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무지개 고래-금동현

이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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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클릭아트 이미지.
고래의 천적은 무지개입니다

바다에 비가 오면 무리 지어 다니는 고래 떼가 보여요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이미 해류의 궤적을 잃고 엎치락뒤치락

숨 쉴 땐 물이 튀지 않게 도망치는 게 상책이죠

실망은 하교 후 저녁쯤에 일어납니다 난 종이처럼 소심해져 음악만 들어요 그곳은 다른 바다 무지개 고래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죠

농담의 주파수가 달라 언니랑 따로 놀았어요

달팽이처럼 엎드려 책을 읽는 언니는 리본 달린 치마 하나 없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자랐을까요

난 선천적으로 부정문이 좋았어요

우리는 서로 좋아했다 보다는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진 않았다처럼

양은 술주전자를 집어 던지다 고래 꼬리에 걷어차였죠

그때 내 눈과 고래의 눈이 마주쳤는데

정말 고래의 눈이었습니다

술멸치가 아니라 술고래여서 다행입니다

뭍에서 물속으로 들어가 진화한 동물이라잖아요

사전에 멸치보다 고래가 먼저 나오잖아요

길고 짧은 건 대보지 않아도 알았습니다

서점보다 술도가에 자주 갔으니 속수무책을 살핀 시간보다 파도를 읽은 시간이 길었겠죠

오른쪽 뇌는 잠들고 왼쪽 뇌로 우리와 소통하느라 대화는 무지갯빛으로 횡설수설 멀리 있는 무리에게 신호를 보낼 땐 외마디 소리를 질러요

바다에 비가 그치면 이제 고래는 돌아오지 않고

거대한 고래등 같은 무지개만 뜬다

무지개의 일곱 가지 빛을 더하면 흰색

일곱 가지 색을 섞으면 검은색

달빛이 물결처럼 찰방거리던 마루에서 새끼고래가 아장아장 자랐네요

네모난 통에 숨어있는 고래밥을 빼먹으며

태초는 모르지만 어느 바다에서 건 난 태어난걸요

다시 뭍으로 배밀이한 걸요
 

#무지개 #김유정신인문학상 #당선작 #금동현 #노랫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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