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기 과몰입' 불행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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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구들이 자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저주, ‘자신에 대한 생각’ 외에 더 중요할 수 있는 것들(예를 들어 눈앞에 있는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기, 다른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관심 갖기)이 잘 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자기 과몰입(self-preoccupation)이 불행의 주원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있다가도 ‘과연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같은 생각을 시작하면 얼마든지 갑자기 내 인생은 망한 것 같다는 파괴적인 결론을 내리며 깊은 우울감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실제로 지나친 자기 집중,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우울증과 깊은 관련을 보인다.

자기 몰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모든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기중심성(egocentrism),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안녕을 중시하는 이기심(egoism),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며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타율성(heteronomy) 등이 흔히 나타난다.

이에 반해 마크 리어리 듀크대 심리학자 등의 연구자들은 저(低) 자기 몰입(hypo-egoic) 상태가 우리 삶 속에 불필요한 불행을 줄여주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의 상황에 더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지나치게 들여다보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추상적이고 과장된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수준에서 바라보고(예를 들어 나는 성공한 인간인가? 같은 추상적인 질문보다 오늘 하루 즐거웠나?라고 묻기) 다른 사람의 평가를 덜 신경 쓰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저(低) 자기 몰입 상태는 자기 과몰입 상태에 비해 나나 내 집단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돕고 기존의 자아상이 위협을 받는 어려운 상황에서 좀 더 적응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돕는다.

● 자기 자비, 수용, 그리고 회복탄력성

자기 과몰입 상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경직된 자아관’이다. 이상적인 삶, 이상적인 나의 모습은 적어도 얼마를 벌어야 하고 어떤 배경들을 가져야 하며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등 촘촘하고 세세한, 때로는 상당히 비현실적인 자아관을 강하게 밀고 있기 때문에 작은 실패에도 금방 부러지고 만다.

‘○○하지 않으면 살 필요가 없어’ 같은 생각이 마치 벗어날 수 없는 함정처럼 촘촘한 그물을 짜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작은 일에도 나라는 사람 전체가 쉽게 꺾이는 듯한 일반화된 좌절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아관이 경직되어 있을수록 자신의 실패를 잘 인정하지 못하고 ‘내 잘못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 탓’이라는 식으로 문제를 회피해 버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여기에 자기 자비(self-compassion)가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자기 자비란 어디까지나 인간일 뿐인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예를 들어 물론 슬프지만 인간인 내가 실수하고 일을 망치는 건 당연한 일), 힘들어하는 친구를 대하듯 자신에게도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 자체를 곧 내가 부족한 인간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성급함에서 한 발 물러나 좀 더 넓은 상황을 바라보며 인간일 뿐인 내가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어려움들을 가지고 있음을 힘들다는 것은 내가 멍청하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뜻할 뿐임을 바라볼 줄 아는 것이다.

많은 연구들이 특히 경직된 사회적 기준을 내면화해서 경직된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비가 불필요한 괴로움을 줄여주고 보다 쉽게 마음의 평화를 가지도록 돕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내가 힘든 것이 인간으로서 겪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뜩이나 힘든데 더 윽박지르고 더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보다는 위로와 친절, 내가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과몰입에서 한 발 물러서서 자기 비판적인 생각을 “진짜 나의 본질”로 여기지 않고 단순히 어려움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 기억해 보자.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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