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광복 80주년 특별사면

지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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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8.13. 오전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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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훈 선임기자


1928년 가을 충남 공주보통학교. 6학년생 이도원은 국사(당시 일본사) 참고서를 읽고 있다 분을 참지 못해 붉은색 연필로 천황 황후 사진을 벌겋게 칠했다가 '불경죄'로 처벌 받았다.

1940년 5월 조선총독부 화장실에서 '대한독립만세' 낙서가 발견돼 경찰이 발칵 뒤집혔다. 범인은 조선총독부 청사 엘리베이터 보이(boy)인 18세 최영순으로 밝혀졌다.

광복 80년을 앞두고 최근 출간된 '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의 일부다. 조선총독부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를 토대로 당시 보통사람들의 독립운동을 추적했다. 이 중에는 학생, 교사, 지역 유지, 소작인, 점원, 비정규직 공무원, 주부, 엘리베이터 보이, 좀도둑도 있었다. 김구나 안창호만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크고 작게 일제가 만들어 놓은 규율을 어기는 방식으로 항거했는데 이는 무장투쟁 못지않게 위대했다.

그 작은 항거로 조국을 지킨 보통사람 독립군들은 우리 민족이 해방되면 일제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충분히 보상받고 일제의 만행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충분히 위안 받을 것이란 기대를 품었을 거다. 하지만 광복으로부터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보통사람 독립군들이 보면 기겁할 일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광복 80주년 특사에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시켜 논란이다. 윤 전 의원이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을 요가수련원, 발 마사지 숍, 식당, 공항 면세점, 동물 병원 등에서 사용해 유죄가 확정됐다.

생존자조차 많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 특히 윤 전 의원의 횡령 사실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는 참담함 속에 광복절을 맞이해야 한다. 이 할머니의 수양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님께 차마 (윤 전 의원 사면) 이야기를 못 전해 드리겠다"고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사면 명단에 포함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는 얼마 전 '조국의 공부'란 책을 펴냈다. '감옥에서 쓴 편지'란 부제는 독립투사의 옥중서신 분위기를 풍기는데, 대법원에서 확정된 그의 죄목은 자녀 입시 비리였다.

국민의힘은 윤 전 의원 사면은 "이완용을 친일명단에서 빼자는 제안"이라고, 조 전 대표 사면은 "현대판 음서제(고위관리 자손에게 시험없이 관직을 주는 특혜) 부활"이라고 비판했다. 사회통합이란 사면 명분 아래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가 파묻히고, 미래세대를 위한 공정과 정의가 무너져 내렸다는 지적은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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