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사과학자]③ "짧은 호흡의 연구가 대다수…전문성 쌓일 시간이 없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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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환자 의식 찾는 메커니즘 연구 이승주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이승주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편집자주] 의사과학자는 의대 졸업 후 의학, 과학, 공학 분야를 연계 지어 연구하는 의사인 동시에 과학자입니다. 임상 경험과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높은 이해로 의료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첨단 바이오 및 의료기기 분야에서 새로운 치료제 또는 치료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전문가들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국가 차원의 백신 개발 기술 확보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정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생태계 강화에 나섰지만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도 사실입니다. 임상의에 대한 높은 선호도와 불안정한 연구 환경 등으로 국내 의사과학자 수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상황으로 국내 의사 중 의사과학자 비율은 1%에 불과합니다. 동아사이언스는 비율은 1%에 불과하지만 공중보건은 물론 첨단바이오 분야에서만큼은 상위 1%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는 국내 의사과학자들을 직접 만나 의사과학자로서의 고충과 역할의 중요성 등을 조명해봅니다.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를 수행하는 기간은 보통 4년입니다. 선정 이후 집행까지 3~4개월 가량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성과 정리·보고 의무와 같은 각종 행정절차는 또 다른 부담요소로 작용합니다. 짧은 호흡은 질문을 얕게 만들고 한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대신 '이번 과제에 맞는 결과'로 연구를 쪼개도록 유도합니다."

서울 송파구 소재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이승주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의사과학자로서 수행하는 연구개발 제도의 문제를 호흡·구조·평가·사람 4종류의 키워드로 요약했다. 그는 "의과학 분야 대다수 정부 연구과제는 실제 연구에 온전히 쓰는 시간이 2년 남짓"이라고 했다. 의사과학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제도적 손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중환자실, 그다음 시간’을 책임지는 신경중환자의학 전문가다. 임상 현장에서 아직 생소한 분야지만 중증 환자의 예후를 가르는 핵심 역할을 맡는다.

뇌손상 직후부터 회복기로 접어드는 가장 불안정한 구간에서 호흡·혈압의 요동을 가라앉히고 폐렴 같은 합병증을 막으며 손상받은 뇌를 지키는 게 그의 역할이다. 인공호흡기 관리와 혈압·체액 조절, 감염 예방, 진정·진통 조절 같은 전신 관리부터 뇌압·뇌관류압 모니터링과 신경학적 평가까지 전 영역을 총괄한다.

수술로 위기를 넘긴 뒤에도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중환자실에서 병동으로,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환자를 무사히 옮겨 놓는 '다리'가 그의 일이다.

이 교수는 연구에도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다. KAIST에서 혈관생물학을 공부한 그는 의학석사와 이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글로벌의사과학자 양성과정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KAIST에서 체득한 실험 문화와 운영 방식을 병원 현장에 이식하고 다시 환자 곁에서 검증하는 순환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승주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신경중환자의학이라는 특수한 현장에서 가장 위중한 환자를 돌보는 이 교수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정부과제 제도에도 누구보다 깊이 고민한다. 그가 가장 먼저 짚은 건 과제의 호흡과 스케일이다. 소규모·단기간 과제 구조가 연구의 방향까지 바꾼다는 것이다.

단일 과제로는 연구원 두세 명을 간신히 유지하기도 어렵고 결국 생존을 위해 주제를 넓히는 것이 '의과학 연구의 현주소'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뇌손상 이후 의식 회복에 집중하고 싶은 연구자가 과제 수주를 위해 뇌출혈·뇌종양까지 함께 붙드는 식이다. 논문은 나오지만 축적돼야 할 전문성의 깊이는 얕아진다.

부족한 예산과 행정적 부담은 고질적인 문제다. 연구에 필요한 고가의 핵심 장비들이 구비된 병원이 손에 꼽을 정도로 부족하다. KAIS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한 이 교수는 "과학기술원과 대학병원의 시설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임상현장에서 연구하는 의사과학자들을 위한 연구 인프라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비용 문제는 장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외부 의뢰가 늘수록 예산과 일정은 더 불안정해진다. 행정 부담도 결코 가볍지 않다. 계획서–중간보고–결과보고–집행 점검이 겹겹이 쌓인다. 그는 “논문 한 편 분량의 보고서를 여러 번 쓰는 동안 실험과 분석의 시간이 조금씩 잘려 나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과제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전체적인 손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평가가 연구의 ‘내용’보다 서류 형식에 치우쳐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과제 선정 과정에서 임상연구자는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냐'고 묻고 기초연구자는 '메커니즘이 충분히 규명됐냐'고 묻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질문의 언어가 달라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며 "그러다 보니 심사 결과에는 연구의 핵심 내용보다 예산 집행 계획 같은 형식적 지적만 남는 경우가 많고, 임상과 기초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중개연구는 이 틈에서 특히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과학 과제 제도의 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전용 평가 트랙'을 꼽았다. 그는 "이 영역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평가해야 한다"며 오랫동안 연구를 해 본 은퇴 연구자와 중개연구 전문가로 전용 심사 트랙을 꾸릴 것을 제안했다. 이어 과제의 장기 호흡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간 평가는 더 엄격히 하되, 성과가 확실하면 같은 주제를 장기간 이어서 수행할 수 있게 해야 데이터와 연구의 맥이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대형 과제 중심의 재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에게 작은 과제를 여러 개 쪼개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큰 규모의 연구팀에게 확실한 지원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예를 들어 행정 전담 인력이 붙은 연구단(센터) 형태로 운영한다면 보고서·결산과 같은 행정 업무가 분리되면서 연구자는 질문과 실험에 집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무의식 환자의 의식 회복법을 찾는 길

이승주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의사과학자로서 그의 질문은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다. '왜 어떤 환자는 의식이 돌아오고, 어떤 환자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가'다. 그는 “특정 회로가 다시 켜지는 순간과 특정 단백질·신경전달물질이 올라가는 시점을 같은 시간축에 놓고 본다. 두 가지가 겹치면 그 방향이 맞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얻은 예측 마커는 불필요한 치료를 줄이고 필요한 개입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게 해 주며 보호자에게도 현실적인 판단의 근거가 된다. 결국 목표는 간단하다. 언제, 누구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임을 줄이는 것이다.

