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김건희 특검은 어떻게 검사들의 '인질'이 되었나

심인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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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목요일(10월 16일) 뉴스타파는 김건희 특검에 파견된 검사 40명 전원의 실명과 이력을 공개했습니다. 김건희 특검 검사들의 항명 파동 때문에 의아해하고 당황했던 많은 분들이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준 보도라는 평가를 해주셨습니다. 반면 열심히 수사하고 있는 특검 검사들에 대한 ‘토사구팽’이자 ‘낙인찍기’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특검의 고위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검사들을 편가르기 하면 검사들의 의욕이 사라져 앞으로 제대로 수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항의를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긍정이든 비판이든 양쪽 모두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공통의 인식이 있습니다. “특검에서는 검사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적절한 이력을 가진 검사가 특검에서 수사해서는 안된다”는 쪽이든, “특검의 검사들을 흔들거나 낙인찍어서는 안된다”고 얘기하는 쪽이든 “ 검사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특검의 성과는 검사들에게 달려있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제는 당연한 것일까요? 

특검은 검사들의 것이 아니다

특검은 평소에는 없는 조직입니다. 중요한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만 특별법에 의해 특검이 설치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수사’는 모두 검찰의 몫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수사권을 조정하고 공수처를 설치했지만 여전히 그랬습니다. 따라서 특검이 설치됐다는 건 검찰이 제 할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지금처럼 세 개의 특검이 동시에 굴러가는 초유의 상황은 검찰의 직무유기가 그만큼 ‘역대급’이었다는 뜻입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권좌에 앉아있을 때 검찰이 대통령과 영부인에 대한 수사를 얼마나 뻔뻔하게 뭉갰는지 온 국민이 똑똑히 봤습니다. 검찰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검찰이 제 할일을 못해서 만드는 게 특검이니, 당연히 특검은 검사 위주로 꾸리지 않도록 법이 정하고 있습니다. 우선 특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특별 검사(특검이 특별 검사의 줄임말입니다)를 맡느냐인데, 김건희 특검법 4조를 보면 특별 검사의 결격 사유가 이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1.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자

2. 「국가공무원법」 제2조 또는 「지방공무원법」 제2조에 따른 공무원

3. 특별검사 임명일 전 1년 이내에 대통령 비서실 소속 공무원 및 검사의 직에 있었던 자
- 김건희 특검법 제4조 (특별검사의 결격 사유) 중




현직 공무원, 즉 현직 검사는 안된다는 겁니다. 퇴직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검사도 역시 결격입니다. 현재 김건희 특검을 맡고 있는 민중기 특검은 2021년에 퇴직한 판사 출신입니다. 

특별검사는 임명 뒤 20일 동안 준비 기간을 가지는데, 이 기간 동안 특검보와 특별수사관을 임명합니다. 특검보와 특별수사관 역시 특검에 적용되는 결격 사유, 즉 현직 검사나 퇴직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검사는 안된다는 결격 사유가 준용됩니다. 따라서 특검의 근간을 이루는 특검 - 특검보 - 특별수사관에는 모두 현직 검사(공무원)나 퇴직한 지 1년이 안된 검사는 배제하고 있는 셈입니다. 대부분의 특별수사관은 법조 경력이 풍부한 현직 변호사들입니다. 

이렇게 20일의 준비 기간 내에 특검과 특검보, 특별수사관이 차례대로 임명되고 나면 특검의 준비는 일단락 됩니다. 법적으로 보면 파견 공무원을 받는 것은 그 다음 순서입니다. 관련 법 조항은 이렇습니다. 



특별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경우에는 대검찰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경찰청 등 관계 기관의 장에게 소속 공무원의 파견 근무와 이에 관련되는 지원을 요청할 수있다.
- 김건희 특검법 제6조 5항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원래 특검은 특별검사- 특별검사보-특별수사관으로 이루어지는 조직입니다. 이 직위에는 현직 검사 및 1년 이내 퇴직한 검사가 배제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해 부차적으로 검사 등 공무원들이 파견을 오는 것입니다. 김건희 특검법에서 정하고 있는 숫자만 봐도 특별 수사관은 80명까지, 파견 검사는 40명까지로 정하고 있습니다. (9월에 공포된 개정안에 따르면 파견 검사는 최대 70명으로 늘었습니다.) 순서로 보든 숫자로 보든 특검법안이 어느 쪽을 조직의 ‘근간’으로 보고 있는지 명확합니다.

