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초수급자 죽음 부른 ‘심리 지배’…보복 우려에도 檢은 피의자 석방

신심범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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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3.11.13. 오후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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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거제 옥포항 변사사고의 진실지난달 11일 오후 2시20분. ‘경남 거제시 옥포항 수변공원 바닷가에 사람이 빠졌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물속에서 사경을 헤맨 이는 부산 출신 A(56) 씨. 전날 거제로 온 그는 밤새 술을 마셔 몸을 가누기 힘든 상태였다. 함께 옥포항을 찾은 친구 B 씨가 그를 구하려 뛰어들었지만, 그 역시 밤샘 음주로 정신을 차리기 힘든 지경이었다. 결국 A 씨는 이날 오후 2시44분 숨진 채 발견됐다. 당장 드러나는 정황으론 술에 잔뜩 취한 A 씨가 당한 단순 변사로 비춰졌다. 사건을 맡은 창원해경도 그럴 줄로만 알았다. 곧 종결된 평범한 사건으로 취급될 것처럼 보였다.

거제 옥포항 수변공원. 한국관광공사 제공

상황이 급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3일 취재를 종합하면 A 씨가 숨진 지 일주일가량 지났을 무렵 “A 씨는 그냥 죽은 게 아니다. 그를 때리고 협박해 못 살게 구는 사람이 있었다”는 첩보가 탐문조사 중 확보됐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A 씨는 매달 나라로부터 생계비를 받았다. 몸이 아팠던 터라 힘을 써야 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루 먹고 살길 찾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그런 A 씨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매번 빼앗아 쓰고, 심지어는 공사판 막노동처럼 건강한 사람에게도 힘든 일을 강요해 그 돈마저 가로챈 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해경은 그날의 일과 관련된 인물들을 파고들었다. 첩보는 상당 부분 사실이었다. 확보된 영상 속 A 씨는 한 음식점에서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고는 두 손으로 소주를 따라주고 있었다. 술잔을 든 남자는 A 씨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이들은 식당을 나간 뒤 숙소로 들어갔는데, A 씨는 모텔 방에서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늦게까지 술 시중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영상 속 남성에게 아무런 저항도, 그럴 의지를 내비치지도 않았다. 겁을 먹어 위축된, 상대 남성에게 심리적으로 완전히 제압된 나머지 굴종적인 처사에도 맞서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폭력과 공갈로 약자들 정신 지배

두 사람은 사실상 심리적 지배-피지배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A 씨뿐 아니라 B 씨도 마찬가지였다. 해경은 사고 현장에 있었던 B 씨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그를 피의자로 소환했다. 그날 왜 A 씨가 물에 빠졌는지, 왜 그를 제지하지 못했는지 캐물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B 씨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영상 속 남성인 C(49) 씨가 폭력과 위협을 동원해 자신과 고인을 2년 가까이 학대해 왔으며, 기초생활수급비는 물론 일을 해 번 돈까지 모조리 빼앗겨 전 재산을 갈취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A 씨는 모친 명의의 통장으로 자신이 건설 노동자로 일해 번 일당을 여러 차례 C 씨에게 보냈다. C 씨는 A 씨의 카드를 자신이 직접 소지·관리했으며, 기초생활수급비를 마음대로 인출해 썼다. B 씨 역시 C 씨에게 카드를 빼앗겼고, 그가 요구하는 대로 돈을 갖다 바쳐야 했다. 지자체 소속 자활 근무자로 일한 돈 거의 전부를 그에게 헌납했다. 그동안 A, B 씨는 의지대로 돈을 써본 적이 없었다. A 씨가 숨지기 전날에도 두 사람은 거제까지 갈 차비 5만 원이 없어 전전긍긍했다.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해온 이들로부터 C 씨가 강탈한 돈은 족히 수천만 원이었다.

세 사람은 2021년 무렵 부산 동구 범일동 한 고시원에서 살던 이웃이다. 옆방에 산다는 이유로 자주 술을 강권하던 C 씨는 툭하면 “칠성파 행동대장 출신이다”, “유태파 보스를 내가 작업했다”는 둥 자신이 조직폭력배라고 과시하며 위협적 언행을 일삼았다. 그러나 C 씨는 다리 등 신체 일부에 문신이 그려져 있을 뿐 그가 언급한 폭력조직에서 활동한 사실은 없었다. 공갈이었다.

