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추석' 가린 '이진숙의 수갑'…때릴수록 커지는 이진숙

박성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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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10. 오후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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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경찰의 이진숙 '긴급체포→석방'에 野 "법치 앞 정권의 보복 수사 무너져"
與, '정당한 영장 집행' 두둔…박범계 "경찰,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에 따른 과잉"
추석 밥상 화두 뺏긴 與…'스토리·경력·상징성' 쌓은 이진숙, 지방선거 출마설도


"민주당이나 좌파 집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것도 하는 집단이다."(2024년 9월24일, 유튜브에서)

"민주당과 좌파 집단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일을 하는 집단,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을 하는 집단이라고 말한 적 있지 않나. 이진숙, 여기 수갑 차고 있다."(2025년 10월2일, 경찰에 체포되자)

국가공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10월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압송되며 취재진에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총탄을 피해 달리던 기자가 이제 여의도 전장 위에 섰다. 윤석열 정부에선 친윤(親윤석열)계 핵심이었고 그 원죄로 이재명 정부 들어 가시밭길을 걸을 것으로 예고됐던 인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방통위)원장 얘기다. '극우 논란'에 휘말리며 여권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조연에 그쳤던 이 전 위원장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재명 정부 들어 그의 정치적 체급은 커지는 모습이다. '공직선거법 및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전 위원장이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가 곧바로 석방되는 과정에서 수갑 찬 이진숙의 사진, 의기양양한 그의 항변이 추석 연휴 정치·사회 뉴스 헤드라인을 도배하면서다.

'곧 잊힐 인물'로 여겨졌던 이 전 위원장이 갑자기 '보수의 여전사'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여야 모두 그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권이 이 전 위원장 체포 논란을 고리로 헐거워졌던 반명(反이재명) 세력 결집을 도모하기 시작한 가운데 여권의 속내는 복잡해진 모양새다. 이 전 위원장의 행보가 부적절했다는 데 여권 내 이견은 없으나, 추석 연휴 이 전 위원장 관련 뉴스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이 전 위원장의 정치 체급만 높아졌다는 비판이 여권 내부에서 나온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명절 메시지와 검찰청 폐지를 비롯한 3대 개혁 구상이 '이진숙의 수갑'에 일부 묻혔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9월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지켜보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 아래)과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 투표를 마치고 나오며 웃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체포가 전화위복?…'정치 체급' 커진 이진숙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과거 '불굴의 언론인'의 상징이었다. MBC 시절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고, 한때는 '여전사 기자'란 별칭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언론의 최전선에서 권력의 한복판으로 자리를 옮기며 그의 이름 앞 수식어도 달라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그는 '친윤 핵심'으로 분류됐다. 방송통신위원장에 발탁될 만큼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지만 동시에 '정권 편향'과 '언론 장악의 상징'이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렇기에 윤석열 정부가 무너진 뒤 그의 몰락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실제 이재명 정부가 방통위를 해체하면서 그의 이름도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랬던 이진숙의 이름이 다시 정치권을 뒤흔든 건 뜻밖의 장면 때문이었다. 방통위가 해체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이 공포돼 자동 면직된 지 하루 만인 10월2일, 경찰이 자택 인근에서 그를 전격 체포한 것이다. 이 전 위원장에 대한 경찰 수사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과거 직무정지 상태였던 이 전 위원장이 보수 성향 유튜브에 출연해 "좌파 집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집단"이라고 발언한 뒤, 민주당이 그를 공직선거법 및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다만 그가 체포되리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경찰은 여섯 차례 출석요구에도 불응했다며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고 설명했지만, 신원이 확실한 전직 고위 공무원이 피의자 신분으로 강제 체포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 위원장은 체포돼 압송되면서 수갑을 찬 두 손을 들고 취재진에 "국회에 출석하느라 경찰서에 못 왔다는 이유로 내게 수갑을 채웠다"며 "선출권력보다 '개딸'(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 권력이 더 센 것이냐. 대통령 위에 '개딸' 권력 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쟁입니다'란 말을 한 여성(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이 떠오른다. 이재명이 시켰나, 정청래가 시켰나"라고 반문했다. 경찰이 자신의 불출석 사유를 사전에 알았음에도 정부·여당을 의식해 이들의 '눈엣가시'인 자신을 체포했다고 주장한 셈이다.

