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과학 여행 생각보다 꽤 재밌습니다. 그래서 과학 콘텐츠 장인 과학동아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한국 과학 여행지 40선’을 선정해 봤습니다.
“과학도 여행 테마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마음으로요. 지금부터 그 선정 과정과 최종 선정된 40곳을 소개합니다.
● 10인의 선정위원회, 치열한 지명전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K-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K-팝 아이돌이자 퇴마사인 주인공이 악령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훌륭하게 고증해 냈어요.
이렇게 전 세계를 뒤흔드는 건 K-팝뿐만이 아닙니다. K-푸드(한식), K-드라마, 최근에는 K-여행이 더욱 각광받고 있습니다. 2025년 상반기엔 882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는 2024년 대비 14.6%나 늘어난 수치입니다.
그렇지만 K-여행을 익숙하게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낯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과학 여행'입니다. 그 이유는 과학을 주제로 어떤 여행을 해야 하는지 어디를 가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과학동아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머리와 몸으로 즐길 수 있는 한국 과학 여행지 40곳을 선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과학동아는 총 10명의 선정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우선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대중들과 소통하던 7명의 전문가들을 찾았습니다.
우경식 강원대 지질학과 명예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임종덕 국립문화유산연구원장, 유주형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대외협력본부장, 문경수 과학탐험가 겸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 전문위원, '항성'이란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강성주 모어사이언스 이사가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선정 과정은 정량적 평가와 정성적 평가, 그리고 지역 균형 조정 등 총 세 단계로 이뤄졌습니다. 우선 선정위원회 10인에게 과학 여행지를 추천받았습니다. 100개가 넘는 후보가 모였어요. 이후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투표는 서울·경기·인천, 강원, 충북, 대구·경북, 제주 등 총 9개 권역별로 진행했습니다. 선정위원들은 권역별로 1순위부터 마지막 순위까지 순위를 매겼습니다. 강원 권역의 여행지에 1순위부터 마지막 순위까지 투표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지역별 안배를 거쳐 최종 40선을 정했습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평소 본 적 없는 풍광과 한 적 없는 경험은 시각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 과학 여행지 40선도 과학을 주제로 여행자들의 감각을 재구성할 수 있는 곳들입니다.
충북 단양 다누리아쿠아리움은 이영혜 과학동아 편집장이 추천한 곳이었습니다. 충북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접하고 있지 않은 지역입니다. 그런 단양에 아쿠아리움이라니요. 이 편집장은 “다누리아쿠아리움이 아시아 최대 규모의 민물생태관”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래서 다누리아쿠아리움을 방문한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물고기 중 무엇이 민물고기이고 무엇이 바닷물고기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전설의 민물 최대어종이라 불리는 아마존 피라루쿠까지 이곳에서 만나 볼 수는 있어 새로운 경험이 빛을 발합니다.
한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시간을 두고 만돌리 갯벌을 방문해 볼 것”을 조언했습니다. 이 교수는 “바다도 아니고 육지도 아닌 갯벌은 그 자체로 독특하다”면서 “아침 갯벌과 저녁 갯벌이 다르고 어제 본 갯벌과 오늘 본 갯벌이 다르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갯벌은 늘 변하는 풍경입니다. 밀물과 썰물이 하루 두 번씩 번갈아 갯벌의 모양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또 갯벌 안에 살고 있는 생물이 만들어내는 흔적도 변화를 더합니다. 게가 지나간 발자국과 조개의 호흡구멍은 시시각각 갯벌의 표정을 다르게 만들어 냅니다.
“일본과의 영토 분쟁만 아니었으면 제주도보다 먼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됐을 거예요.” 문경수 과학탐험가 겸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 전문위원은 울릉도 나리분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울릉도는 제주도와 함께 한국 지질공원 제1호로 선정된 곳입니다. 울릉도 나리분지에서는 어떤 감각 재구성이 가능할까요. 문 위원은 “백두산 천지는 유명하지만 나리분지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며 “두 개가 같은 형성 과정으로 만들어진 ‘칼데라 지형”임을 강조했습니다.
칼데라는 화산 활동으로 인해 넓고 둥글게 만들어진 분지 지형입니다. 일반적인 화구와는 달라요. 한반도의 북쪽 끝 그리고 동쪽 끝에 같은 원인으로 만들어진 화산 지형이 있다는 생각을 그동안은 해본 적이 없을 겁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과학 여행지 40선에 곶자왈과 청수리 반딧불이 서식지 모두 이름을 올렸어요. 곶자왈은 제주에만 존재하는 숲 생태계입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기존의 계절적 감각을 뒤바꿉니다. 장 교수는 청수리 반딧불이 서식지는 3차원 감각을 자극한다고 설명합니다.