처음 C 씨는 단란주점의 밀린 술값 수백만 원 정도를 두 사람에게 갚게 시키는 수준으로 돈을 뜯었다. 조금이라도 싫은 티를 내면 곧장 주먹과 발이 날아들었다. 폭력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길들인 것이다. 두 사람의 ‘보스’로서 절대적 복종을 요구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손아귀 아래에 있기를 원했다. C 씨를 조직폭력배라고 생각한 A, B 씨는 혹여 모를 보복이 두려워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꼼짝없이 잡혀 지내야 하는 것으로 지레 생각했다. 그의 위협이 무서워 빈 호주머니에서 돈을 짜내 바쳤고, 아픈 몸을 이끌고 그가 시키는 일을 수행했다.

결국 두 사람은 정신적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들은 C 씨에게 매일 자신들의 생활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하게 보고해야 했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 무엇 때문에 외출했는지 등을 빠짐없이 설명하도록 시켰다. C 씨가 당장 시키는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보복이 가해지는 탓에 항상 집 안에서 대기해야 했다. C 씨가 거처를 사하구 다대동으로 옮긴 뒤에도 상황은 지속됐다. 이유 없이 두 사람을 자신이 사는 곳까지 걸어오게 시키곤 길목마다 사진을 찍어 현재 위치를 보고하도록 했다. 자신의 지배력이 여전하다는 걸 증명받고 싶어 했다.

경제적 처지 탓에 좁은 고시원 속에서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며 살아온 이들의 심리를 악용한 것이다. A, B 씨는 자신들을 제외하면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지인이 없었다. 하루의 전부를 C 씨에게 붙잡혀 있는 것과 매한가지라 남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는 간단한 방법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B 씨는 C 씨가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휘두른 주먹에 맞아 실신해 응급실로 실려 간 바 있다. 그때도 B 씨는 ‘모서리에 찧어 다쳤다’며 폭행당한 사실을 숨겨야 했다. 언젠가 보복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경찰 신고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경찰 ‘미필적 고의 살인’ 검토…2차가해 우려에도 검찰은 ‘석방’

A 씨는 목숨을 잃기 전날에도 C 씨의 부름을 마다하지 못해 거제로 향했다. 모친이 거제에서 장사하는 C 씨는 이전에도 몇 차례 이곳으로 두 사람을 불러낸 바 있다. 이후 세 사람은 식당과 숙소를 오가며 정오가 밝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당시 이들이 마신 술은 소주 스무 병이 넘었다. 불콰한 주기를 띈 C 씨는 ‘바다에서 술을 마시자’며 옥포항으로 이들을 데려갔다. 당시 C 씨는 술기운 탓인 듯 심기가 불편한 낌새를 풍겼다고 한다.

그의 눈치를 보며 A 씨는 초조함과 불안함을 느꼈을 터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A 씨는 C 씨에게 “바다에 들어가 수영이라도 할까”라고 물었다. C 씨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A 씨는 대뜸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B 씨는 “아무 말 않는 것은 결국 ‘말한 대로 하라’는 뜻이다. 말을 꺼내놓고 진짜 물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 C 씨는 A 씨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술을 마셨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터다. 그런데도 그는 A 씨를 말리지 않았다. 결국 A 씨는 타지에서 명을 달리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해경은 C 씨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봤다. 완전한 심리 지배가 이뤄진 상태에서, A 씨가 초조함을 덜어낼 방법으로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선택을 하게 됐다는 취지다. ‘계곡살인’처럼 가스라이팅에 의한 살인이 아닌지 검토해 봐야 한다고 여겼다. 게다가 C 씨를 그대로 놔둔다면 살아남은 B 씨에게 어떤 협박이나 해코지를 가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에 해경은 지난 10일 C 씨를 긴급체포했다. B 씨와 거리를 두게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연합뉴스

그런데 뜻밖에도 C 씨는 머잖아 풀려났다. 창원지검 통영지청이 긴급체포를 불승인한 것이다. 검찰은 현재까지 소명된 혐의만으론 긴급체포 구성 요건이 갖춰지지 않는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찰이 C 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강도와 절도뿐이다. 하는 수 없이 C 씨를 석방한 경찰은 B 씨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수시로 그의 안전을 확인하는 한편 C 씨의 행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사건이 진행 중이라 설명하기 곤란하다”고 전했다. 검찰 관계자 또한 “종결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B 씨는 불안감을 호소한다. 그는 “해경에서 언제든 C 씨 연락이 오면 알려 달라, 즉각 조처하겠다고 말해줬지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기초생활수급비 카드 등도 여전히 C 씨가 가지고 있어 돈을 쓸 수가 없으니 당장 거처를 옮기기도 어렵다”며 “긴급체포나 구속이 되면 C 씨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테지만 현재도 그가 여전히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모르는 전화 받기조차 두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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