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뉴스타파]허가된 착취, 고용허가제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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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약 150만 명에 이른다. 산업단지나 농어촌에서 이주노동자를 마주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젊은 층이 떠난 농촌에서는 “이주노동자 없으면 농촌 경제가 마비된다”는 말도 나온다. 

이민정책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한 해 동안 생산과 소비로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는 약 150조 원(2025년 기준). 이주노동자가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한 축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을까. 

이번 다큐 뉴스타파 <허가된 착취, 고용허가제의 굴레>는 이주노동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의 현실을 집중 조명했다. 국가가 ‘합법’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이주노동자의 ‘강제 노동’을 허용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다뤘다.

지난 8월 24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올해 일터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를 기리는 추모제가 진행됐다. 오른쪽 영정사진 속 청년은 2025년 지난 7월 경북 구미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출근 첫날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베트남 청년 응에 뚜이롱 (23세) 씨. 왼쪽은 지난 2월 전남 영암의 돼지농장에서 사장의 괴롭힘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네팔 노동자 툴시(28세) 씨다.
이주노동자에 족쇄 채운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는 중소기업과 농어촌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2004년 도입한 제도다. 베트남, 네팔 등 17개 국가의 청년(19세~39세)들을 선발해 고용노동부가 직접 취업을 알선한다. 제조업, 건설 현장, 농어촌 등 내국인 채용에 실패한 사업장이 이주노동자들의 주요 일자리다. 현재 34만 명(2025년 6월 기준)에 달하는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로 일하고 있다.

올해로 21년을 맞은 고용허가제는 수년 전부터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외국인고용법 25조에 있는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 때문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 한 번 배정된 일터를 바꿀 수 없다. 

일터를 바꾸려면 반드시 사업주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직의 기회도 체류 기간 3년 중 최대 3회로 제한된다. 사업주 동의를 얻어 퇴사한다 해도 3개월 안에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출국당한다. 국내 사업주의 ‘구인난’ 해결을 위해 만든 제도 특성상 이주노동자의 퇴사에 상당한 제약을 둔 것이다. 

일할 권리는 있지만, 일터를 떠날 자유는 없다

일할 권리는 있지만, 일터를 떠날 자유는 없는 이주노동자들. 일터에 갇힌 그들의 삶엔 ‘인권’이란 두 글자가 삭제돼 있다.

지난 7월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던 ‘나주 지게차 학대 사건’의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지난 2월 사장의 폭행과 괴롭힘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이들은 모두 고용허가제로 일하던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끔찍한 학대를 당하면서도 고용허가제의 족쇄에 묶여 끝내 일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2월, 전남 나주의 벽돌 공장에서 스리랑카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지게차에 실린 벽돌과 함께 묶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인권유린을 당했다. 이 영상은 전남이주노동인권네트워크를 통해 사건 발생 5개월 뒤인 지난 7월 세상에 알려졌다. 해당 노동자는 사측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묵살당했고, 영상이 공개된 뒤에야 일터를 변경할 수 있었다.


고용허가제 속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 동의 없이 일터를 떠나면 소위 ‘불법체류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임금을 떼이고, 폭행을 당하고, 위험한 업무에 내몰려도 참고 일한다. 그러다 다치고, 죽는다. 2024년 기준,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내국인의 3.5배. 이주노동자가 내국인보다 일터에서 더 많이 죽는 이유도 고용허가제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도 ‘비닐하우스’에 이주노동자가 산다

노동 환경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발표된 ‘이민자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절반가량은 사업주가 제공한 기숙사에 산다.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기숙사’는 ‘기숙사’라 부르지만 사실은 사람이 거주해선 안 되는 불법 가건물이 많다. 이주노동자들은 농지 위의 비닐하우스, 공장 안 컨네이터 등 일터 바로 옆의 숙소에 살면서 언제든 사업주 호출에 출근할 준비를 한다. 

2025년 8월, 경기도 포천시 채소농장 주변에 검은 차양막으로 덮힌 비닐하우스가 눈에 띈다. 언뜻 봐서는 그냥 비닐하우스로 보이지만 그 안에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진 기숙사가 숨겨져 있다. 그 곳에 이주노동자가 산다.


2020년 겨울, 경기도 포천에서 고용허가제로 일하던 30세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난방도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다가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이주노동자의 숙소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부가 각종 대책을 발표했지만, 그 후로도 큰 변화는 없었다. 

올해 여름, 뉴스타파가 찾은 경기도 포천의 채소 농장에는 여전히 5년 전과 같은 얼굴을 한 ‘비닐하우스 숙소’가 여럿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지자체와 정부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럼 언제까지 사람을 비닐하우스 안에 살게 할 것인가.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다가 고용허가제의 굴레 속에서 다치고, 죽고, 집 아닌 집에서 생활하는 이주노동자들. 이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일터를 바꿀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다큐 뉴스타파 <허가된 착취, 고용허가제의 굴레>는 묻는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주노동자의 일터 변경 자유를 묶어둘 것인가. 21년 전에 만든 낡은 제도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고용허가제라는 굴레에 신음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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