석방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이 10월4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野 "미친 나라 바로잡아야" 與 일각 "경찰 과잉"

결국 이 전 위원장은 경찰에 약 50시간 구금된 후 풀려났다. 서울남부지법 당직법관 김동현 부장판사는 10월4일 이 전 위원장의 체포적부심사 심문 절차를 마친 뒤 "현 단계에서 체포의 필요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며 석방 명령을 내렸다. 경찰이 '불법 구금'을 했다는 이 전 위원장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이 전 위원장이 성실한 출석을 약속했고, 조사가 이미 상당 정도로 이뤄진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 전 위원장이 석방되자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그러면서 '사법 개혁'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내란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석방했던 사법부가 다시금 국민 상식에 맞지 않는 판단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백승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0월4일 "이 전 위원장의 체포적부심 인용 결정은 국민 상식과 법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공소시효를 완성하려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피의자를 응원하고, 공소시효에 노심초사하며 법의 정의를 세우려는 수사기관을 가해자로 만드는 게 법원이냐"고 사법부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러니 국민들이 사법 개혁을 부르짖는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지 묻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반면 야당은 이 전 위원장이 체포, 석방되는 일련의 과정이 이재명 정부의 '연성 독재(soft despotism)'를 상징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0월4일 페이스북을 통해 "불법적인 영장 발부와 불법적인 체포·감금에 이은 위법수사에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미친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법치 앞에 정권의 정치 보복 수사가 무너진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며 "정권의 입맛에 맞춰 움직인 '정치 경찰'의 극악무도한 폭거는 사법부의 판단 앞에서 거짓과 무능만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그간 이 대통령을 지지해온 보수논객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도 이 전 위원장 체포는 여당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정 전 주필은 10월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당이 이런 짓을 하니 방통법 논란이 생기고 경찰의 부패에 대한 우려가 생기고 검찰 개혁에 대한 반발이 정당화된다"며 "(이 전 위원장을) 경찰이 수갑까지 채워 끌고 간 것은 그가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 것에 대한 민주당 일부 인사들의 사적 감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일당의 쿠데타에 고개를 내저었더니 이번에는 민주당이 깡패와 다를 바 없는 짓을 한다"며 "민주당은 지금 만성적 흥분 상태에 중독되어 간다"고 우려했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 일각에서도 경찰의 이 전 위원장 체포가 '성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찰이 실무 관행도 따지지 않고 이 전 위원장을 무리하게 체포한 탓에 결과적으로 이 전 위원장의 '정치 체급'만 높여줬다는 시각이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10월7일 페이스북을 통해 "소환에 절대로 응하지 않을, 면직과 사법처리를 '여전사의 탄생'으로 스스로 미화하는 이진숙에게 형사·검사·판사로 이어지는 정당한 체포집행, 즉 자택에서 수갑 채워 연행이라는 절차는 1차원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다만 박 의원은 "그러나 이진숙과 그의 동료들 국민의힘이 어찌 반응할 것인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순진함 혹은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에 따른 과잉이 아닐 수 없다"고 경찰을 비판했다. 경찰이 실무 관행을 제대로 따졌는지도 지적했다. 그는 "6차례 불출석 외에 한 번 더 공개 소환 (또는) 체포영장 집행 전 공개적 집행 의지 피력은 왜 없었는가"라고 경찰을 향해 의문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그 결과 온 국민은 이진숙의 수갑과 그의 독설 그리고 석방 후 의기양양한 그와 동료들의 모습을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시청해야만 했다"고 질타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10월9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경찰이 순진했거나 의욕 과잉이었다'라는 박범계 의원 지적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고 했다.

