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기술 해외 유출 막았던 검찰…"내년부터 수사 공백, 대책 마련 시급"

김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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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수 기자 imsu@sisajournal.com]

삼성, 美 특허침해소송 최종 승소…檢 수사기록 증거 인정
中 BOE사 수출 금지 조치도 檢 활약…노하우 사라질 수도
법조계 "수사 노하우 전수 위해 보완수사로 열어놔야" 제언


ⓒ챗GPT 생성형 AI 이미지


국가핵심기술 유출 범죄 양상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특히 국내 반도체 대표 기업인 삼성을 겨냥한 기술 유출 시도가 빈번하다. 가까운 중국은 국내에 위장 IT 계열사를 설립한 뒤 삼성 전·현직 엔지니어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기술 탈취를 시도한다. 삼성전자 전 부사장이 미국에 기업을 설립한 뒤 삼성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는 기상천외한 일도 발생했다. 국가핵심기술은 한 번 유출되면 돌이킬 수 없는 만큼 처벌보다는 수사를 통한 예방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정부의 검찰개혁이 자칫 기술 유출 수사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어 보완책을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음향기기 업체인 스테이튼 테키야(現 ST Case1Tech)가 2021년 미국 법원에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에서 승소를 확정지었다.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지난 9일(현지시간) ST Case1Tech이 보유한 무선이어폰·음성인식 특허 3건은 삼성전자 특허 침해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이 소송은 안승호 전 삼성전자 IP센터장(부사장)이 퇴직 후 미국에서 특허 관리 회사를 설립한 뒤 주도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가 미국 법원에서 승소한 배경에는 대한민국 검찰 수사가 존재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안 전 부사장을 수사하면서 그가 삼성전자 내부 직원으로부터 내부 기밀 정보를 제공받아 미국 특허침해소송에 활용했다고 판단했다. 안 전 부사장은 결국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후 미국 법원에 안 전 부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과 진술조서를 증거로 제출했다고 한다. 안 전 부사장이 기술 유출 행위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무효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법원은 대한민국 검찰 수사기록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면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당시 사정에 밝은 서울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미국 법원이 다른 나라 수사기록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검찰 수사로 인해 대한민국 기업의 기술을 보호하고 막대한 로열티를 내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던 좋은 예시"라며 "내년부터는 검찰이 이 같은 수사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 수사기관이 우리 기업을 위해 수사해 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한탄했다.

삼성 기술 베낀 中 디스플레이…검찰 수사로 美 수출 제동

최근 검찰 수사로 인해 삼성 기술이 보호된 사례는 또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8월 중국 BOE사가 삼성디스플레이 OLED 기술을 침해했음을 인정해 15년간 수출 금지 조치했다. 삼성디스플레이 기출 유출 사건은 국가정보원에서 2020년 4월 이첩한 자료를 토대로 수원지검이 직접 수사한 사안이다. ITC는 삼성으로부터 우리 검찰 수사 기록 등을 제공받아 면밀히 검토한 끝에 BOE의 광범위한 기술 유출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ITC 결정으로 삼성은 미국 시장에서 경쟁 업체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되는 해외 기술 유출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검찰은 지난 몇 년간 전문수사인력 양상에 주력했다. 수원지검에서 기술 유출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은 수시로 엔지니어들을 불러 함께 공부하는가 하면, 해외 공조 수사를 위한 긴밀한 네트워크도 형성했다. 내년에 생기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도 큰 틀에서 경제범죄, 방위사업범죄를 수사할 수 있게 돼있으나 검찰 수사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하기 위한 세부 방안은 마련되지 못한 실정이다.

기술 유출 범죄 수사 경험이 있는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수사 노하우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특히 미국 법원에서 검찰 기록의 증거능력을 인정받은 고무적인 사례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라며 "경찰 역시 기술 유출 관련 수사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검찰이 함께 수사하는 지금과 비교하면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력 무기 하나를 못 쓰는 상태로 중국 등의 기술 유출 시도에 맞서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검찰청 폐지에 따른 형사사법체계 재·개편을 논의하는 1~2년 사이에도 심각한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며 대책 논의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술 유출 수사를 했던 검사들이 중수청으로 가서 계속 수사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중수청으로 가려는 검사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것"이라며 "국가핵심기술 보호에 있어서는 정부와 검찰·경찰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새로운 수사기관에서 처음부터 노하우를 쌓기보다 기존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경찰의 기술유출 수사에 대해 검사가 보완수사로 협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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