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 전 한국국방연구원장 인터뷰
병력부족 심각한데 '군 구조' 왜 그대로 두나
관성 깨고 경비여단이 전방사단 역할 맡아야
국방개혁 무관심... 연금개혁처럼 인기 없어
전임 정부는 말로만 스마트 국방 외치다 끝나
李 정부, 국방개혁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꼭 20년이 흘렀다. 2005년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을 신호탄으로 정권을 다섯 번 거쳤다. ‘병력 50만 명’을 목표로 몸집을 줄였다. 하지만 개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도 의욕적인 건 마찬가지다.
19일 만난 김윤태 전 한국국방연구원장(고려대 빅데이터사이언스학부 초빙교수)은 “인구절벽에 따른 병력부족이 심각한데도 군 구조는 그대로 두려고 한다”면서 “육군 전방사단을 경비여단으로 대체하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전방 경계임무는 첨단기술과 민간인력을 활용하는 경비여단이 맡고 중추전력인 사단은 뒤에 위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동방어와 지역방어로 적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전 원장은 “국방개혁은 연금개혁처럼 대중적 인기가 없다”며 대통령과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개혁의 동력으로 꼽았다. 이어 “병력부족에 대한 공감대와 달리 기존 해법은 잘못됐다”면서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초대 국방부 국방개혁실장과 마지막 국방연구원장을 지냈다. 1시간 30분가량 인터뷰 내내 “개혁의 골든타임”을 강조하는 표정에 책임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김 전 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말로만 스마트 국방을 외치고 정작 중요한 군 구조 개편은 외면했다”며 “낙제를 면하려면 이재명 정부가 신속히 점수를 만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1513280000720)
노무현 정부도 이재명 정부도 국방개혁 절실
-정권 초반 으레 각 분야에서 개혁 드라이브를 건다. 국방개혁은 뭐가 다른가.
“국방은 생존의 문제다. 개혁한다고 안보에 틈이 생기면 안 된다. 또한 한 정부에서 끝낼 수 없는 중장기 계획이 대부분이다.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어렵고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는 왜 국방개혁이 절실했나.
“2020년대 초반에 도래할 인구절벽을 심각한 위기로 인식했다. 국가 차원의 대책으로 ‘2+5’ 방안을 내놨다. 취학 연령을 2년 당기고 정년을 5년 늘리려 했다. 68만 명의 병력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은 이라크전 파병을 위해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했다. 병력은 줄이되 첨단기술을 집약해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이재명 정부는 무엇이 시급한가.
“당시 합계출산율 0.7은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현실이 됐다. 2035년 2차 인구절벽이 시작된다. 50만 명 상비병력이 2040년이면 35만 명에도 못 미친다. 또한 미국 트럼프 정부는 한미동맹의 현대화와 전략적 유연성을 재촉하고 있다. 2차 국방개혁을 미룰 수 없다. 20년 전과 상황 및 해법이 판박이다. 이재명 정부의 국방개혁은 첨단과학기술과 민간 전문인력을 적극 활용한 스마트 강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관성을 깨야... 경비여단이 전방사단 대체, 분대는 유무인 복합으로
-가장 큰 걸림돌은.
“관성이 문제다. 변화를 최소화하고 싶어 한다. 지휘체계와 사단 숫자는 그대로 두고 병력을 축소해 운영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정원이 100명인 부대가 70명으로 온전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나. 병력 50만 명을 기준으로 짜놓고는 35만 명으로 버텨보자는 심산이다. 자칫 우리 군의 와해가 우려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나.
“2040년 상비병력 35만 명 수준에 맞는 군 구조로 바꿔야 한다. 부대-무기-병력의 3가지를 다시 짜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가령 육군의 경우, 최상위 작전사령부의 명령은 예하 군단-사단-여단-대대-중대-소대-분대의 7단계를 거친다. 오랜 기간 검증된 부대구조다. 그러나 과거와 비견할 수 없이 진화된 지휘통제감시체계, 기동체계, 정밀타격체계를 감안하면 여전히 최적의 구조라고 보긴 어렵다. 무기 첨단화와 전문성 강화를 통해 병력 3,000여 명의 여단 두 개로 병력 1만 명이 넘는 사단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전투력을 온전히 발휘하면서도 작전의 융통성 면에서 강점이 더 많다.”
