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청문회에 탄핵까지 꺼낸 '추미애 법사위'…추미애 밀어주는 정청래
우원식도 "결자해지" 압박…조희대 "세종, 왕권 강화 위해 法 쓰지 않아"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 발언은 지금의 민주당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앞세운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당 지도부와 논의도 없이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를 강행했고, 조 대법원장의 "삼권분립을 배반했다"는 거친 언사까지 나왔다. 여기에 정청래 대표는 힘을 실었고, 강경파 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당 전체가 '사법부 압박'에 올라탄 형국이다.
사법부는 이례적으로 속도 조절을 요청했지만 민주당은 오히려 더 밀어붙였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찾아 "사법 개혁 논의에 사법부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돌아온 답은 "결자해지를 통해 신뢰를 스스로 얻으라"고 선을 긋는 한마디였다. 조 대법원장을 향한 사퇴 압박, 회동설 유포, 특검 주장, 청문회 강행까지 일련의 민주당 광폭 행보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포석으로 읽히지만, 당내에서조차 극단으로 향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추미애 '경기지사', 정청래는 '대표 연임' 노려
사법부를 향한 민주당의 공세는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이 기폭제였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조희대 대법원장이 판을 흔들었다"는 의심이 당내에 퍼졌고, 이후 부승찬·서영교 의원이 제기한 이른바 '조희대·한덕수 회동설'은 불신을 키웠다. 조 대법원장,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충식씨(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인 최은순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 등 4명이 회동을 했고, 이 자리에서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한다'는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는 의혹이다.
청문회 정국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지도부와의 논의 없이 청문회를 강행한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사법부 공세의 선봉에 섰고, 정청래 대표는 추 위원장에게 '상의하고 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을 전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대법원장이 뭐라고" 발언으로 추 위원장의 공세에 힘을 실었다. 당론과 무관하게 내란 전담재판부, 특검 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이 잇달아 발의되며 사법부와의 대치 전선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 대법원장의 이례적 메시지가 나왔다. 그는 9월22일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사에서 "세종대왕은 법을 왕권 강화를 위한 통치 수단이 아니라 백성의 삶의 질을 높이고 권리를 보장하는 규범적 토대로 삼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연일 이어지는 정부·여당의 '사법부 때리기'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추미애 위원장은 곧바로 "조희대의 세종대왕 끌어다 쓰기는 자기 죄를 덮기 위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맞받았다.
정치권은 추미애 위원장의 강경 행보를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린 움직임으로 본다. 민주당 최다선인 그에 대해서는 같은 6선인 조정식 의원과 함께 내년 경기지사 출마가 유력하게 점쳐진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경기도에서 민주당 경선 승리는 곧 본선 승리라는 인식이 상당한데, 그 경선 승리의 관건은 '당심'이다. 추 위원장이 연일 '선명성'을 내세워 사법부를 압박하는 것도, 자신이 가장 확실한 승리 카드임을 당원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청래 대표의 행보에 대해서도 강성 지지층의 위세와 이들을 사로잡으려는 속내가 드러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 대표는 처음에는 추 위원장에게 "앞으로는 지도부와 상의하라"며 선을 긋는 듯했지만, 강성 지지층의 추 위원장을 향한 응원은 쏟아지고 이에 반대하는 의원들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곧 입장을 바꿨다. 그는 페이스북에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라는 글을 올리며 사실상 추 위원장의 '방패'를 자처했다. 집권여당의 지도부조차 민심이 아닌 당심 앞에서는 쉽게 방향을 틀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한동훈 "이러면 누가 '소신 판결' 하겠나"
정 대표에게도 '당심'은 현재 무엇보다 필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연임을 거쳐 대권에 도전했던 것처럼, 자신도 같은 길을 밟아 대권 가도에 오르고 싶어 한다는 해석이 많다. 그렇다면 강성 지지층의 '절대적 지지'는 그에게 정치적 자산이자 생존 조건이다. 당심을 놓치는 순간 차기 구도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계산이 추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배경으로 작동한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민심의 지지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최근에는 오히려 역풍 기류가 감지된다. 리얼미터가 9월22일 발표한 정당 지지도 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도는 44.2%, 국민의힘은 38.6%다. 양당 간 격차는 5주 만에 다시 오차범위에 들어왔다. 특히 중도층에서 민주당 이탈이 두드러졌다. 중도층의 민주당 지지율은 53.3%로 전주보다 3.7%포인트 떨어졌고, 진보층(1.7%p↓)과 보수층(1.6%p↓) 역시 소폭 하락했다.
대통령 지지도도 유사한 흐름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긍정 평가는 53%로 2주 연속 하락했다. 특히 중도층에서 지지율이 3.7%포인트 빠졌다. 리얼미터는 "민주당의 대법원장 사퇴 압박 공세가 과도한 정치 공세로 인식되며 진보층과 학생층 일부가 이탈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대통령 지지율 역시 삼권분립 침해 논란과 특검의 국민의힘 당사 압수수색 등 정치적 이슈가 민생 정책의 효과를 상쇄하며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야권에서도 반발이 나오고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기소와 재판에 복수하기 위해 검찰청 폐지, 조희대 대법원장 숙청 시도, 배임죄 폐지까지 시도하고 있다"며 "이 모든 것들이 모두 깔때기처럼 이 대통령의 형사 재판과 기소로 귀결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양심에 따른 재판을 했다고 판사를 징벌하는 게 성공하면 그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며 "이러면 누가 앞으로 권력자 또는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 소신 있는 판결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 대법원장의 탄핵을 주장하려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순서대로 절차를 밟아야지 청문회나 여론전으로 끌고 가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당내 강성 지지층의 결집은 경선에서야 의미가 있겠지만, 목소리 큰 소수에 기대는 전략은 본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