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쁜 일에 대해 어떤 원인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것은 유용할 때가 많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비슷한 나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고 최소한 자신의 힘으로 나쁜 일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통제감'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런 노력이 개인에 대한 지나친 비난과 구조적인 문제를 감추고 지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삶이 예측 가능하고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세상에는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고(예> 불경기, 운) 한 치 앞도 살필 수 없는 것이 삶이지만 노력하고 착하게 살면 나쁜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세상은 대체로 공정하다는 믿음(Belief in a Just World)이다.
이 믿음 덕분에 그렇지 않은 사례들이 즐비함에도 내가 하는 행동들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의미감과 잘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착하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닥치는 불편한 사실을 외면하게 되기도 한다. 재난 뉴스에 “그러게 거기 왜 갔냐”는 댓글들이 달리고 무고한 피해자에게 “걔도 뭔가 잘못을 했을 거다”라는 추측과 2차 가해가 따라붙는다.
자신의 통제감과 희망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는 문제들, 예를 들어 '가난'에 대해서도 빈부격차나 높은 물가와 실업률, 낮은 임금 같은 문제들을 전부 '게으름' 같은 개인 내적 문제로 환원시키기도 한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개인 내적·외적 요소들이 얼키고설켜 만들어지고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이면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것들을 너무 단순하게 축소시켜 버린다. 그러다 보니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놓치고 괜한 사람들만 비난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종결시키고 만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내가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은 동기부여에 도움이 된다는 이점이 있지만 특히 '남들도 대체로 자신에게 걸맞은 결과를 얻는다'는 믿음은 가난한 사람에 대해 게으르거나 능력이 부족하다는 낙인을 찍는 것이나 이미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을 더 차별하고 처벌하려는 행동과 관련을 보인다.
나의 상황과 타인의 상황이 전혀 다를 수 있고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삶의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다각도에서 분석하는 데에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어쩌면 생각보다 해결 방법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삶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들고 많은 문제들이 개인 내적·외적 요소들에 걸쳐 복잡하게 꼬여 있으며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차원의 문제들도 존재함을 인정하면 적어도 타인의 삶을 쉽게 판단하는 행동은 삼가게 되지 않을까?
연구들에 의하면 '지혜로운' 사람들의 경우 이와 같이 인간의 삶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임을 아는 편이다. 이 세상에 단순하고 간단한 문제란 없음을 기억해야겠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