악용 소지도 다분하다. 일각에서는 달러 엔화 등 주요 기축통화기반 스테이블코인과 비교해 경쟁력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외환 유출 문제를 고려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주장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국내 일부 외국인 근로자는 급여를 스테이블코인으로 받아 본국으로 송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대통령 공약인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해 여당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운영에 대한 법률 제정안을 조만간 발표한다. 은행들도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있다. 시중은행은 물론 BNK금융지주, 제주은행 등이 관련 상표 출원에 나섰다. 이처럼 비수도권에선 BNK금융지주가 주도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대를 준비하고 있어 주목된다. 예를 들어 부산은행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을 지역화폐처럼 운영하고 디지털 자산 연계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대형 시중은행에 비해 취약했던 해외송금 서비스를 활성화한다면 부산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된다.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이 지방은행 틀을 벗어나 전국구로 영역을 넓힐 지렛대 역할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할 전략이 필요하다. 모바일뱅킹 시스템이 일반화하지 않았던 2016년 부산은행은 ‘썸뱅킹’을 만들어 호평받은 바 있다. 빈대인 BNK금융지주 회장은 과거 부산은행 미래채널본부장과 신금융사업본부장 등을 맡아 이런 디지털 금융을 주도했다. 부산은행은 CBDC 시범사업인 ‘프로젝트 한강’에도 지방은행으론 유일하게 참여한 경험이 있다. BNK금융지주가 디지털 화폐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금융회사가 되려 노력하는 점이 돋보인다.

정부 방침에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그렇다고 스테이블코인을 우리만 외면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다. 정부는 리스크를 사전에 감지, 코인과 원화가 1대1로 연동된다는 믿음이 깨지거나 ‘코인런’ 등이 발생할 위험을 막을 방안을 신중하게 고려한 뒤 도입을 준비해야 마땅하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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