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희망의 봄, 당신에게 다가온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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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숙, 아산, 2025, 벽화, 가변크기, 국립현대미술관 제작지원

■ 정승조 아나운서 ■

위의 작품 사진을 잠시 봐주세요.

화사한 봄이 느껴지는 풍경이지요?

윤종숙 작가의 벽화 '아산'(2025)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한 전시관 벽면에 작업한 수채화인데요.

자신의 고향인 충남 아산을 표현했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밑그림 없이 순간의 생각을 화면에 담았다고 하는데요.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하지요?

이 벽화가 있는 곳에 아트홀릭 독자들이 기다리는 전시가 열렸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중 수채화 100여 점을 모았고요.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수채화도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수채화의 향연인데요.

희망의 봄, 모두에게 다가온 선물이길 바랍니다.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의 정재임 학예연구사를 만나 MMCA 소장품 기획전 '수채, 물을 그리다'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 엄선한 수채화 소장품 100여 점을 모았습니다. '수채: 물을 그리다'에 대해 소개해 주신다면요.

MMCA 소장품 기획전 수채, 물을 그리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5 Ⓒ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김상태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친숙한 수채화라는 장르가 단순히 쉽고 기초적인 그림이 아니라, 작품으로서 갖는 수채화만의 특징과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1920년대의 작품부터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수채화가 최초의 서양화로써 시작되면서 어떠한 시도와 전개를 이루어 나갔는지 살펴보고요.

그 안에서 우리나라 작가들이 수채화를 통해 서구의 형식을 어떻게 자기화하여 작품을 구성했는지 작가마다의 고유한 특징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 왜 '수채화'인가요? 주목하게 된 남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요.

수채화는 물을 섞어 사용하는 질료의 특성상 맑고 투명하며 부드러운 화면을 표현하는 데 적합합니다.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지만 사용하기에는 매우 까다롭습니다.

수채화는 색을 완전히 섞으면 오히려 탁해지고, 색이 완전히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도 경계 값의 색들을 부드럽게 풀어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보색의 대비를 사용하면 작품의 색은 더 선명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채화를 작업할 때는 색의 상호 관계와 색상 간의 조화를 잘 이해해야 하며, 힘과 농도의 조절이 양감을 나타내는 방법이 될 수 있는 매우 숙련도 있고 섬세한 작업입니다.

이러한 서로 다른 매질이 만나 만들어 내는 수채화만의 자연적 특성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함께’ ‘같이’ 살아갈 수 있을지 반추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어요.

맞습니다. 이번 '수채: 물을 그리다' 전시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우리나라 대표 작가들의 수채화 또한 직접 만나보실 수 있어요.

박수근은 수채화로도 그의 마치 화강암 같은 표면을 보여내는 겹치기 방식의 붓터치를 활용하였고, 장욱진도 집, 고향이라는 이상향을 수채화로도 동심 어리게 그려내며 그의 모티브인 둥근 나무와 유유자적한 소와 목동의 모습, 까치와 개 등을 화폭에 등장시켰습니다.

▮ 특히 전시의 리플렛과 도록을 장식하고 있는 이중섭 작가의 작품을 흥미롭게 감상했습니다.

이중섭, 물놀이 하는 아이들, 1941, 종이에 펜, 수채 물감, 14x9cm, MMCA 이건희컬렉션, MMCA 소장


리플렛과 도록의 표지이기도 한 이중섭의 작품은 사이즈가 9x14cm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사이즈의 엽서화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물씬 묻어나오는데요. 가족과 함께 살았던 제주도 시기를 모티브로 가난과 질병으로 인해 떨어져 지내야 했던 가족들에게 계속 짧은 문구와 그림을 보내며 이중섭은 행복했던 가족의 모습을 이 엽서화에 많이 담아냈습니다.

이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이 폭포 밑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간단한 펜 드로잉으로 그린 작업인데, 폭포를 묘사한 부분만을 하늘색 물감을 그대로 사용해 진짜 물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줍니다. 이중섭의 강하고도 대담한 필선은 수채 물감임에도 그 폭포의 무게감과 속도감을 잘 전달합니다. 펜이 물감과 닿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으깨 번지면서 마치 손과 발이 물속에 들어갔을 때 물 안에서 번져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재료와 주제가 잘 어울리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 외에도 '색의 발현'이란 주제로 꾸며진 1부에선 어떤 작가들을 만나보나요?