실제 이번 추석 연휴 코스피 지수 상승, 검찰 개혁안 등 정책과 입법 성과를 '밥상 화두'로 올리려 했던 정부·여당의 기대가 '이진숙 체포 변수' 탓에 상당 부분 희석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전 위원장이 추석 연휴 직전인 10월2일 체포되고, 주말인 4일 석방되는 과정에서 대중의 관심이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가 아닌 '이진숙의 항변'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간 흐름에 따른 대중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검색 빈도가 가장 높은 검색어의 경우 100, 검색 빈도가 그 절반 정도인 검색어의 경우 50, 해당 검색어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0)에 따르면, 이 전 위원장이 체포된 직후인 10월2일 오후 5시경 대중의 관심도는 '이진숙 56, 이재명 28'이었다. 다음 날인 10월3일 오후 1시경 대중의 관심도는 '이진숙 16, 이재명 37'로 역전됐으나, 이 전 위원장이 석방된 10월4일 오후 6시경 대중의 관심도는 '이진숙 44, 이재명 31'로 다시 바뀌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경찰의 체포 시도가 무산되면서 이 전 위원장이 이른바 '3S'라는 정치적 자산을 갖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그다드의 종군기자'라는 서사(Story), 공영방송 간부와 장관급 고위직을 거친 경력(Specification), 여기에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정부의 탄압 프레임을 등에 업으며 '보수의 여전사'라는 상징성(Symbol)을 얻게 됐다는 얘기다. 이 전 위원장을 코너로 몰았던 경찰의 수사가 되레 그의 정치적 자산으로 바뀌게 된 셈이다. 이에 야권 일각에선 이 전 위원장이 차기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등에 출마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구시장 대신 인천 계양을 출마?

TK(대구·경북) 지역구의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정치권에 '스펙' 좋은 사람은 많지만 서사가 없으면 전국구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어렵다"며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도 '정권의 희생양' 프레임으로 대권을 잡았다. 지금 비슷한 공식을 따라가고 있는 게 이진숙 전 위원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전 위원장이 '논란의 인물'을 넘어 거물급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넘어야 할 벽도 분명하다. '보수의 여전사'라는 상징이 지지층 결집의 자산이 될 수는 있지만, 동시에 '극우'라는 꼬리표로 확장성에 제약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법률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과 정치적 정당성을 얻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보수의 배수진을 치겠다는 각오로 TK에 도전장을 던진다면 상징적 의미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시장을 뽑는다는 건 지역 유권자들로서는 큰 부담일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승부수를 던진다는 것"이라며 "자신이 정말 당당하고 자신 있다면 (TK가 아닌) 이재명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 등도 후보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석 특별 편성으로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이재명 대통령 부부 ⓒJTBC 캡쳐


이 대통령은 '이진숙 체포' 미리 알았을까

이진숙 전 위원장의 체포 논란 불똥은 용산 대통령실까지 튄 상태다. 경찰이 이 전 위원장 체포 계획을 사전에 대통령실에 알렸는지를 두고 야권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0월9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영장을 신청·청구하면서 경찰과 검찰이 대통령실과 협의했는지, 대통령실에서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밝히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 전 위원장은 10월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실과 민주당, 검찰, 경찰의 합작품이라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썼고 7일에는 "대통령실은 영등포경찰서가 엉터리 출석요구서를 만들어 불출석 횟수를 늘려서라도 이진숙을 체포하라고 지시한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실에서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 측 임무영 변호사는 10월8일 매일신문 유튜브에 출연해 '대통령실도 (이 전 위원장 체포영장 집행을) 알았을 것 같나'라는 질문에 "당연히 알았을 것"이라며 "'대통령이 지시를 했다' 여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대통령실에서 이 내용을 인지는 했고 최소한 묵인은 했다'라고까지는 얘기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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