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 협박 당해 범죄 가담" 호소했지만… 법원서 안 통했다

허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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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조직 감금·협박 주장 판결문 20건 분석
18건이 실형 "통상적 조직 내 통제로 간주"
처벌 면하려 강요된 행위 주장해도 엄벌 추세
16일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범죄단지 '원구단지' 앞에 장소를 임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프놈펜=허경주 특파원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캄보디아 등 동남아국가 범죄조직에 가담한 한국 청년들이 줄줄이 실형을 선고받고 있다. 이들은 감금과 협박 탓에 어쩔 수 없이 범죄에 동원됐다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엄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강요된 행위' 주장 20건 중 18건 실형



22일 한국일보가 판결문 검색 플랫폼 '엘박스'를 통해 '범죄조직'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와 '감금·협박·강요' 등의 키워드로 최근 5년간 판결문 20건을 분석해보니, 피고인이 조직의 강요 내지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실형이 선고된 사건이 18건에 달했다. 징역형 집행유예는 2건에 그쳤고, 이 중 1건에서만 범죄조직의 강압이 양형에 참작됐다.

사기 범죄 가담자들은 대체로 '강요된 행위'를 했을 뿐이라고 법정에서 항변했다. 형법(12조)상 강요된 행위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협박에 의한 것으로, 법원이 인정하면 처벌을 면한다. 대법원은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라는 게 입증돼야 강요된 행위로 본다. 위험을 예견하고도 범죄 가담을 자초했다면 면책되지 않는다. 법원은 범죄 행위 당시 적법한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도 따져서 판단한다.

여권 압수 등 참작 안 돼



판결문에서 사기 범죄에 가담한 청년들은 현지에 가는 과정까지 범죄조직임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고수익 일자리의 특성을 감안하면 불법성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수긍하지 않았다.

서울동부지법은 필리핀 범죄조직원으로 사기 등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A씨가 "범죄조직과 관련된 사실을 몰랐다"며 항소하자 "국외에서 특별한 경력이나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단기간에 고수익을 보장하는 합법적 일자리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며 기각했다. 항공권 비용을 제공받은 점도 납득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권과 휴대폰을 범죄조직에 압수당해 탈출이 어려웠다고 항변해도 실형을 면치 못했다. B씨는 구인 광고를 보고 중국에 간 뒤 공항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에 여권과 스마트폰 유심칩을 빼앗기고 "전 (범죄)조직에 가입해 범행했습니다"라는 말을 강제로 녹음당한 사실은 인정됐지만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광주고법 전주원외재판부는 지난해 6월 "여권과 유심칩을 빼앗기고 범행 가담 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통보받는 등 의사 결정 자유가 일부 제약됐으나 이는 상위 조직원이 하위 조직원에게 가하는 일반적 제약을 넘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B씨는 휴대폰을 조직에 압수당한 사정을 호소했지만 법원은 범행에 쓰인 컴퓨터나 타인 휴대폰으로 피해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건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도움 요청을 위해 노력한 사실이 없고, 당시 숙소를 함께 사용한 사람과 외부에 연락할 방법 등을 논의한 흔적이 없다"고 했다.

범죄조직에서 '감금'을 당했다는 주장도 귀국이나 탈출을 시도한 흔적이 없으면 인정되지 않는다. 춘천지법은 범죄단체 가입 등 혐의로 법정에 선 C씨에게 지난 7월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같은 캄보디아 조직으로 건너간 다른 한국인 2명이 도착 며칠 만에 귀국한 점을 들어 "본인 의사로 귀국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최근 감금 폭행 등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 잇따르는 등 캄보디아 조직의 폭력 수위가 높아져 '강요된 행위'가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형사사건 전문가들은 고개를 흔들고 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한국에서 납치되지 않은 이상 자신의 의지로 출국한 것이기 때문에 강요된 행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조직 내 강압이나 협박도 대체로 일반적 수준으로 간주해 양형 참작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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