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받으러 660㎞까지 내달려" '병든 몸' 이끌고 '병든 지방' 떠난다 [시사저널 연중기획│지방소멸에 산소호흡기를 ③]

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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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80대 노부부의 10시간 '원정 진료'…진료실은 '서울'에, 대기실은 '전국'에
'서울 병원'에서 수술한 환자 절반 '지방 사람'…'제2의 수도' 부산에서도 매년 5000명 상경
'4대 필수' 진료과 상급병원, 서울 14곳 경기 6곳…전남·충남·충북 '1곳' 경북·세종 '0'


대한민국이 저성장·저출생의 늪에 빠졌습니다. 인구 소멸은 곧 지방소멸을 뜻하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도, 주거도, 육아도 빠진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청년이 떠나고 노인만 남는 현실이 고착되고 있습니다. 소멸과 집중의 속도를 늦추고 균형을 회복하는 일은 지금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이는 지역균형발전을 약속한 이재명 정부의 시급한 시험대이기도 합니다. 시사저널은 2025년 말까지 지방소멸과 수도권 집중의 현장, 쟁점, 대안을 심층 추적하는 연중기획을 준비했습니다. 특히 각 지역 독자 여러분의 생생한 제보를 바탕으로 삶의 현장을 밀착 취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7월16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서울 시내 대형병원의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와 이용객들이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80대 부부의 하루는 새벽 6시에 시작된다. 전남 순천시 월등면에 사는 김병기씨(가명·85)와 최순덕씨(가명·80) 부부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는 날이면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을 나선다. 노부부는 집 앞 정류장에서 순천종합버스터미널로 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터미널행 버스는 하루에 4대밖에 없어 놓치면 끝장이다. 덜컹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리면 터미널에 도착한다. 아들 내외가 끊어준 버스표를 제시하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이렇게 3시간40분을 또 달린다. 터미널에서 아들과 만나 차로 30분을 더 가면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한다. 대문을 열고 나와 병원 입구로 들어가는 데만 보통 5시간이 넘게 걸린다.

노부부가 병원 치료를 위해 상경 버스에 올라탄 건 올해로 25년째다. 부부는 서울아산병원이 옛 '중앙병원'일 때부터 다녔다고 한다. 남편 김씨는 "정주영 회장님이 살아계실 때부터 다녔당께. 이제는 여그(여기)가 내 집같이 친숙해"라고 말했다. 아내 최씨는 오랫동안 암 투병을 했다. 20년 전 이곳에서 위암 수술을 받고 호전되나 싶었지만, 이번에는 심장 판막에 문제가 생겼다.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도 다녀봤지만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원래 다니던 서울아산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부부는 매번 왕복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달렸다.

그런 부부가 정작 주치의를 만나는 시간은 10분 남짓이다. 피검사와 초음파·심전도 검사를 한 뒤 이를 바탕으로 의사 소견을 듣는 것이다. 부부는 "의사 선생님한테 꼭 물어보자"며 미리 질문거리를 준비해 와도 주치의 설명만 듣다가 진료가 끝나버린다고 했다. 이들은 "진료실 문 밖으로 나오면 그제야 생각날 때가 왕왕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진료마저도 제시간에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환자들이 몰리는 날에는 예약을 해도 병원 로비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막차를 놓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아내 최씨에겐 병마와 싸우는 것만큼 경제적 부담도 큰 짐이다. 두 사람의 왕복 차비만 16만원이 넘고 여기에 진료비, 약값 등까지 합하면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다. "젊어서 시어멍(시어머니), 시아방(시아버지), 시누랑 복성(복숭아)·매화(매실)·자두 팔아 번 돈 병원비에 다 쓰네." 최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노부부는 밥값이라도 아끼기 위해 집에서 꼭 요기할 간식거리를 챙겨온다고 한다. 남편 김씨가 말했다. "까만 봉다리(봉투)에 묵을 거 이고 오는 할매도 있당께. 마트 카트나 여행가방에 싸들고도 오드만".

