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은 이용호 첨단바이오의약연구부 책임연구원 연구팀이 임미희 KAIST 화학과 교수 연구팀, 건국대, 영국 케임브리지대, 일본 도호쿠대 연구팀과 함께 서로 다른 난치성 질환들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분자적 연관성을 규명하고 총설 논문을 지난 17일 국제학술지 ‘중개 신경퇴행’에 발표했다고 22일 밝혔다.
난치성 질환은 질환별로 임상적 차이가 있지만 분자 수준에서 공통된 양상을 보인다. 연구팀은 임상적으로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신경퇴행성질환, 암, 감염병, 제2형 당뇨병이 단백질 오접힘과 응집, 만성 염증, 신호전달 경로 이상 등의 공통된 분자적 과정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단백질 오접힘과 응집을 통한 '크로스 시딩(Cross-seeding)' 현상으로 서로 다른 단백질 간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크로스 시딩은 한 단백질 응집체가 다른 단백질의 오접힘과 응집을 촉진하는 현상이다. 한 질환에서 일어나는 병리 과정이 다른 질환의 진행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신경퇴행성질환 내에서 질환 간 연계성과 공병리(Co-pathology)가 발생한다는 점도 규명했다. 공병리는 한 개인이나 조직 내에서 여러 질환의 병리 현상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상호작용하는 상태다.
알츠하이머병의 아밀로이드베타, 타우병증의 타우, 파킨슨병을 포함한 알파시누클레인병증의 알파시누클레인은 서로 상이한 단백질이지만 오접힘과 응집을 통해 상호작용해 공병리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원인 바이러스(SARS-CoV-2)의 스파이크 단백질이나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의 SEVI 단백질은 신경퇴행성질환을 유발하는 단백질 응집체의 일종인 아밀로이드 피브릴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헤르페스바이러스 1형과 엡스테인바바이러스(EBV)는 아밀로이드베타 응집, 타우 과인산화, 신경염증 유발 등의 기전을 통해 신경퇴행성 질환 간 연계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퇴행성질환과 암에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분자 기전과 위험 요인이 존재하며 신호전달 경로가 상반된 방향으로 조절되는 특징을 보였다.
특히 p53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의 응집 과정에서 단백질 간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점과 아밀로이드 피브릴이 암세포에 독성 효과를 미친다는 점을 통해 연구팀은 단백질 오접힘과 응집이 암과 신경퇴행성질환을 연결하는 핵심 분자 기전임을 밝혔다.
제2형 당뇨병에서 생성되는 오접힘 단백질인 아밀린이 크로스 시딩을 통해 아밀로이드베타 응집과 알츠하이머병 병리를 가속화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당뇨병 환자에서 인지 기능 저하 및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성이 증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대사 이상이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병리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자적 근거가 제시됐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질환들이 단백질 오접힘 등 공통된 분자 기전을 통해 연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질환은 생체 시스템 전체 상호작용 네트워크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연구팀의 접근은 질병 근본 원리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복합 질환의 핵심 병리 과정을 표적 삼는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 가능성을 연다.
임미희 교수는 “공통된 병리학적 기반을 규명해 기존 약물을 신경퇴행성질환 치료에 보다 효과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연구는 혁신적인 진단 및 치료 전략 개발을 가속화해 궁극적으로 환자들의 다중 질환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호 책임연구원은 “다학제적 융합 지식과 기존 연구결과 및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신경퇴행성질환과 무관해 보이는 다양한 질환들 사이의 분자적 연계성을 규명하고 기전을 제시했다”며 “난치성 질환의 발병과 진행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적 틀을 제공하고 여러 난치성 질환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치료제 개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참고 자료>
doi.org/10.1186/s40035-025-005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