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재난 난이도

최동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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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을 비롯한 동해안은 인간 생활에 적합한 해양성 기후이지만, 바다를 끼고 산맥에 가로막힌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기상 재난을 겪은 경험이 많다. 2002년 8월 말, 하루 870.5㎜ 물 폭탄을 퍼부은 '태풍 루사' 수해를 비롯 겨울철 눈 폭탄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홍역을 치렀다. 소나무 고장이다 보니 산불 피해도 적지 않았다. 지난 2000년 봄 초대형 산불은 고성∼강릉∼삼척, 경북 울진까지 2만 3794㏊를 잿더미로 만드는 역대급 기록을 남겼다.

그때마다 지역 경제는 휘청댔다. 외지인들은 "재난지역에서 관광을 즐기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방문을 주저했다. 관광경제 비중이 가장 높은 도시에 방문객이 없다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시민들은 "강릉 관광을 즐기는 것이 또 다른 자원봉사"라며 방문을 호소했다.

그렇게 여러 형태의 재난을 극복했지만, 올해 가뭄은 피해 양상과 후폭풍이 앞선 재난과는 차원이 달랐다. 산불이나 수해의 경우 건물이 불타고 무너지는 등의 처참한 실체가 드러나지만, 가뭄 피해는 용수 고갈 외에는 참상의 실체도 없으니, 소리 없이 다가와 불특정 다수의 일상과 경제를 무너뜨리는 난이도 최악의 재난이라고 할 수 있다. 급수난에 시달리는 곳으로 관광객을 오라고 할 수도 없어 피해는 전방위적으로 확산했다. '물난리 끝에는 남는 게 없다'고 해 홍수 피해를 최악으로 알았는데, 극한 가뭄을 겪고 보니 그 피해가 훨씬 광범위하고 심대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다행히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학수고대하던 단비가 내리면서 이제 강릉은 일상을 회복했다. 시민사회의 절수 노력과 전국 각지에서 불원천리하고 달려온 소방차 등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이제는 관광경제를 시급히 되살리면서, 기후 위기에 편승해 체급을 더 키우는 널뛰기 재난에 맞설 대비책을 강화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저수지 운용과 지역 내 하천수 호환 등 용수 수급 전반을 재구성하고, 하루 30만 명 생활인구가 북적이는 국민관광지에 걸맞게 시설 인프라와 수용 능력을 높이는 국비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 가뭄이나 수해는 하늘이 만드는 것이지만, 그것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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