부부는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 알 수 없다. 이런 고민은 비단 김씨 부부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7월14일 시사저널이 서울아산병원을 찾았을 때도 전국 각지에서 온 환자와 보호자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로비에 앉아있으면 전국 사투리가 사방팔방에서 들릴 정도였다. 한반도 최남단에 있어 '땅끝마을'이라고 불리는 전남 해남에서 온 장석만씨(가명·72)도 그중 한 명이다. 해남에서 서울까지 왕복 직선거리는 약 660km다. 장씨는 이날 진료가 채 끝나지 않아 막차를 타고 해남으로 내려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또 올라와야 한다고 했다. '병원 근처 숙소에서 자고 가면 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나이 든 사람들은 그런 데서 자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서울 병원'에 '지방 환자'가 많은 현상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대상자의 34개 주요 수술 통계를 정리한 '2023년 주요수술 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의료기관에서 2023년 한 해 동안 46만8637명이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이 중 44.2%(20만7401명)가 서울 외 지역 거주자였다. 제2의 수도라 불리는 부산에서도 1년 동안 4982명이 병원에 가기 위해 서울행 기차와 버스를 탔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 있는 사람이 서울 병원에서 쓴 진료비만 한 해 1조4320억원에 달한다. 서울 사람이 쓴 돈(1조3183억원)보다 많다. 이는 2024년 전남 순천시 예산 약 1조4849억원과 맞먹는다. 타 지역 환자가 서울 의료기관에서 쓴 돈으로 지방 중소도시의 1년 살림살이를 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전남은 전체 진료비의 39%를, 경북은 35%를 외부에서 지출하고 있다. 경북에 있는 수술환자(8만8942명) 중 절반(4만2985명)만이 도내 의료기관에서 수술을 받았다.

7월16일 서울아산병원에서 환자와 이용객들이 입퇴원을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5대 암 환자 많은 상위 지역, 모두 지방에"

지방에는 수도권보다 아픈 사람이 더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펴낸 '2023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위암·간암·폐암·대장암·자궁경부암 등 5대 암 질환자가 많은 상위 5개 시도에 전남·전북·경북 등은 빈번하게 포함된다. 반면 수도권 지역은 명단에 없다. 만성 질환자도 지방에 집중 분포돼 있다. 한국인의 고질병인 고혈압과 당뇨병 환자가 많은 상위 5개 지역에도 전남·전북·강원 등이 이름을 올린다. 서울은 물론 7개 광역시는 전부 제외돼 있다. 상위 5개 지역의 공통점은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노인 인구 비중이 높은 인구 소멸 지역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방 환자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병든 지방을 떠난다. 질 좋은 병원이 서울에 몰려있어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각 분야에서 1등급 평가를 받은 '우수 병원'을 선정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에 사는 폐암 환자가 수도권 내에서 갈 수 있는 질 좋은 병원은 45곳이다. 반면 경북 지역에는 한 곳도 없다. 2023년 기준으로 경북에는 인구 10만 명당 305명의 폐암 환자가 있다. 경북과 함께 폐암 발병률이 높은 전남과 전북에도 각각 1곳·2곳뿐이다. 수도권의 환자는 병원을 선택하지만, 지방에는 그 선택지조차 없다는 이야기다.

절대적인 의사 수도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의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는 497명이다. 반면 세종은 206명, 경북은 215명, 충남은 230명밖에 안 된다. 최소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것이다. 통상 3000명의 신규 의사가 매년 배출된다. 그 많은 의사의 대다수가 서울에서 메스를 잡는 셈이다. 박기영 순천대 교수(전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는 "의료기술 고도화와 자본 집중이 맞물리며 '빅5'로 대표되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 진료 수요가 몰리고, 지역 의료기관은 무력화되고 있다"며 "수도권에 대형병원이 신설되고 병상 수가 많이 증가하면서 지방 의과대학 졸업생 상당수가 수련을 위해 서울로 이동해 지방의 의료 인력난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흔히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라 불리는 4대 필수진료과는 지방에 턱없이 부족하다. 시사저널이 심평원의 '건강지도'를 통해 지방에 4대 필수진료를 볼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이 얼마나 분포돼 있는지 확인한 결과, 수도권은 △서울 14곳 △경기 6곳 △인천 3곳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북과 세종에는 단 1곳도 없었다. 이곳의 고위험 산모와 영아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어쩔 수 없이 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지방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북 2곳 △강원 2곳 △전남 1곳 △충남 1곳 △충북 1곳 등으로 집계됐는데, 수도권과 지방 간 필수의료 인프라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서울보다 넓은 대구 군위, 소아과 병원 '0'"

