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베네치아, 인천-3] 다문화·다양성은 도시 성장의 현실적 가치

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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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감시·순찰 '격리 도시' 평등·행복 구호는 '공염불'
중국 교두보 인천, 전국 유일 공식 '차이나타운' 보존


1883년 인천이 개항되면서 중국 화교들에 의해 형성된 우리나라 최초, 유일의 차이나타운 입구에 중국 전통식 대문인 패루(중화문)가 설치되어 있다. /인천시 중구청


'동북아 베네치아, 인천'은 인천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바탕으로 미래형 해양도시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시리즈로서 <더팩트>와 인천학회(회장 김경배)가 공동으로 기획 연재한다. 2017년 9월 출범한 인천학회는 인하대, 인천대, 청운대, 인천연구원, 인천도시공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내 최초의 지역학회로서 인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구하는 지식공동체이다. 300만 대도시 인천의 도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담론을 형성하고 다양한 해법을 찾아가는 학술 활동의 성과는 다른 도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국가 발전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동북아 베네치아' 제목은 글로벌 해양도시로서 관광, 물류의 세계 거점 도시를 향한 인천의 발전 가능성과 미래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연재는 인천의 잠재력을 재조명하고,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 또 동북아 해양 네트워크의 중심 도시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이슈를 제공하고, 단순한 도시의 확장을 넘어 살고 싶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조성돼야 하는지 그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에 살면서 '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스텝을 밟으며 춤이 펼쳐지는 무대'라고 언급했다. 제이콥스의 눈에 비친 그리니치빌리지는 '기분 좋은 다양성으로 가득한 곳'이다. 하지만 흑인 퀴어 남성인 문학가 제임스 볼드윈은 그리니치빌리지가 경찰에게 정기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곳이었고, 자신은 위험한 이방인이었다고 술회한다. 백인 주류인 제이콥스에게 그리니치빌리지는 생기 넘치는 역동적인 공간이지만, 흑인 비주류인 볼드윈에게는 감시와 불평등의 공간이었다. 필자도 미국 유학 시절 볼드윈과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1980년대 초반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유학 생활 초기에 겪은 '차별'은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도시에서 제일 부자 동네라는 하이랜드 파크 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가족과 함께 자동차를 몰고 갔다. 소문대로 고급 대리석으로 지어진 맨션이 줄지어 있어 부자들이 사는 동네는 다르다는 것을 보고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차가 뒤에서 경광등을 켜고 쫓아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서라는 것인가 의아했다. 차를 세우니 제복을 입은 백인 경찰이 다가와 대뜸 면허증을 달라며 "여기에 왜 왔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유학생인데, 이 동네가 부자 동네라 해서 구경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경찰이 "여기는 네가 올 곳이 아니니 차 몰고 나가라"고 명령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도시 공용도로를 그냥 운전하며 지나가는데 '네가 타고 있는 고물차는 이 동네에 어울리지 않으니 나가라'는 말이? 유학 초기인 당시 영어가 서툴렀고, 미국 경찰들이 상당히 고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알았다"고 하고는 바로 그곳을 떠났다.

이 불쾌한 기억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 "두고 보자! 내가 박사학위를 따면 바로 이 나라를 떠난다"고 다짐했다. 하루라도 빨리 미국을 떠나기 위해 공부에 열중했다. 그 덕에 비교적 빨리 학위를 받았고, 졸업식 3일 후 유학 생활을 미련 없이 접고 귀국길에 올랐다. 댈러스는 절대 다문화 포용 도시가 될 수 없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이런 상황에 접했다면 경찰에게 "왜 도로에서 운전하고 가는데 이유 없이 차 세우라고 하느냐"고 항의하고, "부자 동네는 고물차로 운전도 못하냐"고 따졌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 온 유학생은 소수집단이고 영어도 서툴렀으며, 고물차를 모는 사람은 부자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잠재적 범죄자로 감시의 대상이었다. 이게 미국의 실상이다.

