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압박 수사에 '진술 번복' 시사 대목 곳곳
"회사 문 닫더라도 압박하려는 것 같아" 토로
김범수 무죄 판결문 "별건 수사로 진실 왜곡"
정성호 "별건 수사 제도적 방지책 마련할 것"
"회사가 망가질까봐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그러는데, 그냥 그들(검사들)이 원하는 걸 주면 끝나나?"
검찰이 2023년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을 겨냥해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의 시세조종 의혹을 수사할 당시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은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 지창배 대표에게 이같이 털어놨다.
22일 한국일보가 살펴본 2023년 11월 24일 이 전 부문장과 지 대표의 통화 녹취록에는 '별건 수사'로 압박을 받던 이 전 부문장이 검찰이 원하는 방향을 언급하며 '거래 가능성'을 지 대표에게 상의하는 정황이 담겼다. 이 전 부문장은 검찰이 원하는 방향과 관련해 자신이 김범수 센터장의 시세조종 개입을 뒷받침하는 핵심 진술을 해주는 것이란 취지로 토로했다. 지 대표는 당시 카카오 측과 공모해 1,000억 원 규모의 SM엔터 주식을 매수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서울남부지법은 21일 김 센터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검찰 수사 방식을 이례적으로 지적했다. 재판부는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해 피의자나 관련자를 압박하는 방식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별건 수사란 본류 수사에 성과를 내려고 본 사건과 동떨어진 혐의를 잡아 수사 대상자를 압박하는 수사기관의 관행으로, 검찰 수사의 병폐로 지적돼 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전 부문장의 진술을 김 센터장 공소사실에 대한 "사실상 유일한 증거"라 지적하면서 검찰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이 전 부문장이 허위 진술할 동기가 충분하다고 봤다.
이 전 부문장은 실제 녹취록에서 "시세 조작과 상관없는 것들이잖아요. 저희 바람(픽쳐스)같이"라고 언급하며 검찰의 별건 수사로 압박을 받는 듯한 심경을 토로했다. 2023년 서울남부지검은 카카오의 SM엔터 시세조종 혐의를 수사하며 카카오엔터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고가에 인수한 의혹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했다. 바람픽쳐스는 이 전 부문장의 배우자인 윤정희(배우)씨가 투자한 제작사로 이 전 부문장이 실소유주였다.
이 전 부문장은 검찰의 바람픽쳐스 압수수색 하루 뒤 지 대표에게 "(검찰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회사 문 닫더라도 압박하려는 것 같다. 일상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악착 같이 뒤져 꼬투리만 있으면 하겠다는 거잖아요"라고도 했다.
이 전 부문장은 녹취록에서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하면 끝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다. 지 대표가 "변호사에게 '카카오 내부자가 김범수 의장의 인지나 공모를 인정하는 증언을 하면 끝나는 건지 물어봐주면 되느냐'고 묻자, 이 전 부문장은 "확인 좀 해달라"고 했다.
두 사람은 김범수 센터장의 공모 여부를 인정하는 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진술인지를 두고도 의견을 주고받았다. 지 대표는 "불리해질 수도 있다"며 만류도 했지만, 이 전 부문장은 빨리 수사받는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다. 이 전 부문장은 당초 "주식 매입은 시세조종이 아닌 물량 확보 차원"이라고 했지만, 지 대표와의 통화 이후인 2023년 11월 29일 2차 검찰 조사부터 입장이 달라졌다. 그는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김범수 창업자 승인하에 원아시아 측과 공모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이는 검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핵심 증거가 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 전 부문장이 금융감독원의 여섯 차례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다가 검찰 압수수색 이후 진술을 바꿨고, 이후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제도를 신청해 기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김 센터장 1심 무죄 판결을 언급하며 "수사기관의 부당한 별건수사로 국민 기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제도적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113550005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