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

지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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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9.17. 오후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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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훈 선임기자


미국에서 독립선언서 및 연방헌법과 더불어, 모든 논란에 기준을 제시하는 가장 권위 있는 문서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The Federalist Papers)'라고 한다. 이 연방주의자 논집은 알렉산더 해밀턴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새 헌법 비준을 반대하는 뉴욕주 시민을 설득하기 위해 1787-1788년 익명으로 신문에 기고한 85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

이 문서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권력 서열' 발언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사법부는 '검(군사력)'도 '돈주머니(재정권)'도 없는 가장 덜 위험하고 가장 약한 권력(branch)이니 독립성의 확보가 중요하다"는 부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법부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 행정부와 입법부에 휘둘렸나 보다. 이걸 보면 미국 건국의 기초자들이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면서도 권력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최근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국민주권,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다. 국회는 가장 직접적으로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았다"며 '의회 우위론'을 폈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 시스템 설계하는 건 입법부 권한이다.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며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정당화했다.

헌법학자들은 삼권분립에 어긋난 헌법 인식이라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서는 "사건은 재판부에 무작위로 배당되며, 내란 재판부도 그에 따랐다. 법원의 정당성은 그 무작위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 위에 있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파면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헌법적 논란은 그렇다 치자. 요즘 정치 현실에서 선출된 권력이 국민 의사를 더 잘 반영한다고 믿을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국민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걱정과 위험, 좌절이 선출된 권력 때문에 빚어지고 있지 않나. 검과 돈주머니가 빈약한 사법부의 독립은 240년이 지난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여전히 당위의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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