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7일 202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영국 출생 존 클라크(83)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명예교수, 프랑스 출생의 미셸 드보레(72)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 존 마티니스(67) 미국 산타바바라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 전자회로에서 양자 터널링 현상 증명
양자 터널링은 어떤 입자가 고전 물리학에서는 넘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에너지 장벽을 통과해 존재하는 현상이다. 기존에는 원자나 전자 수준으로 매우 작은 미시세계에서만 관측됐지만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거시세계에서도 양자 터널링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불명확했다.
수상자들은 1984년과 1985년 극저온 등 특정 조건에서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체 회로를 활용해 실험을 수행했다. 두 초전도체 사이에 얇은 절연층을 삽입해 샌드위치처럼 만든 '조셉슨 접합(Josephson junction)' 구조를 만들고 전류를 흘렸다.
초전도체에서 전자가 쌍을 이루는 '쿠퍼 쌍(Cooper pairs)'이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원래는 전류가 흐르지 못하는 절연층을 뛰어넘는 양자 터널링 현상이 관찰됐다.
정연욱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는 "실험 결과 전류가 계단처럼 불연속적으로 흐른다는 사실이 발견됐다"며 "전체 시스템이 양자화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양자화는 어떤 값이 연속적이지 않고 특정 값으로 띄엄띄엄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반도체 칩에 들어가는 회로처럼 큰 시스템을 디자인해도 양자역학 원리가 잘 작동한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연구 당시 클라크 교수는 UC버클리의 지도 교수, 마티니스 교수는 박사과정생이었으며 드보레 교수는 프랑스에서 온 박사후연구원이었다. 마티니스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셈이다.
● 양자컴퓨터 등 미래 양자기술의 기초 마련
양자화된 시스템에 양자 중첩, 양자 얽힘 등 양자현상을 구현하면 미래 전략기술인 양자컴퓨터처럼 실용적인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조셉슨 접합을 포함한 초전도 회로는 양자컴퓨터의 대표적인 작동 방식 중 하나다.
양자컴퓨터는 고전컴퓨터로는 계산이 너무 오래 걸려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한 특정 유형의 문제를 풀 수 있다. 특히 신약·신소재 탐색이나 최적화 문제 해결, 암호 해독 등에 유망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상자들의 연구결과는 회로 기반 양자컴퓨터 구현 가능성의 단초를 제시했다. 약 15년 뒤인 1999년 양자컴퓨터의 정보처리 단위인 큐비트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2000년대 이후 대규모 투자가 일어나면서 2015년을 전후로 미국의 구글, IBM 등 거대 테크기업들이 양자컴퓨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마티니스 교수는 구글 양자컴퓨터 부문 총책임자를 거쳐 지금은 자신의 양자기술 기업 큐오랩(Qolab)을 설립해 이끌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100년 된 양자역학이 끊임없이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한다"며 "양자역학은 모든 디지털 기술의 기초이므로 매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양자 암호화, 양자컴퓨터, 양자센서 등 차세대 양자기술 개발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반도체로 치면 기본 단위인 트랜지스터를 만든 사람이 상을 받은 것"이라며 "그게 중앙처리장치(CPU)에 들어갈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들어갈지는 몰랐겠지만 진공관 컴퓨터 시대를 끝냈다는 의미가 컸다"고 설명했다.
향후 양자컴퓨터 연구자가 추가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정 교수는 "30년간 업으로 삼은 분야가 상을 받아 기쁘다"며 "이번 상은 양자컴퓨터가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후에 유용한 양자컴퓨터를 구현해 세상을 이롭게 한 분들도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며 "정말 빠르면 5년 안에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은 메달, 증서와 함께 상금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6억5500만원)를 3분의 1씩 나눠 갖는다. 상금은 스웨덴 과학자 알프레드 노벨이 남긴 유산을 투자한 금액으로 시상식은 오는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