레슬리 컨이 지은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에 미국 인종차별의 극단이 소개되기도 했다. 2018년 4월 필라델피아 스타벅스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흑인 남성 두 명이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들은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가 약속 시간보다 몇 분 늦게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수갑을 찬 상태였다. 그들은 경찰서로 끌려가서 9시간 동안 구금되었다가 무혐의로 풀려났다.

미국에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들은 공공장소에서 일상적으로 의심스러운 눈빛을 받는 끊임없는 경계와 감시의 대상으로서 잠재적 침입자·범죄자로 종종 인식되고 있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 민족, 종교로 구성된 이민 국가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외치며 모든 사람이 성공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고 한다. 말로는 민주주의, 자유, 평등을 구현한다고 하는데 실상은 감시, 차별, 폭력, 불평등, 빈부격차가 만연한 사회상을 연출하는 실정이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 중심에 조성된 하이랜드 파크는 외부인의 접근이 제한적인 부자 동네로 알려져 있다. /김천권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 동남아 근로자들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은 미국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을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 체류 인원은 올해 7월 기준 42만 6000여 명으로 집계된다. 정부는 앞으로 가파르게 줄어드는 노동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 12만 명까지 고용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근로자를 더 늘리기 전에, 지금 한국에서 땀 흘려 일하는 외국인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과 노동권부터 보장돼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근무하는 일부 중소기업과 3D 업종에서 한국인 고용주들의 임금 체불·욕설·성희롱·폭행 등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7년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나 경찰은 국내에서 범죄 피해를 본 외국인의 국적별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불편한 시선, 거리나 골목에서 회피하는 사람들, 뭘 물어보려 해도 경계부터 하거나 말을 하지 않으려 하는 한국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위화감과 차별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 노동자 눈으로 바라본 한국은 편안하거나 인권이 보장되는 친화적인 곳이 아니다. 오히려 불평등, 배제, 차별, 감시, 억압, 착취의 공간이 된다. 도시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넘는 접촉을 차단하고 단속하는 과잉 감시와 과잉 순찰의 '격리 도시'라는 인식이다. 주류와 주변부, 지배와 피지배, 현지인과 이방인을 끊임없이 갈라놓고 차별하는 '자폐 도시'에서 자유, 평등, 정의, 행복, 희망 등의 구호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한번 만들어진 이미지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특히 좋은 이미지보다 부정적 이미지는 더 오래도록 기억되기 마련이다.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고, 시간이 갈수록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아야 되는 상황이다.

다양성과 다문화 수용성은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주민을 포용하고 이들의 욕구 충족이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을 갖추는 것은 도시발전의 필수 요소이다. 한국인의 다문화 수용성이 서구 사회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점차 향상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명진 고려대 교수의 주장처럼 글로벌 사회와 개방·포용·혁신이라는 전반적인 추세를 고려할 때 한국 도시에서 다문화와 다양성은 적극 받아들여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인천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인 다문화 거리 '차이나타운'이 조성된 도시다. 다른 도시에 없는 차이나타운이 인천에 있다는 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인천이 다른 도시보다 개방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인천이 다른 도시보다 변화와 혁신에 적극적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인천이 중국과 교류를 위한 중요한 교두보라는 의미이다.

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 언어와 민족, 사고와 생활방식이 공존하는 다문화 포용도시가 되어야 한다. 다문화 포용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동화되지 않은 타자와 함께 사는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소통 도시가 실현돼야 한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공식 다문화 거리가 형성된 곳이 인천이다. 그러나 차이나타운만 가지고는 초일류 다문화 도시가 되기엔 뭔가 부족하다. 인천이 진정한 초일류 다문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차이나타운뿐만 아니라 재팬타운, 아메리칸 빌리지, 유러피안 스트리트, 동남아 거리 등이 조성돼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인천이 다양한 사람과 생활방식, 음식과 문화, 거리와 축제를 즐기고 경험하며 상호작용하는 '글로벌 톱10 도시'가 될 수 있다.

/글=김천권 인하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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