“너무 어두우면 그 순간 위아래의 경계가 흐릿해져요. 어둠의 경험도 생경한데, 그 순간 나타나는 반딧불이를 보면 마치 3차원의 공간을 유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소청도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지, 전곡선사박물관, 화성지질공원 공룡알화석지, 해남 우항리 공룡박물관 등은 한반도를 만들고 거쳐 간 생물과 인류를 떠올리게 하는 곳입니다.
과거를 수십만 년 전, 수십억 년 전으로 확장하는 일은 상상의 힘을 필요로 해요. 국립중앙과학관과 국립광주과학관, 국립 밀양 기상과학관 또한 체험과 전시를 통해 과학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어 줍니다.
부산 영도에 위치한 국립해양박물관에 도착하자마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영도 바다에서 오륙도를 바라볼 수 있는 동쪽 간척지에 설립된 국립해양박물관은 바다 바로 앞에 건설됐습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곡선의 건물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국립해양박물관은 이번에 한국 과학 여행지 40선에 선정된 곳이자, 과학 여행지를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미션맵'이 준비된 여행지입니다. 과학동아의 형제 잡지인 ‘어린이과학동아'는 이번에 선정된 40곳 중 10곳에 대한 미션맵을 제작했습니다.
체험과 퀴즈가 섞여 있는 미션을 따라가다 보면 여행지에서 꼭 알아야 할 핵심 포인트를 자연스럽게 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국립해양박물관은 개관한 지 13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박물관입니다. 직접 가보니 오감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션맵의 콘셉트도 해양 속으로의 '다이브(dive)'입니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김진태 전시기획팀 선임학예사와 함께 처음 방문한 곳은 3층의 해양관입니다. 해양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은 해양관과 항해관으로 나뉘는데요. 총 7개의 미션도 두 곳 전시관에 나뉘어 있습니다. 해양관의 첫 번째 전시실은 오래된 문서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다 박물관인데 전시의 시작이 고(古)문서인 게 특이하네요.” 기자의 질문에 김 선임학예사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였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는 곧 바다의 역사기도 했어요. 때문에 오랜 기록에 바다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죠.”
조선 후기 세곡 운반 제도와 세곡을 한양까지 운반하는 걸 허락하지 않던 거친 바다를 두고 고뇌에 빠진 공무원의 마음까지 담겨 있는 자료입니다. 해양관에서 만난 조행일록 속 세곡선은 4층 항해관에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 항해관으로 향하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두 번째 미션의 주제 죽천이공행적록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이덕형이 1624년 중국 사절단으로 가면서 기록한 책이었어요.
“그런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왜 조선에서 명나라로 가는데 육로로 가지 않고 어려운 바닷길로 갔는지요.” 답은 당시 요동반도가 여진족의 점령 하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덕형과 사절단은 중국으로 가는 길에 딱 마주친 거죠. 과학 지식이 지금만큼 정교하지 않았던 400년 전, 용오름은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믿음을 그대로 반영해 그려졌습니다. 죽천이공행적록을 기록화로 남긴 항해조천도에서 용오름을 발견하셨다면 두 번째 미션도 성공입니다.
해양관에서 세 번째, 네 번째 미션까지 완료했다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4층 항해관으로 향하면 됩니다. 항해관에서는 15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이어진 신항로 개척 시기, 드넓은 대양을 항해케 했던 과학기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640년대 영국 출신 이탈리아 탐험가 로버트 더들리가 만든 해도첩에 지금의 동해가 무엇으로 표기돼 있는지 확인하셨다면 다섯 번째 미션을 1780년대 프랑스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였던 라페루즈가 기록했던 울릉도를 찾았다면 여섯 번째 미션을 완료하는 겁니다.
그럼 마지막 미션만 남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당시 탔던 산타마리아호와 니나호 모형을 찾아봐야 합니다.
“콜럼버스가 탔던 두 배는 다른 범선과 달랐어요.” 김 선임학예사는 선박의 돛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범선의 발전은 돛의 발전이었습니다. 엔진이 없던 시절, 범선의 추진력은 오직 돛이 받는 바람을 통해 얻었기 때문입니다. 1492년 스페인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던 콜럼버스는 신항로 개척의 선구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가 탔던 배들은 초창기 범선 중 하나였어요.
“보시면 산타마리아호와 니나호의 돛은 삼각형이지만 뒤로 갈수록 사각형 돛이 많아지고 나중에는 사각형과 삼각형 돛을 같이 썼어요.”
돛의 모양이 바뀌고 나중엔 모양이 다른 돛을 함께 쓴 이유는 삼각돛이 역풍과 측풍에 유리한 반면 사각돛만큼 순풍에서 빠르게 달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엔 두 개의 모양을 함께 씀으로써 모든 방향의 바람에 대응할 수 있었어요.
총 7개의 미션을 완료하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미션을 모두 완료했다는 기쁨과 국립해양박물관을 제대로 살펴본 듯한 만족감이었어요. 미션맵에선 여행지 주변의 맛집과 함께 둘러보면 좋을 명소도 추천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관광공사의 제작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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