-소규모 부대는 어떤가.
“대대급 이하 부대는 병사와 무인체계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유무인 복합전투팀을 설계하고 시도할 필요가 있다. 통신·저격·견마로봇과 4명의 병사가 작전에 나서면 현재 10명으로 구성된 분대를 상회하는 전투력과 임무수행 능력을 갖출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거의 다 왔다. 자율주행차에 비유하면 완전 자율(레벨 5)이 아닌 레벨 3·4 정도 수준이다. 이런 식으로 인공지능(AI)을 군에 접목시켜 상당한 병력을 감축할 수 있다.”
사단 중심 여전히 유효한가? 기동 거점방어로 바꿔야
-사단을 없애도 괜찮나.
“물론 한반도에서 상수인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사단이 더 효과적이고 사단 중심의 작전개념과 교리, 훈련과 경험을 감안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다만 그런 장점이 앞으로도 유효한지를 냉정하게 검토하고 재평가해야 한다. 막연히 기존 방식에 안주하기엔 우리의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전방사단 중심의 대북 선형 경계작전은 작전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심각한 결함도 있다. 최정예 전력을 맨 앞에 놨다. 한 군데가 뚫리면 같은 최전선의 정예전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귀순자를 놓치기라도 하면 비판 여론이 거센데, 귀순자 유도작전보다는 효과적인 방어작전이 더 중요하지 않나. 전방경계는 별도의 경비여단이 맡고 정예전력은 일정 지역 내에서 적을 격멸하는 기동 거점방어로 바꿀 필요가 있다. 경계를 민간군사기업(PMC)이 맡을 수도 있다. 이런 지적과 대안은 새로울 것 없다. 과거 보수 정부에서도 개혁안으로 제시된 내용이다.”
연금개혁 같은 국방개혁... 2차 개혁 시작도 못 해
-국민 여론은 국방개혁에 무관심한데.
“국방개혁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다. 양은 줄이고 질은 높여야 하기 때문에 군 안팎의 갈등은 물론이고 공격받을 지점이 많다. 당장의 문제가 아닌 만큼 역대 정부도 필요성은 알지만 미루고 싶어 했다. 심각한 안보위기가 없으면 관심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연금개혁의 어려움과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주체인 대통령이 중요하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미래를 대비하는 의무감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대중적 지지에 기댈 사안이 아니다.”
-이 대통령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적절한가.
“자주국가의 주권사항이라는 이념적 주장을 내세울 때가 아닌 것 같다. 실용적 관점에서 트럼프발 한미동맹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전작권 전환이 중요해졌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맞춰 한국군은 한반도 방위에 전념하는 전시작전지휘체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 동맹의 역할 확대를 주장하는 미국의 전략에도 부합한다. 전환의 ‘조건’을 계속 따지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한국 군사력은 세계 6위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핵심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미국은 핵 중심, 한국은 재래식 전력 중심으로 유례없이 강건한 대북 억지력을 갖췄다. 동북아 안보환경이라는 대외조건도 ‘이현령비현령’에 불과하다. 전작권 전환은 이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난 20년간의 국방개혁 점수를 매긴다면.
“2020년을 목표로 50만 병력구조를 만드는 1차 개혁은 80점을 주겠다. 많은 조정과 지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과제를 마쳤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필요성이 제기된 2차 국방개혁은 윤석열 정부를 거쳐 현재까지 시작도 못 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낙제점이다. 이재명 정부 첫해는 2차 국방개혁의 골든타임이다. 안규백 장관 취임 후 핵심과업으로 추진하는 만큼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