김건희 특검은 검사들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밖에서 보면 김건희 특검은 특별수사관이 아니라 검사들의 조직처럼 보입니다. 저는 김건희 특검을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복도와 사무실 인테리어가 기존의 여느 지방검찰청과 완전히 똑같아서 흠칫 놀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인테리어일 뿐이죠. 이제 조직의 안을 들여다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밖에서 보이는 것처럼 김건희 특검은 검사들의 조직이 맞습니다.  

우선 구성원의 숫자 자체가 그렇습니다. 파견 검사는 40명입니다. 당초 특검법이 정해놓은 상한을 꽉 채워 뽑았습니다. 여기에 검사를 제외한 파견 공무원 80여 명 중 40명 가량이 검찰에서 온 이들입니다. 그러니까 검찰 출신이 모두 80명 정도인 셈이죠. 반면 특검법이 80명까지 뽑을 수 있도록 해놓은 특별수사관은 단 44명만 뽑았습니다. 

숫자만 비교하더라도 검찰 출신이 특별수사관보다 두 배 가까이 많습니다. 더구나 검찰 조직에서 온 80명은 어쨌든 같은 조직 출신으로 최소한의 결속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특별수사관 44명은 현직 변호사나 전직 수사관 등으로 출신 성분이 다양합니다. 조직의 주도권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자명합니다. 



조직 구조를 보면 김건희 특검이 검사들의 조직이라는 게 더욱 분명해집니다. 

김건희 특검의 수사 조직은 수사1팀부터 9팀까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1팀장부터 8팀장이 모두 현직 부장검사들입니다. 각각의 팀 아래에는 수석검사를 포함해 검사가 4명씩 딸려 있습니다. 이 4명의 검사는 각각의 검사실을 이끕니다. 검사실에는 검찰 출신 수사관이나 경찰, 금감원 파견 직원 등이 배속되어 있습니다. 특별수사관들 역시 검사실 소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부장 검사 - 부부장 검사 - 일선 검사실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검찰 조직의 형태를 그대로 이식한 뒤 여기에 특별수사관을 억지로 끼워 넣은 셈입니다. 이러다보니 애초 특검법이 특검의 ‘근간’으로 상정했던 특별수사관들은 검사들이 지휘하는 팀 안에서 검찰 수사관과 비슷한 보조 업무만을 수행하게 됩니다. 아니 오히려 검찰 실무에 익숙한 검찰 수사관보다 서열상 더 하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특별수사관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변호사 출신인 특별수사관은 3급이고 특검에 파견된 검찰수사관은 4급에서 8급입니다.) 

김건희 특검 출범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처음부터 이렇게 검사들로 조직의 뼈대를 만들어놓고 검사들로 하여금 자기 팀에 배속시킬 특별수사관을 ‘픽’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팀은 아예 특별수사관을 받지 않았고 (대표적으로 한문혁 부장검사가 이끄는 1팀에는 특별수사관이 한 명도 없습니다.) 어떤 팀에는 특별수사관이 8명이나 있습니다. 4명의 특검보는 각각 2-3개의 팀을 지휘하는데, 그나마 판사 출신인 문형주 특검보 산하에 있는 7,8팀에 특별수사관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검사들의 ‘픽’을 받지 못한 나머지 특별수사관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별도의 팀을 만들어 보조 업무를 맡겼습니다. 수사 1팀부터 9팀 중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한 특별수사관 13명이 별도의 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김건희 특검에는 1팀부터 9팀 외에도 심층수사팀과 금융수사팀이 별도로 있는데 심층수사팀에 특별수사관이 6명, 금융수사팀에 7명 있습니다. 심층수사팀은 7명 전원이 특별수사관이고 금융수사팀은 9명 중 6명이 특별수사관입니다. 즉, ‘픽’을 받지 못한 특별수사관들을 한 데 모아놓은 것입니다. 그나마 심층수사팀에는 아예 팀장이 없고, 금융수사팀의 팀장은 검찰 수사관입니다.  

그러니까 당초 특검법이 조직의 ‘근간’으로 상정했던 특별수사관들이 김건희 특검에서는 각각의 검사실에 흩어져 검사를 보조하는 업무를 맡고 있거나, 별도의 지원팀에 모여 지원 업무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팀장을 맡은 특별수사관은 한 명도 없습니다. 

