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 부동산 대책' 후폭풍…당정 고위층 '고가 부동산 보유' 실태 적발
이상경 국토부 1차관, 국민들엔 '투기 근절' 경고해놓고 본인은 '갭투자'
'논란 일파만파'에 고개 숙인 與…野, 부동산대책특위 띄우며 공세 돌입
문재인 정부 당시 만연했던 '부동산 트라우마'가 다시금 현 정부와 여권에 드리웠다. 정부가 '대출 억제'와 '투기 근절'을 골자로 10·15 부동산 대책을 시행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정책 설계자들과 여권 고위급 인사들의 '고가 부동산 보유' 실태가 드러나면서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에선 부동산대책특별위원회까지 발족시키며 '대여(對與) 공세'를 집중시키고 있다.
"돈 모아 집 사라" 발언에, '여권 부동산 리스트'까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이다.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이 차관은 19일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지금 (집을) 사려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돈 모아 집값 안정되면 그때 사라"며 "시장이 안정화되고 소득이 쌓이면 기회는 돌아오게 돼 있다. 이번 대책에 대해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렇게 국민들에겐 '투기 근절' 엄포를 놓고선, 이 차관 본인은 사실상 배우자를 통해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수)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차관의 아내 한모씨는 지난해 7월 이번 부동산 대책의 규제 대상지인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 판교푸르지오그랑블 전용면적 117㎡를 33억5000만원에 전세를 끼고 매입했다. 해당 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약 40억원까지 올라 1년 만에 약 6억원의 차익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고위 인사들도 대부분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강도 규제정책 설계 작업의 핵심 키를 쥐었던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초래미안 아파트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개포동 재건축 단지를,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같은 단지를 전세·대출을 끼고 매입해 수억 원의 이익을 누린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운명공동체 격인 여당 지도부도 비슷한 논란으로 뭇매를 맞았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을 두둔하며 "빚내서 집을 사는 게 맞느냐"고 했는데, 해당 발언 직후 그가 송파구에 40억대 재건축(예정) 아파트를 소유한 채 지역구인 동작구에 전세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실거주했으니 갭투자와도 거리는 멀다"고 해명했지만 야권에선 "그게 민주당이 말하는 투기"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부동산 논란은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도 발목을 잡은 바 있다. 당시 '투기와의 전쟁'을 지휘했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료 5% 상한의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직전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14% 올렸던 사실이 드러나 경질됐다. 또 2주택자였던 김조원 청와대 민정수석은 청와대 지침에 어쩔 수 없이 서울 잠실 아파트 매각을 결정했으나 시세보다 2억원 가까이 비싸게 매물로 내놓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각 시늉' 논란을 남긴 채 청와대를 떠났다.
당시 트라우마가 재현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여당도 논란 진화에 나섰다. 한준호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상경 차관 논란에 대해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이 차관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고위공직자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국민 신뢰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저희 여당은 더욱 겸허히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책임 있는 자세로 국정을 바로 세워나가겠다"고 전했다.
또 여권 인사들을 향한 '내로남불' 지적에 대해선 "비본질적이자 메신저를 공격하는 행태"라고 응수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1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가 끝난 후 브리핑에서 '여권 인사들의 부동산 리스트가 돌면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질문에 이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말까지 공급책을 마련한다고 하지 않았나. 대책을 마련하기까지 (이번 정부 대책은) 시간벌기용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전했다.
"국민에 주거 지옥 강요"…장동혁, 부동산특위 수장 자처
이미 국민의힘은 부동산 이슈에 화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전열까지 가다듬은 상태다. 당 부동산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장동혁 당대표, 부위원장은 김도읍 정책위의장이 자처해서 맡았다. 또 국회 기획재정위·정무위·국토교통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수영·강민국·권영진 의원을 비롯해 조은희·김은혜·조정훈 의원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을 특위 위원에 대거 배치했다.
장동혁 대표는 첫 특위 회의에서 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해 "이미 실패로 판명된 문재인 정권의 잘못된 규제를 그대로 복사해 비극을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원내대표부터 국토부 차관까지 자신들은 갭투자의 사다리를 밟아 주요 지역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며 "부동산에 대한 비뚤어진 신념을 관철하려는 위선이자 오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거 지옥을 강요하는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의 폭주를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조정훈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김 원내대표의 해명을 거론하며 "급하게 반박해도 본질은 못 가린다. 내 강남 아파트는 쥐고, 청년의 내 집 사다리는 걷어찬다는 이중성"이라며 "'빚 없이 집 사는 세상'은 현금 부자만 집 사는 세상이다. 10·15 대책에는 1주택자 전세대출 규제까지 들어갔다. 결말은 하나다. 현금 부자는 서울로, 무주택자는 서울 밖으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