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건 미국… APEC 전 서두르다 국익 내줘선 안 돼" [인터뷰]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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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규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 인터뷰
"선불 지급은 비상식적... 반드시 막아야"
"'국내법 준수' 조항 넣어 사업 타당성 따져야"
"일본이 MOU에 넣은 안전장치 활용해야"
김용범 "특정 시점 의식해 합의하지 않을 것"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 워싱턴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진정 국익을 위한다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전 미국과 무역합의에 서명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 느긋하게 기다리며 최소한 일본과 비슷한 조건으로 관철시켜야 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2일 다시 긴급히 미국으로 떠나는 등 한미 무역 협상이 막바지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심승규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는 21일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헌 심리에 노심초사하고 있어 협상이 지연되더라도 한국에 과도한 보복을 하기 어려운 입장이라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이 체결한 무역 양해각서(MOU) 조건도 불공정하긴 하지만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3,500억 달러 선불·일시불 지급'보다는 낫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일본 현지에서 연구하며 주로 국제 통상, 금융 정책, 한일 간 경제 교류나 현안에 대해 언론 인터뷰나 기고 등을 통해 제언해 왔다.

심승규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본인 제공


"트럼프 '상호관세 위헌' 될까 노심초사"



심 교수는 한국보다 미국이 더 조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7월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잘 만나주지도 않아 우리가 매달렸지만 지금은 판세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최근 트럼프 발언을 보면 그간 미국과 다른 나라의 무역이 얼마나 불공정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대법원을 의식한 반응"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이 시간을 끌더라도 취임 직후처럼 관세를 마구잡이로 부과하는 전횡을 부리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동맹국인 한국에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대법원 심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심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국에도 100%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다가 다음 날 철회했는데, 이 역시 대법원을 의식해 몸을 사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선불 지급 요구는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심 교수는 "세상에 어디에 쓰일지도 모르고 돈을 먼저 주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일본처럼 명확한 투자처를 정한 뒤 금액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처럼 MOU에 "양국의 국내법을 준수한다"는 조항을 넣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자금을 터무니없는 곳에 투자하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봤다. 심 교수는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이 돈을 내줄 때 사업 타당성·투자 적합성 등을 따지게 돼 있다"며 "국내법 준수 조항을 얹으면 손해가 예상되는 투자 요구 시 이를 근거로 거부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3,500억 달러를 미국에 모두 내주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일본은 투자 기한을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으로 한정했다"며 "이는 4년 만에 5,500억 달러를 주겠다는 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하면 투자 의무를 사라지게 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이 MOU에 서명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정해진 투자처는 없다. 그는 "한국은 10년 분할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치게 정직한 셈법"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제시했던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실현이 불가능한 방안"이라고 진단했다. 심 교수는 "애초에 통화스와프는 미국 행정부가 아니라 연방준비제도에 권한이 있다"며 "벼랑 끝 전술로서 가치는 있었겠지만, 여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김용범 정책실장 "APEC 등 특정 시점 의식해 합의하지 않을 것"



심 교수는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는 더 불리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과의 MOU를 뜯어보니 생각보다 미국의 이익이 크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라며 "이에 한국에는 같은 조건을 적용해주지 않으려 하겠지만, 국익을 위해서라면 시간이 걸려도 최소한 일본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범(왼쪽)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한미 관세협상 후속협의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이날 출국한 김 실장도 APEC을 의식해 무리하게 협상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천국제공항에서 "APEC이나 특정 시점 때문에, 부분 합의된 것만 가지고 MOU에 사인하는 것은 정부 내에서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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