경찰 역시 ‘찬밥’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김건희 특검에 파견된 24명의 경찰관 가운데 절반인 12명은 1-8팀의 검사실에 배속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12명은 단 한 팀, 즉 수사9팀에 모여 있습니다. 수사9팀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특혜 의혹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사건의 상당 부분은 이미 공소 시효가 지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찰로 구성된 9팀은 애초에 성과를 내기 힘든 수사를 맡은 셈입니다. 

김건희 특검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9개팀 가운데 8개팀의 팀장이 검사다. 특별수사관은 뿔뿔이 흩어져 있거나 수사를 지원하는 팀에 모여있다. 특별수사관이 팀장인 팀은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정리하면, 검찰이 일을 망쳐서 특검이 꾸려졌는데 여기에 또 검사들이 가서 조직을 장악하고 수사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검사들의 항명과 복귀 요청이 특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검사들을 포함한 검찰 출신이 특검 조직 전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역으로 검사들이 항명 파동을 일으킨 자신감의 근원은 ‘검사들이 없으면 특검이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자신감 때문일 거고요. 결과적으로 보면 온 국민의 분노와 열망을 안고 탄생한 김건희 특검이 검사들의 ‘인질’이 된 겁니다. 특검이 '인질'로 전락한 지금의 상황은 특검 조직을 이렇게 설계한 때부터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결국 말썽을 일으킨 것이죠. 

김건희 특검이 검사들의 것이어서는 안되는 이유

검사들이 김건희 특검을 장악한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즉 김건희와 관련된 범죄를 철저히 수사하는 데 유능한 검사들을 활용하기 위한 고육지책 정도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김건희 특검은 직무 유기의 죄를 저지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특검법에 나와 있는 중요한 수사 대상을 누락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김건희 특검의 수사 대상은 법으로 딱 정해져 있습니다. 특검법 2조 1항을 보면 13가지 구체적인 수사 대상이 나와 있는데요, 맨 앞의 1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 금융범죄 관련 수사, 마지막 13호는 윤석열 김건희의 대선 허위사실 공표 및 공직선거법 위반입니다. 

특검의 수사 조직도 딱 여기에 맞춰서 세팅이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1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금융범죄 관련 수사, 2팀은 뉴스타파 보도로 처음 알려진 이른바 ‘집사 게이트’ 담당입니다. 3팀과 4팀은 명태균 게이트를 포함한 선거 개입 혐의를 수사합니다. 5팀과 6팀은 통일교와 건진법사 관련 의혹을, 7팀은 양평 고속도로 의혹을 수사합니다. 8팀은 1,2팀의 수사를 지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9팀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특혜 의혹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김건희 특검법을 보면 이 13가지 외에 또다른 수사 대상 사건이 있습니다. 2조 1항 14호에 나와있는 사건입니다. 



제1호부터 13호까지의 각 사건과 관련하여 공무원 등이 직무를 유기하거나 직권을 남용하는 등 수사를 고의적으로 지연 은폐하거나 비호, 각 사건과 관련하여 증거를 인멸하거나 인멸을 교사하였다는 의혹 사건
- 김건희 특검법 제2조 1항 14호




14호의 수사 대상 사건은 검사 등 수사기관의 직무 유기와 직권 남용 의혹입니다. 그런데 특검법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 이 ‘14호 사건’과 관련해서는 특검에 전담 수사팀이 없습니다. 1호부터 13호 사건까지는 수사를 담당하는 팀이 딱 정해져 있는데 유독 검사의 직무 유기와 직권 남용을 수사해야 하는 14호 사건에 대해서는 담당 수사팀이 없는 겁니다. 법에 정해진 사건을 수사하지 않으면 당연히 직무 유기에 해당합니다. 이대로라면 김건희 특검은 ‘직무 유기를 수사하지 않는 직무 유기’를 저지르게 됩니다.

당장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즉 법적으로 진행 중인 사건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공수처는 김건희 연관 사건을 뭉갠 검사들에 대한 사건들을 갖고 있었고 김건희 특검이 출범하자 이 사건들을  특검에 이첩시켰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김건희 특검 출범 이후에도 시민단체 등에서 김건희 사건 연관 검사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고발을 진행했습니다. 김건희 특검은 이 고발 사건에 대해 어떤 수사도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조직 전체를 검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수사들이 앞으로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요? 앞서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건희 특검 파견 검사들의 명단을 보면, 여기에는 김건희 사건을 ‘뭉갠’ 책임을 져야할 검사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들이 계속 김건희 특검에 남는다면 14호 사건 수사를 위해 스스로를 조사해야 할 판입니다. 

