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포·고려인 아닌 한국인으로 인식 공감대를
스물한 살의 청년 '찬제 김 주니어'는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한 직후 북한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가 실종됐다. 6·25전쟁 며칠 후 한반도에 투입된 일본 사세보기지 주둔 미 34보병연대 소속으로 하와이 이민 1세대 김찬제의 막내아들이다.
아버지 김찬제는 1902년 제물포항을 떠나 이민선 갤릭호에 몸을 실은 인천 출신이다. 이민 당시 인천내리교회 전도사였던 큰형 김이제와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일곱 살이었다. 나이 차이가 커서 큰형 내외는 동생을 아들로 표기해 하와이 입국 서류를 작성했다고 한다. 김찬제는 이승만 박사가 설립한 하와이 '한인기숙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 이 박사와 독립운동에 헌신하며 건축 엔지니어로 이름을 남겼다. 1918년 이 박사가 설립한 호놀룰루 '한인기독교회'를 1938년 이 박사가 제안한 광화문 문루 형태로 신축한 인물이다.
워싱턴주립대 재학 중 군에 입대한 '찬제 주니어'는 부모의 권유로 알래스카 기지를 마다하고 아버지의 나라와 가까운 일본 기지를 선택했다가 한국전쟁에 투입돼 전사했다. 1950년 7월 '4시간 뒤 규슈에서 군함을 타고 전쟁 중인 한국으로 간다'는 내용의 짧은 편지는 찬제 주니어의 유서가 됐다.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조국 독립에 헌신했다. 그들의 애국애족 정신은 한인사회와 후손으로 이어져 이민 120여 년의 역사 속에 흐르고 있다.
지난달 31일 하와이 한인 이민을 연구해 온 이덕희(84) 하와이한인이민연구소장이 인천을 방문했다. 이 소장은 인천시 중구 자유공원에 있는 '제물포구락부'에서 열린 '기록되지 못한 역사, 기억되어야 할 이름들' 특별전에서 '하와이의 인천사람들'이란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호놀롤루에 한인 감리교회를 처음으로 설립한 김이제와 나이 어린 동생 김찬제 가족의 이야기도 그가 들려준 '하와이 이민사 휴먼스토리'다. 이날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정착해 '대한부인구제회'에서 독립자금 모금 등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인천 부평 출신 민함나 씨도 소개됐다. 특별전에서는 1902년 공식 이민보다 앞선 1901년 하와이에 정착해 한인 이민을 도운 강화도 선두리 출신 김경복 씨 등 한인들의 하와이 이민에 얽힌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소장은 지난달 30일 하와이 한인 이민 연구 공로로 이화여대가 선정한 '제23회 자랑스러운 이화인'을 수상했다. 이 소장의 조부 이익모 목사는 인천내리교회에서 목회했다. 부친은 찬송 '부름받아 나선 이몸'을 작곡한 서울 반포동 남산교회 고(故) 이유선 장로다. 이번 전시회와 특강은 고서숙(74·고송문화재단 이사장) 재외동포청 하와이자문위원이 후원했다. 고 자문위원은 인천에서 초·중등학교를 나와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73년 하와이로 이주했다.
또 제물포구락부에 전시된 40여 점의 묘비 탁본은 하와이 누우아누 오아후공동묘역에 잠든 초기 한인 이민들의 묘비이다. 탁본 작업에는 하와이 현지 고송문화재단 등이 참가했다. '강화 교동, 황원식의 묘', '대한경긔강화 박덕순', '1876년 인천 허셩혀 1941년 9월8일 사망' 등 기억되어야 할 이민 선조들의 묘비명들이다. 이민 1세대들이 첫 사탕수수 노동자로 정착했던 오아후 와이알루아 지역의 푸우이키 공동묘지, 대한인동지회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호놀룰루 카할라 공동묘지, 빅아일랜드(하와이섬) 힐로 알라에 공동묘지 등에도 고국과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이름 모를 한인 묘비들이 산재해 있다. 지난해 10월 국내 개봉한 이진영 감독의 음악 영화 '하와이 연가'에 등장하는 사진신부 임옥순과 몰로카이 섬 한센병 환자로 생을 마감한 김춘석도 우리의 부모가 되어 하와이에 남았다.
김찬제가 나온 하와이 한인기숙학원은 한인기독학원의 전신이다. 하와이 한인기독학원을 처분한 매각 대금 15만 달러는 인천 인하대학 설립의 종잣돈이 됐다. 하와이는 조국독립 운동, 민족교육운동의 전초기지였다.
지난 5일 하와이 한인사회 등이 인천 유치를 적극 지지한 재외동포청이 출범 2주년을 맞이했다. 우리나라 이민 종가인 인천에 유치된 재외동포청은 700만 재외동포가 모국과 교류·협력을 촉진하는 연결고리다. 개청 당시 글로벌 비즈니스의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도 표명됐다. 인천시는 2년 전 재외동포청 유치에 사활을 걸고 하와이는 물론 구미, 아시아 지역 재외동포 단체 등과 교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재외동포청이 입주한 부영송도타워 30층에 '재외동포웰컴센터'와 '한인비즈니스센터'를 설치했다. 하지만 한상기업의 국내투자를 촉진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오피스, 회의실, 세미나실, 라운지 등의 활용 실적도 미비한 수준이다. 재외동포가 찾지 않는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1000만 도시 인천 프로젝트'의 성과를 달성할 수는 없다. 유치 시점의 열정과 의지로 다시 돌아가 지역 경제 활성화의 계기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181개국에 약 708만 명의 재외동포가 살고 있다. 국내 체류 재외동포는 86만여 명이다. 이 중 10% 정도인 8만여 명이 인천에 거주한다. 인천 연수구 연수동 함박마을은 고려인마을로 정착됐다.
재외동포는 한민족 공동체의 소중한 글로벌 자산이다. 조국의 위기마다 물심양면의 모국 지원에 앞장서 온 민간 외교관들이다. 재외동포청은 한인 정체성 함양을 위한 한글학교 운영, 재외동포 청소년의 모국 연수,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등을 수행해 왔다. 지난달 27일 26개국 60여 명의 차세대 리더가 참가한 세계한인차세대대회를 열었다. 인천시는 내년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를 유치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회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재외동포의 역사가 시작된 인천에서 재외동포청과 인천시가 한 지붕 두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개선하고 한상기업의 투자 촉진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재외동포 복수국적 제도, 원폭 피해 등 특수한 처지에 놓인 취약 동포 지원 등도 풀어나가야 할 현안이다. 특히 재외동포는 고려인, 중국 동포, 사할린 동포 등으로 구분되기가 아닌 한국인으로 인식돼야 할 때다. 인천과 깊은 연고를 맺은 하와이 동포 이덕희와 고서숙의 이민 역사 돌아보기가 글로벌 대한민국의 뿌리 찾기이고, 미래 한민족공동체를 실현하는 작은 밑거름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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