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못지않게 과학자 개인 집념 중요
"'불 꺼진 연구소'가 현주소라면 곤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제국대학(국립대학) 공대들은 구미의 과학자들로 교수진을 채웠다. 동경공대는 토목공학, 기계공학, 실용화학 등 여러 과목을 개설했는데 모두 외국인 교수를 배정했다. 학생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양복을 입고 양식을 먹었다.
영국인 교수들은 동경공대의 면학 열기와 실험실 설비에 깜짝 놀라 "과학의 중심이 일본으로 넘어갈지 모른다"는 경고 서한을 본국에 보냈다고 한다.
외국인 과학자들이 배출한 초기 졸업생들은 서양으로 유학을 갔다. 19세기 후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졸업 앨범의 흑백사진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보인다.
이들이 돌아와 제국공대 교육을 담당하면서 일본 젊은 과학자들의 국제적 연구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는 '과학에세이'에서 물리학자 나가오카 한타로의 '토성 모델'을 당시의 걸출한 업적의 하나로 소개했다. 급기야 "일본에서는 똑똑한 학생은 유학을 가지 않는다"는 전통이 생겼다.
조선은 당시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때 서양의 과학문물인 군함에 놀라 문을 더욱 굳게 걸어 잠갔다. 이런 출발의 차이를 생각하면 2025년 현재 한일 노벨 과학상 스코어가 '0 대 27'인 상황은 이상할 게 없다.
두 나라의 기초연구 환경은 이제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개발(R&D) 예산의 기초연구 비중은 일본 12%, 한국 15%이고, 정부의 기초연구 지원액도 일본 22조 원, 한국 18조 원으로 별반 다를게 없다.
하지만 당분간 완패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숲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출신인 김유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변환연구단장은 언론에 "한국 기초연구 생태계가 고만고만한 2, 3년 차 묘목으로 채워졌다면 일본은 곳곳에 수십 년 된 큰 나무가 있는 형국"이라면서 "젊었을 때 작은 연구로 싹을 틔우게 하고 꾸준히 지원해 거목으로 키워낸 것이 지금의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이라고 말했다.
초기의 차이에 이어 그 이후의 차이가 지금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 3명의 생리의학상 수상자 중 한명인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교수는 무려 30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도 믿지도 않았던 '조절 T세포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미국에까지 건너가 연구를 계속했다. 주요 과학학술지들은 증명 불가능한 비주류 연구라며 논문을 실어주지 않았다. 그를 지탱시켜준 것은 '세상이 부정해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맞다'는 신념이었다.
흔히 한국은 오랜 연구에 전념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정부가 성과기반연구시스템(PBS)을 폐지하려는 것도 중장기 연구를 위해서다. 하지만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인 '코로나 백신의 어머니' 커털린 커리코 박사는 "문제(환경)에 연연하지 말라.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학계의 외면에도 30여 년 동안 mRNA 코로나 백신 개발에 전념했다. 이 연구가 비실용적이라는 이유로 대학이 그를 교수에서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강등시켰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연구 테이블과 실험실"이라며 수모를 참고 연구실을 지켰다.
한국 과학계가 12달에서 지우고 싶어한다는 10월, 노벨상의 계절이다. 과학계에서는 반성도 나오지만 환경 탓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삭감도 소환됐다. 하지만 수상자 스토리를 보면 과학자 개개인의 분투는 여전히 중요하다. 고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의 저서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는 대덕연구단지를 가리킨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 곳 연구소의 불이 일찍 꺼지고 주말엔 연구자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원로 과학자들의 개탄이다. 연구방식의 변화에 대한 오해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