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가족 다섯 생계 달려…폐지는 용돈벌이 아닌 생존수단"

최우은 기자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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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상 보이지 않는 이야기…폐지수집 노인 방문조사 현장
도·18개 시군 전수조사 실시
병원·학비 마련 생계형 다수
비수급자 포함 지원책 고심
▲ 27일 춘천 중앙시장 노상에서 노인들이 폐지를 모으고 있다. 유희태
"응어리가 다 풀렸어. 속이 다 시원해"

춘천 근화동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조사를 마치고 떠난 뒤, 폐지수집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정춘옥(75) 할머니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도와 18개 시·군이 강원지역 폐지수집 노인에 대한 첫 전수조사에 돌입(본지 2월 20일 4면)한 가운데 본지가 최근 춘천 근화동 지역의 조사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봄을 시샘하듯 내린 늦겨울 눈과 추위에 폐지수집 노인들의 발은 묶였지만, 직원들에게는 기회였다. 집에 머무는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듣고, 필요한 지원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할머니가 버리는 이불과 신발 등을 담을 봉투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이재경 동장은 재활용쓰레기봉투를 갖다주겠다고 약속했다.
9남매의 맞이로 태어나 결혼 후 5형제가 있는 집안의 맏며느리가 된 정춘옥 할머니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남의 집 손빨래부터 장의사, 보험영업소 운영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투병 중인 남편 몫까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어느 날 계단을 올라가다 어지러웠던 할머니는 주운 박스를 올리다 그대로 고꾸라졌다. 병원을 가니 힘줄이 다 끊어졌다고 했다. 이후 한쪽 다리를 절게 된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 직원들도 울고, 이야기를 전하는 본인도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치매 걱정에 밤에 잠도 잘 안 온다는 할머니에게 이날 조사에 나선 이재경 근화동 동장은 무료 치매 검사 서비스를 연계했다. 함께 방문한 방문복지팀, 복지민원팀 직원들도 △가정방문 서비스(주 1회 방문, 주 2회 안부 전화) △무료예방접종 △응급안전서비스 벨 설치 △AI 건강 모니터링 서비스 등 춘천시의 다양한 정책들을 설명했다.
▲ 정춘옥 할머니는 새벽에 벌써 리어카 3박스를 실어오셨다.
"손주들 때문에 하는 거지"

직원들이 이어서 찾은 성기봉(80) 할아버지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단순 용돈벌이가 아닌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고 있다. 아내와 며느리, 올해 고3과 중3에 진학하는 손주 둘까지 5명의 생계가 온전히 그의 손에 달려있다. 할아버지의 다리는 무릎을 구부리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상해 있었다. 폐지 100㎏를 주워야 5000원을 벌 수 있는데, 그마저도 차량이나 오토바이들에게 뺏기기 일쑤다. 올 겨울에는 빙판길에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크게 넘어져 어깨를 다치기도 했다. 직원들은 손주들의 학자금 지원, 장학금 연계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정춘옥 할머니와 같은 지원책도 이어줬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다행이라며 웃어 보였다.
▲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우유와 건강식품들. 직원들이 온다는 소식에 선뜻 내어주셨다.
이재경 동장은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어르신들을 찾아다닐 것"이라며 "현장에 와보니 폐지수집 노인을 중심으로 기초생활 비수급자 중에서도 어려운 환경에 처한 분들이 많다. 그분들이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늘 고민하고 힘쓰겠다"고 말했다.

강원특별자치도는 3월 30일까지 춘천을 포함한 강원 18개 시·군 전역에서 모두 4차에 걸쳐 폐지 수집 노인 전수조사를 실시, 현황 파악과 개별 상담 등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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