현재 그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는 환자의 의식이 돌아올지 여부를 살피는 바이오마커를 찾는 것이다. 다친 직후 채혈과 뇌척수액 채취를 통해 몸속에서 발현되는 단백질·유전 신호를 시간대별로 기록하고, 동시에 병상 곁에서 얻는 뇌의 신호를 분석해 의식을 회복하는 환자의 특성을 찾는 전략이다.

그는 “예를 들어 신경세포의 특정 회로가 다시 켜지는 순간과 특정 단백질·신경전달물질이 올라간다면 예후가 좋은 환자의 특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자에서 포착한 패턴이 한두 번의 우연이 아닌지, 여러 사례에서 반복되는지 다시 확인하고 동물 모델(외상성 뇌손상·뇌내출혈)에서도 같은 신호가 재현되는지 거꾸로 검증하는 다층적인 연구를 통해 살아남은 신호가 곧 바이오마커가 된다.

이 교수는 "의식 회복의 예측 마커가 발견되면 불필요한 치료를 줄이고 꼭 필요한 치료를 적절한 시점에 할 수 있다"며 "보호자에게도 막연한 희망이나 성급한 포기 대신 현실적인 선택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의식이 회복되는 환자의 ‘이유’를 찾는 일이다. 영구 손상과 일시 억제의 경계가 어디서 갈리는지, 신경 가소성이 어떤 순서로 펼쳐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뇌손상 환자라도 잠깐 눌려 있던 세포가 다시 회로에 합류하는 회복의 틈이 분명히 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치료의 문을 여는 일이다. 각성과 네트워크 재구성을 돕는 물질을 선별해 세포·동물 수준에서 기능을 확인하고 실제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 적용하는 법을 모색한다. 그는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언젠가는 의과학의 힘이 인간의 의식까지 닿을 수 있을 것"고 말했다.

의식의 회복은 아직 과학이 완성하지 못한 영역이다. 이 교수는 길이 막혀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공학은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생물학은 회복 그 자체를 가능하게 한다”며 두 축이 만날 때 환자 곁에서 '써먹을 해법'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 접점을 넓히려면 의사에게 과학만 가르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공학자·생명과학자를 병원 현장에 노출해 문제를 몸으로 이해하게 하는 의사과학자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벽을 넘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왜 신경중환자의학을 택했나.

“수술은 잘 끝났는데도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갑자기 나빠지는 장면을 자주 본다. ‘수술실 다음 시간’을 제대로 전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호흡과 혈압이 흔들리고, 폐렴 같은 합병증이 겹치면 수술 성과가 예후로 연결되지 못한다. 그 빈틈을 메우고 싶었다.”

Q. 연구와 진료는 어떻게 병행하나.

“한 줄로 말하면 ‘생명이 먼저, 질문은 그다음’이다. 오전에는 회진·처방·보호자 상담까지 환자 문제를 먼저 정리한다. 오후에는 연구실로 가서 연구원들과 미팅을 하고, 진행 상황을 점검하며 질문을 다듬는다. 침상에서 떠오른 의문을 실험실의 과제로 구현하고 결과를 다시 환자 곁에서 확인하는 ‘왕복’이 제 리듬입니다.”

Q. 최근 수행 중인 보건복지부 글로벌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의 핵심은 무엇인가.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과 ‘이유’를 함께 밝히는 일이다. 다친 직후 혈액과 뇌척수액에서 회복을 가리키는 표지(바이오마커)를 찾고, 뇌파(EEG)와 확산텐서영상(DTI) 등으로 뇌의 회로가 다시 켜지는 순간을 시각화한다. 회복 단계에서만 변하는 단백질·유전 신호를 골라 경로를 압축하고 그 경로를 치료 표적으로 잇는 게 목표다. 간단히 말하면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돌아오는지를 시간표 위에서 맞춰 보는 연구다.”

Q. 현재 수행하고 있는 연구의 기간과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정하다고 보나.

“의식 연구는 한 연구의 사이클이 10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치료까지 가는 길은 20년을 봐야 한다. 지금처럼 3년 반짜리 과제는 선정·집행 지연과 말년 성과 정리를 빼면 실질적으로 주어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Q. 연구자에게 가장 필요한 투자는 무엇인가.

"사람이다. 장비는 남아도 사람이 떠나면 연구는 멈춘다. 안정적인 인건비와 고용이 보장돼야 연구자가 버틴다."

Q. 의사·과학자로서의 개인적 목표는 무엇인가.

"의식 회복의 생물학을 정리해서 학문적 지도를 그리는 것, 진료에 바로 쓸 수 있는 진단 마커와 영상 지표를 세우는 것, 각성과 네트워크 재구성을 돕는 치료 물질을 만들어 임상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마지막 목표는 간단하다. 가족이 다시 이름을 불렀을 때, 환자가 그 부름에 답하는 순간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 장면을 위해 오늘도 침상과 실험대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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