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만에 다시 미국행...3500억달러 투자 조건 놓고 막판 줄다리기

이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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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한두 가지 양국 입장이 팽팽히 대립"
김용범·김정관 "국익에 맞는 타결안 만들 것"
①현금 비중 ②투자 분할 여부 ③스와프 관건
미 적극 수용 시 한미 정상회담서 MOU 발표
미 일부 수용 시 팩트시트 발표할 가능성도
관세 타결 시 '우라늄 농축 확대' 안보 협상 발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2일 오전 인천공항 2터미널에서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2일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의 미측 컨트롤타워인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을 만나기 위해 출국했다. 김 실장은 현재 협상 상황에 대해 "많은 쟁점에 대해선 양국 간에 의견이 많이 좁혀져 있다"면서도 "한두 가지 아직까지 양국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분야가 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미국으로 입국한 직후에도 "대한민국 경제에 충격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대전제"라며 "우리 입장을 미국이 조금 더 진지하게 이해해준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관세 후속 협상을 마치고 귀국한 지 각각 2, 3일밖에 되지 않은 두 사람이 급거 방미길에 다시 오른 배경에는 미국 측이 한국 입장을 어느 정도 반영한 새로운 제안을 하면서 정부가 추가 협상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오는 29일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 3,500억 달러(약 501조 원) 대미 금융 투자 패키지와 관련한 쟁점에서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두 가지 쟁점 남아"... 유기적으로 얽혀 특정 어려워



김 실장은 이날 양국 입장이 대립하는 쟁점과 양국이 현재 어떤 입장인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한미가 지난 7월 합의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관련해 현금 투자 비중 △장기 분할 투자 여부 △한국의 외환시장 충격 보완책 마련 등 3대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쟁점을 특정하기 어려운 점도 하나의 원인이다. 정부 관계자는 "가령 미국이 외환스와프를 통 크게 해주면 한국은 현금 투자 비중과 1년에 투자하는 금액을 더 키울 수 있고, 연간 투자 금액을 낮추면 대신 현금 투자 비중을 좀 더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3,500억 달러는 한국 외환보유액의 80%를 웃도는 액수다. 이를 감안하면 미측 요구대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2028년까지) 내 현금 투자하는 방식은 수용하기 어렵다. 이에 한국 정부는 △현금 투자 비중은 5%를 넘지 않고 △연간 투자 금액은 200억 달러를 넘지 않아야 하며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특정 조건이 충족된다면 다른 조건에서는 보다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외에 대두 등 미국산 농산물을 한국이 얼마나 더 수입할지가 대미 투자 조건들과 일부 연동될 수 있고, 한국 정부가 투자처 선정에 관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도 쟁점 중 하나다. 투자 수익 배분 문제도 다른 조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측은 이를 현금 투자 비율을 늘리기 위한 지렛대로 삼고 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여러 요소들 중 국익에 부합하는 최적의 조합을 복수로 제시하는 추가 수정안을 들고 미국에 들고 갔다고 한다. 이에 앞서 정부 내부 논의를 거쳤고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대면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미소짓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한미회담서 MOU 발표냐 팩트시트 발표냐



미측이 한국의 수정안을 적극 수용하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대미 금융 패키지 세부 내용과 한국산 물품의 대미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이 담긴 양해각서(MOU)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게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미측이 수정안 일부만 수용하고 추가 협상을 요구한다면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한미 양국에 부담일 수밖에 없는 '노딜'을 피해가 위해 MOU까진 아니더라도 이보다 낮은 수준의 합의 내용을 정리해 '팩트시트'(참고자료)를 도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팩트시트부터 내고 남은 쟁점은 회담 이후로 미루는 방식이다. 미국은 일본과의 관세 협상에서도 지난 7월 팩트시트를 발표한 뒤, 후속 협상을 거쳐 9월 초 MOU를 도출한 전례가 있다.

다만 한국 정부는 협상의 완전한 종결 이전 중간 수준의 타협안을 발표하는 것에는 다소 부정적이다. 정상회담 일정에 맞추기 위해 설익은 팩트시트나 MOU를 발표할 경우 국익을 저해하거나 발목이 잡혀 국정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 실장이 이날 "쟁점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특정 시점까지만 합의된 내용을 가지고 MOU를 하고 그런 안은 정부에서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면담을 갖고, 한미 관세협상 현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산업통상부 제공


관세 타결 시엔 안보 협상문 함께 발표



만약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앞서 양국이 논의한 안보 협상 결과도 함께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이전의 (지난 8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잠정적으로 합의된 성과들이 많은데, 통상과 관련한 MOU가 마무리되면 이를 한꺼번에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안보 협상과 관련한 내용은 △한국의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매를 늘리는 한편, 한국에 일정 농도 이하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를 골자로 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추진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해 "의미 있는 진전이 있다"면서 "한국이 더 많은 농축 재처리에 대한 운신의 폭을 갖는 것에 양해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안보 분야와 관련해선 양국 간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관세 협상 진전 상황을 고려하며 발표를 늦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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