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길거리에서 피어나 자신만의 색을 지닌 야생화 같은 밴드입니다. 그렇게 30년간 해오며 대박이 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정을 꾸리고 자녀가 성인이 될 정도의 시간을 함께했네요.”(한경록)
국내 1세대 인디 록 밴드 크라잉넛이 데뷔 30주년을 맞아 25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에서 특별기획 전시 ‘말달리자’와 공연 '너트30 페스티벌'을 연다. 밴드 멤버들은 22일 이곳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의 30년은 곧 인디의 30년이기도 하다”면서 “자축이기도 하지만 인디에 바치는 헌사 같은 느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30년이 인디 음악가를 꿈꾸는 동료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한다"며 "마침 내년이 붉은 말의 해인데, 우리 곡 ‘말 달리자’와 잘 맞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1995년 서울 홍익대 인근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활동을 시작한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은 '말달리자', '명동콜링', '밤이 깊었네' 등의 히트곡을 내며 1세대 인디 밴드의 대표 주자가 됐다. 30년을 함께하며 교체된 멤버 한 명 없이 활동을 이어온 보기 드문 팀이다. 건반·아코디언 등을 연주하는 김인수가 2집 제작 과정에서 합류한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박윤식은 “우리는 누구 한 명이 특출나게 잘생기거나 연주를 잘하지 않는다”며 “팀워크로 가는 팀"이라고 했다. 이상면은 “네 명이 어려서부터 친구여서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부연했다.
크라잉넛은 한국형 펑크록의 시초로 불린다. 한경록은 "우리 인디 음악에는 한국 특유의 한과 흥이 서려 있다"며 "반항만 해서는 오래 갈 수 없기에 버티면서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인수는 "인디 음악은 메이저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음악을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전시에서는 멤버들의 개인 소장품, 신작 아트워크, 오디오·영상 등으로 밴드의 여정을 돌아본다. 크라잉넛과 개별 멤버, 정우, 유발이 등의 소규모 공연도 이곳에서 열린다. 크라잉넛의 역사가 시작된 공간인 라이브 클럽 드럭을 재현한 공간도 마련됐다. 이상혁은 “드럭에서 처음 공연할 때는 관객 1명, 2명, 3명을 두고도 했다”며 “관객이 공연 도중에 함께 화장실을 가면 중간에 멈췄다가 관객이 돌아온 뒤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고 웃으면서 회상했다.
전시회 제목은 밴드의 대표곡 '말달리자'에서 가져왔다. 1995년 공개된 이 노래는 당시 입소문을타고 알려져 광고에 쓰일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고 여전히 1990년대 한국 인디 록 음악을 상징하는 곡으로 꼽힌다. 한경록은 "'말달리자'를 데뷔 이래 몇 번 불렀는지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1년에 리허설 포함 200번, 30년에 6,000번쯤 될 것”이라고 했다.
만취 상태에서 공연하던 20대 로커들은 어느새 쉰을 바라보며 건강을 생각하는 중년이 됐다. 한경록은 “젊을 땐 술을 좋아하고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했다"며 "그땐 공연 전부터 취해 있던 때가 많았는데 1998년 어떤 페스티벌 무대에선 공연하다 앰프에 기댄 채 잠든 적도 있었다. 이제는 공연을 위해 술도 많이 줄이고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전시에 이어 28일부터 상상마당 지하 2층 라이브홀에서는 김창완, 김수철, 장기하, 잔나비 등 선·후배 음악가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너트30 페스티벌'을 연다. 전시는 사전 예약을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나 ‘너트30 페스티벌’은 유료 예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