항명의 진짜 목적

이런 면에서 서울남부지검의 관봉 띠지 분실 사건은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국회에서 검사와 수사관을 불러 책임을 추궁하고,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관련 사건을 특검에서 수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냈습니다. 관봉 띠지 분실 사건은 검사들의 직권 남용과 직무 유기에 대한 첫 수사를 시작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김건희 특검 내부에도 이와 상통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뉴스타파와 통화한 김건희 특검 고위 관계자는 “다른 사건에 대한 수사를 어느 정도 진행한 이후 수사 기간이 절반쯤 남았을 때부터 검사들의 직무유기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특검법 개정에 의해 새로운 인력을 대폭 보강할 수 있게 된 것도 호재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정확히 이 시점, 검사들의 항명 파동이 터졌습니다. 김건희 특검 수사5팀에는 관봉 띠지 분실 사건의 주체였던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 합수단에 있던 검사들이 3명이나 파견되어 있었는데 특검 내부에서는 바로 이 5팀 검사들이 이번 항명 파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항명 파동으로 검사들에 대한 수사 얘기는 쑥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검사들의 항명 이후 검찰청이 검사 파견에 소극적 태도로 돌변하면서 검사 추가 파견은 단 3명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모양새는 이렇게 됩니다. 

“김건희 관련 사건 검사들에 대한 특검 수사가 막 시작되려는 시점에, 잠재적 수사 대상인 검사들에 의해 항명 파동이 터졌고 결과적으로 검사들에 대한 수사는 유야무야됐다.” 

여기에 최근 조선일보가 보도한 민중기 특별검사의 비상장 주식 거래 문제가 겹치면서 새로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김건희 특검의 내부 동력은 상당 부분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잘못 끼운 첫 단추… 바로잡을 수 있을까

지난 주 기사를 내보낸 이후 특검 관계자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완벽하게 정치적인 검사나 완벽하게 비정치적인 검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정치 수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정치 검사인 것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정치 검사인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파견 검사를 선별할 때 그런 부분을 충분히 감안했다고도 했습니다. 

완벽하게 정치적인 검사나 비정치적인 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저도 동의합니다. 이른바 ‘정치 수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반드시 정치 검사가 아니라는 것에도 역시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그가 한 하나의 행동, 그것도 비자발적일 수도 있는 행동으로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유명한 SF작가 테드 창의 말처럼, “실제 현실은 실제 현실이 언제나 그렇듯이 더 복잡하고 덜 극적”이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건희 특검 검사 40명의 명단이 검사 개개인에 대한 낙인 찍기의 소재로 활용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검사 개개인의 이력이나 행적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구조와 맥락입니다. 그게 바로 이 기사를 쓴 이유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구조와 맥락을 감안하더라도 역시 김건희 특검의 첫 단추는 잘못 끼워졌습니다. 설계가 잘못됐습니다. 

만약 특검법의 취지대로 특별검사-특검보-특별수사관으로 조직의 뼈대를 만들고 여기에 필요한 검사들을 파견받아 배치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각 수사팀의 팀장들이 특별수사관들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초반에는 수사의 속도가 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김건희 구속이 조금 더 늦어지거나 권성동 의원이 여전히 국회를 활보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이 집단 항명을 벌이며 복귀를 요구하는 일도, 그로 인해 검사들의 직무 유기에 대한 수사가 좌초 위기에 놓이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김건희 특검이 검사들의 ‘소도’가 되는 사태가 원천 봉쇄됐을 겁니다.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저지른 범죄들 자체는 물론 역시 매우 중차대한 것이지만,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하나의 일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공동체가 그 일탈을 제때 감지하거나 견제하지 못한 ‘시스템의 고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많은 산고 끝에 탄생한 김건희 특검이 윤석열 김건희 부부의 ‘일탈’만을 파헤쳐 화려하게 전시하는 데 그치고  ‘시스템의 고장’을 진단하거나 치료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건희 특검에 검사들의 직무 유기와 직권 남용에 대한 수사를 촉구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김건희 특검이 검사들의 인질로 전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유일한 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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