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 사업단, '기술 주권' 지키겠다 취지로 '지식재산권 종합 관리 계획' 짰었다
한전·한수원, 美웨스팅하우스와의 협정서 "美기술검증 전엔 SMR 수출 못해" 조항 넣어
'SMR 독자기술' 완성해도 美 검증 거쳐야…원전 이어 SMR도 수출 때마다 갈등 빚나
'혁신형 SMR' 개발 사업의 전제는 '고유 기술'…美 검증 때마다 자료 넘겨야 하나
허성무 의원 "'진실 규명' 반드시 필요…정부 차원의 '재협상' 권고도 검토해야"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 등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 기술개발사업단'이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SMR 개발과 관련해 '고유 기술'과 '기술 자립'이라는 분명한 목표 아래 향후 생길 수 있는 지식재산권 분쟁 방지에도 예산을 투입했지만, 윤석열 정부 시절인 올해 1월 미국 원자력발전소 기업 웨스팅하우스(WEC)와 맺은 협정 결과 SMR을 수출할 때도 미국 측 승인을 받게 돼 '기술 주권'을 세우겠다는 당초 취지가 180도 뒤집혀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사업단은 SMR 개발과 수출 등에 있어 기술 주권을 지키겠다는 취지에서 실제 '지식재산권 종합 관리 계획'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4년부터 2025년 말까지 예산 5억원 이상을 들여 자체 기술이 다른 기업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지 사전 점검하고, 체계적으로 특허를 관리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WEC와의 협정으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술 자립' 내세운 SMR, 이대로면 수출은 '美 승인' 받아야
12일 한수원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보고한 올해 1월 '웨스팅하우스–한전·한수원 협정' 내용에 따르면, 협정 제2조에는 "용량 170MWe 이하의 SMR은 기술 자립 확인 전에도 마케팅이 가능하지만, (WEC를 통한) 기술 자립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구속력 있는 제안이나 공급을 금지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한국 기업이 SMR을 독자 개발해 수출하는 경우 WEC의 기술 자립 검증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건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미국 측에 SMR 기술 주권을 넘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자금과 기술로 개발된 SMR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이 자립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수출은 물론 실질적인 상업 활동 전반이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조항은 두고두고 한국 SMR 수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WEC가 이 조항을 넣은 것은 자신들의 기술이 한국산 SMR에 들어가 있지 않은지, 기술료를 받아야 할 대상은 아닌지 검증하는 차원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양측이 갈등을 빚었던 전례를 감안해 보면 독자 기술로 한국산 SMR을 만들었다는 우리의 논리는 또 다시 법정으로 가서 긴 분쟁 과정 속 한동안 '주장'에 그칠 여지가 있다. 법적 분쟁을 벌일 경우 수주가 기약 없이 미뤄지거나, 향후 거액을 물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이 원전 수출을 할 때마다 미국과 WEC 측과 갈등을 빚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이 수출을 하는 이른바 '한국형 원자로'는 WEC의 전신인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으로부터 파생된 기술이다. 이런 이유로 앞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당시 미국 에너지부의 승인을 받은 바 있다. 이후 한국 측은 '기술 자립'을 이뤄냈다고 주장하지만, WEC의 입장은 달라 계속 법적 분쟁 등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원전 기술과 SMR 같은 차세대 원전 기술은 글로벌 안보 논리 안에 있기 때문에 '증명의 영역'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한수원과 한전이 해당 협정이 이뤄지기 직전까지 '기술 자립'을 전제로 SMR 개발 사업에 박차를 가해왔다는 점이다. 앞서 한수원과 한전 주축으로 결성된 'i-SMR(혁신형 소형모듈원전) 기술개발사업단'은 지난 2023년 12월부터 오는 2028년까지 6년 간 약 4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SMR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최종적으로 국내 SMR 기술을 개발해 국내 최초 SMR 1호기 건설 기반과 수출 사업화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해당 기조는 허성무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i-SMR 기술개발사업단의 2025년 사업 현황 보고서'에도 구체적으로 명시돼있다. 사업단은 이미 2023년 12월 해당 사업에 착수할 때부터 핵심 목표로 "안전하고 저렴한 차세대 원자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기조를 명시해 놨다. 특히 '핵심기술 개발' '지식재산권 침해 방지' '시장 경쟁력 조기 확보'가 하위 개발 목적으로 함께 제시돼 있다.
특히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단은 기술 주권을 지키겠다는 취지에서 실제 '지식재산권 종합 관리 계획'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2024년부터 2025년 말까지 5억2800만원을 들여 자체 기술이 다른 기업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지 사전 점검하고, 체계적으로 특허를 관리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이 가운데 2억900만원은 i-SMR 특허 관리 전담 기관 선정을 위해, 3억1900만원은 사업 세부 기술 과제별 특허 분석에 배정됐다. 이 같은 노력이 WEC와의 협정으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SMR 수출길'에 빨간불…"정부 차원에서 재협상 권고해야"
더 큰 문제는 해당 조항이 단순한 기술 사용 승인 수준을 넘어, 한국이 독자 개발한 SMR 기술의 수출 가능성까지 스스로 제한했다는 점이다. SMR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80여 종이 개발 중이고, AI(인공지능) 산업 확대와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인해 가장 주목받는 미래 에너지 기술로 꼽힌다.
특히 한국의 i-SMR은 2028년 표준설계 인가를 거쳐 2034년 시험 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미국의 뉴스케일파워, 영국의 롤스로이스 등과 함께 글로벌 선두권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전 세계와 SMR 패권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자국 기술의 수출 결정권을 외국 기업에 넘긴 것은 '자발적인 기술 종속'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i-SMR이 가압 경수로인 APR1400의 주 기기를 소형화한 형태라는 점이다. 가압 경수로 기술이 자신들의 원천 기술이라는 WEC의 주장을 적용하면 i-SMR 역시 이 협약의 범위 내에 있게 된다.
정치권에선 해당 조항이 체코 원전 수출을 둘러싼 분쟁 타결 과정에서 졸속 삽입됐을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2022년 10월,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 원전에 자사의 원천기술이 포함됐다며 미국 연방법원에 한수원과 한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한수원은 분쟁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체코 수주 실패를 막기 위해 웨스팅하우스와 타협 협정을 맺었고, 그 과정에서 SMR 관련 조항까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현재 한수원과 한전이 26조원 규모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을 따내는 과정에서 WEC를 무마하기 위해 '불평등 계약'을 맺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SMR 수출 승인 문제와 함께, 한수원과 한전이 향후 50년간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WEC에 기술 사용료 1억7500만달러(약 2400억원)를 지급하고 6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 규모 기자재를 구매하기로 했다는 계약 조항이 핵심이다.
허성무 의원은 시사저널에 "미래 원자력 시장의 중심은 SMR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며 "정부가 처음부터 지식재산권 분쟁을 방지하고 기술 자립을 목표로 추진한 사업임에도 결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검증을 피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허 의원은 "이 부분에 대해선 반드시 진실 규명이 필요하고 정부 차원의 재협상 권고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수원 등은 이번 사안이 국가 간 비밀 협정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공식 입장 표명이 어렵다는 뜻을 시사저널에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