국가는 필수의료를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로, 지역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형평성 있게 제공돼야 할 분야'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이러한 정의에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구 군위군은 광역시에 속해 있지만 병원급 소아청소년과가 한 군데도 없다. 군위군 면적은 614㎢로, 서울 전체 면적인 605.21㎢보다 넓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김아무개씨(28)는 "어릴 때 아프면 엄마 손을 잡고 동네 내과에 갔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김씨는 행여 큰 병이 의심되거나 동네 병원이 문을 닫을 때면 경북대병원이나 대구가톨릭대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김씨의 자택에서 경북대병원까지는 58km로, 자차로 이동하면 1시간6분이 소요된다. 그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가장 신기했던 게 10분 내로 원하는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의료 불균형은 단지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질, 지역 정주성, 나아가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와도 직결된다. 병원 하나 없는 고향에 누가 남으려고 할까. 울산에서 태어나 인천에 직장을 구한 신아무개씨(27)는 이렇게 말했다. "예비신부와 신혼집을 울산에 구할지, 인천으로 할지를 두고 오래 고민했다. 결국 집값이 몇 배 더 들더라도 인천을 택했다. 출산과 육아를 생각하면 믿고 다닐 수 있는 산부인과가 집 근처에 있고, 아이가 아플 때 곧바로 달려갈 수 있는 대학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지방소멸 위기를 겪은 일본은 어떻게 의료 인프라 격차를 극복했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한 건강관리서비스 개선 방안 연구'에는 그 해법이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일본은 '과소지역의 지속적 발전 지원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지사에게 진료소 설치, 환자 수송을 위한 차량 정비, 기타 의료 확보에 필요한 사업 수행의 의무를 부여한다. 지자체장에게 지역 의료망 구축에 대한 의무가 있음을 법으로 명시하는 것이다. 대신 국가가 해당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의 절반을 보조한다.



"공공병원 비율 10%…민간의 중심 美보다 ↓"

원격진료라고 불리는 비대면 진료 확충에 대한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지리적 여건으로 내원이나 통원이 어려운 환자에게 화상전화 등 장비를 대여해 진료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거점병원과 수도권 병원 간 공조도 가능하다. 정보통신기기를 활용해 거점병원 의사가 환자의 X선, MRI 등 영상판독 결과를 수도권 병원 의사에게 전송하면, 전문의가 진단과 자문을 하는 구조다. 가고시마시(市)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해상에 있는 낙도마을 '도시마촌(村)'은 원격진료가 활성화된 지역 중 하나다. 이곳엔 상근의사는 없고 간호사만 상주하는데, 간호사가 태블릿PC를 통해 의사에게 환자의 심전도 등 생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면 원격지 의사가 적절한 처치를 지시한다고 한다. 이 역시 사업비 3분의 1을 국가 재정으로 지원한다.

일본은 공공병원 개편에도 힘쓰고 있다. 효고현(県) 가코가와시(市)에서는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통합을 시도했다. 공공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좀 더 자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체제를 손질한 것이다. 의료진 확보부터 진료 서비스 개선까지, 행정 절차에 발목 잡힌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서지만 '사회적 책임'을 수행할 제도적 틀은 유지되는 셈이다. 이러한 개편의 밑그림을 짜는 데는 지역 의사회, 공무원, 주민 대표 등이 참여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의사 출신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공공병원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안 의원은 7월15일 시사저널과 만나 "우리나라 공공병원 비율은 10%도 안 된다. 민간 중심으로 의료 체계가 갖춰진 미국보다도 낮다"면서 "세금으로 공공병원을 지원해 적자를 보전해야 지방의료가 자리 잡을 수 있지, 돈을 한 푼도 안 쓰면서 의료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부울경, 대구·경북, 호남권을 하나의 단위로 통합하고, 중앙정부가 독점한 재정과 입법 권한을 지방정부에 과감히 이양해 지방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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