손일봉, 풍경, 1981, 종이에 수채 물감, 60×72.5cm, MMCA 소장


1부에서는 수채화로 최초 개인전을 개최한 서동진의 1929년 작품부터 투명 수채화 뿐 아니라 불투명 수채화를 매우 유화처럼 밀도 있게 다룬 이인성의 작품, 그리고 수채화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풍경, 정물, 인물에 대한 묘사를 생생한 붓터치로 보여준 손일봉의 작품까지 수채화 영역의 대표적인 작가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2부에선 전상수, 류인, 김명숙 등 수채화를 사용한 작가들의 개성 있는 표현 방식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김명숙, 무제 I,II,III, 1988, 종이에 아크릴릭 물감, 수채 물감, 목탄, 파스텔, 175×132.5×(3)cm, MMCA 소장


2부에서는 수채화로도 이렇게 다양한 표현 방식을 볼 수 있구나 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꼭 미술사조라고 이야기한다기 보다, 김명숙처럼 자기 내면을 좀더 강렬하게 표현한 표현주의적 작품도 있고, 사회와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 사실주의 경향의 강연균의 작품도 있습니다.

물론 다른 매체를 중점적으로 했던 작가들의 수채화 작품에서는 그들이 가진 주장르의 작업적 요소가 수채화 작품에도 많이 전해지는데요. 예를 들어 판화 작품 같은 강환섭의 판화, 조각처럼 인체의 일부가 잘린 류인의 작업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한곳에서 보면서 상징주의나 표현주의 같은 요소가 들어간 작품들에서 흥미로운 모티브를 찾아보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 다음으로 3부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곽인식, 작품 87-A1, 1987, 캔버스, 종이에 수채 물감, 181×90cm, MMCA 이건희컬렉션, MMCA 소장


좀 더 추상적 경향을 띤 작품으로 구성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단색화 경향이 있고, 앵포르멜이나, 미국 추상표현주의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추상화한 화면에서 물질의 실험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아래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김정자 작가도 우연히 두 겹으로 놓인 한지 위에서 작업하다가 아래쪽 종이의 효과를 재발견하게 된 경우이고, 곽인식 작가도 일본의 모노하에 따른 물성 실험으로 종이 앞뒷면을 왔다갔다 하며 물감을 찍어 비치는 효과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박서보 작가의 작업도 한지를 수채 물감에 모두 적신 후에 지그재그로 미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그중 김정자 작가의 1984년작 '수평45'는 어떤 기법을 사용하고 있나요?

김정자, 수평 45, 1984, 한지에 수채 물감, 64×87.5cm, MMCA 소장


물이 번지는 기법을 잘 활용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이 느꼈으면 하는 평화와 위안의 요소가 가장 큽니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마치 자연의 지평선을 보듯 편안한 기분을 느껴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정자 작가는 구성, 디자인, 판화, 실크스크린, 수채화, 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작업하고 가르친 교육자이자 작가로 그의 수채화 작업은 추상화된 풍경화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의 대표 소재는 지평선인데요. 이는 작가에게 늘 평화와 위안을 주는 대상이었고 이것은 결국 자연과 자신의 합일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두 겹으로 놓인 한지 위에 작업하다 아래쪽 종이의 번진 느낌이 더 맘에 들어 계속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 왔다는 작가는 이 같은 우연적 요소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부드러움의 속성을 작품의 주요 특성으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아트홀릭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서보, 묘법 No.355-86, 1986, 캔버스, 종이에 수채 물감, 194×300cm, MMCA 소장


수채화 전시를 준비하면서 의외로 지금, 현재, 우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물과 물감이라는 서로 아주 다른 성질이 만나 서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을 보며, 수채화만이 가진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점점 더 양극으로 갈라지는 우리의 현재가 잠시 잊고 지냈던 수채화 작업들처럼 다시 돌아가야 할 우리의 가치, 인간의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다른 네가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 듯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이번 전시에서 함께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 MMCA 소장품 기획전 '수채: 물을 그리다'

-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기획전시실(5층)

- 일정: 2025. 3. 21.(금) ~ 2025. 9. 7.(일)

- 관람 시간: 10:00부터 입장, 17:00 입장 마감(매주 월 휴관)

- 관람료: 2,000원

정승조 아나운서 /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방송인으로 CJB 청주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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