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이 리튬이온 배터리 발화로 밝혀졌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지닌 근본적인 위험성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지만 "일부 극단적 사고 사례가 미디어에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실제보다 화재 사고 가능성과 위험이 부풀려진 결과"라는 반론도 나온다. 배터리에 의한 화재는 다른 원인에 의한 화재보다 특별히 많지 않으며 통제 가능한 위험이라는 것이다.
1일 국내 리튬이온 배터리 전문가인 이현욱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배터리 화재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어떤 원인으로 화재가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하지만 아무리 이차전지를 오래 연구한 사람이라도 현장을 직접 보거나 배터리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화재 원인을 단정적으로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갑자기 사람이 쓰러져 사망했을 때 지병이나 가족력 같은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사인을 추정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통계적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짐작할 수는 있다" "노트북이나 휴대폰 등에서 발생한 과거의 단일 셀(cell) 화재는 주로 배터리 자체의 문제였다. 분리막 결함으로 양극과 음극이 맞닿거나 전해액 부반응으로 가스가 발생하는 경우처럼 몇 가지 전형적인 원인을 추려낼 수 있었다. 배터리의 화학적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화재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전기차, ESS(Energy Storage System), UPS 등 대형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사정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런 시스템은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셀이 직렬·병렬로 연결돼 있으며 모든 셀이 균일하게 충·방전되어야 안전하게 동작한다. 하지만 한 셀에 이상이 생기면 전류가 집중되어 화재 위험이 커지고 정상 셀까지 과전류로 인해 화학적 변형이 생길 수 있다"며 "이처럼 불균질성이 배터리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경우라면 배터리 자체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외부 요인이 더 큰 경우가 많다. 전기적 스파크나 외부 충격이 특정 셀에 가해지면서 불균질성을 유발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실제로 전기차 화재 원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사고의 75% 이상이 전기적 요인, 기계적 요인, 교통사고와 관련이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약 15%, 부주의나 순수 화학적 요인에 의한 화재는 5% 이내였다"며 "즉, 배터리 제조 자체의 결함보다는 배터리를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하느냐가 안전성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