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브리스톨대와 이탈리아 IRCCS 멀티메디카 연구팀은 건강하게 늙는 사람의 유전자를 조로증 생쥐와 환자 세포에 적용한 결과 심장 기능이 회복되고 세포 손상이 줄어드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신호 전달 및 표적 치료(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에 16일 공개됐다.
조로증은 세포핵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LMNA 유전자’가 잘못 작동해 생긴 독성 단백질 ‘프로게린(progerin)’ 때문에 생기는 희귀 유전 질환이다. 이 단백질이 세포 안에 쌓이면 핵이 찌그러지고 세포가 빠르게 늙는다. 어린 나이에 피부 주름, 탈모, 관절 경직, 심장질환 같은 증상이 나타나 아이들이 늙는 병으로 불린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유일한 치료제는 ‘로나파르닙(lonafarnib)’으로 프로게린이 쌓이는 속도를 늦추지만 독성 단백질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먼저 연구팀은 초고령자의 유전자가 가진 ‘건강한 노화 메커니즘’을 빌려 조로증의 심혈관 손상을 되돌릴 수 있는지 실험했다. 사람 조로증 환자처럼 심장이 뻣뻣해지고 이완 기능이 떨어지는 ‘조로증 생쥐(LMNA 유전자 변이 생쥐)’의 배 안에 ‘장수 유전자(LAV-BPIFB4)’를 한 번 주입했다.
그 결과 심장이 혈액을 채우고 이완하는 기능이 회복되고 딱딱해진 심장 근육이 부드러워졌다. 노화된 세포와 섬유화가 줄고 새로운 미세혈관이 자라나는 변화도 관찰됐다.
인간 세포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조로증 환자 3명과 건강한 부모 5명의 세포를 이용해 유전자 효과를 검증했다. 조로증 환자의 피부세포에 장수 유전자를 도입하자 세포의 노화 신호와 손상 반응이 줄었다. 프로게린의 양은 그대로였지만 세포가 이를 견디는 힘이 강해졌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가 독성 단백질을 없애기보다는 세포의 회복력과 저항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치우 얀 브리스톨대 연구원은 “초고령자의 유전자가 조로증으로 약해진 심장을 보호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결함을 막는 대신 건강하게 늙는 자연의 메커니즘을 활용한 새로운 치료 접근”이라고 말했다.
안니발레 푸카 IRCCS 멀티메디카 교수는 “장수 유전자(LAV-BPIFB4)는 조로증으로 손상된 심장을 되살릴 수 있는 첫 유전자 후보”라며 “앞으로 유전자나 RNA 기반 치료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초고령자의 생리적 특징을 희귀 질환 치료에 직접 적용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참고자료>
-doi.org/10.1038/s41392-025-024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