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취임 6개월 "법률복지망 구축" 강조
올해 전 직원 연봉 삭감에 노사 협의
5년 만의 신규채용 공고 "사각지대 없도록"
"법률 문제는 하소연할 창구를 찾기부터가 어렵다. 사회적 약자는 어려움이 더 크다. 법률 서비스 접근 통로를 넓히고 상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취임 6개월을 맞은 김영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은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부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생계·의료 중심의 복지 개념을 넘어 누구나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법률복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공단은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법률복지 지원체계 구축' 협약을 체결하며 읍면동 사회복지 전달 체계와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서울 중랑구·경기 남양주시·경북 김천시와 협약을 맺었고, 전북 익산시·충남 당진시와도 협약을 앞두고 있다. 김 이사장은 "지자체가 파악한 기초생활수급자, 학교폭력 피해자, 임금체불 근로자, 소상공인 등에게 무료 법률상담과 소송 대리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며 "시범 운영 후 우수 사례를 전국으로 확산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복지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공단의 역할과 관련해 '찾아오는 구조'에서 '찾아가는 구조'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2009년부터 무변촌에 설치한 지소와 이동상담버스를 통해 운영을 하고 있지만 더욱 문턱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예를 들어 출생 미신고 아동들은 행정·복지 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지자체가 발견하면 공단이 직접 상담과 소송 대리를 맡을 수 있다. 부모 빚 대물림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성년자가 성인이 된 후 갑자기 빚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망신고 시 지자체가 한정승인, 후견인 선임 등 절차를 안내하도록 공단과 협력하면 실질적 보호가 가능하다."
공단은 매년 약 100만 건의 상담을 처리하며, 이 중 13만 건이 소송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인력과 시스템 한계로 상담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김 이사장은 "어르신들은 상속 등 생활밀착형 고민이 많다. 문턱을 낮춘 상담과 경청이 법률복지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1월부터는 'AI(인공지능) 법률 구조 서비스' 플랫폼을 가동한다. 법률구조기관과 정부기관 35곳을 연계해 상담부터 소송·조정·피해구조까지 원스톱으로 안내하는 게 핵심이다. 김 이사장은 "처음부터 AI가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접근성 문제는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유지·보수 인력 확보 등은 남은 숙제"라고 했다.
재정·인력난 해결에는 구성원들이 힘을 보탰다. 공단은 올해 9월 전 직원 연봉을 일부 감액하기로 했다. 변호사노조 대표가 임금 감액에 동의했고, 일반직 노조는 투표율 89.9%, 찬성률 86.2%로 감액 안건을 가결했다. 김 이사장은 "재정이 어려웠지만 법률복지의 중심을 다시 세우자는 구성원들의 공감과 희생 덕분에 협의가 가능했다"고 했다. 감액 재원 덕에 5년 만에 공개경쟁채용도 재개됐다. 다만 아직 공단 변호사의 보수는 대법원 규칙 상 절반에 못 미친다. 바로 상담에 응한 전화 상담 인입률도 50% 이하다. 안정적 재원 확보와 인력 확충을 위해 기부금 세액공제 도입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게 김 이사장의 진단이다.
김 이사장은 "구성원들의 희생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이제 시작"이라며 "문턱을 낮춘 법률복지망을 통해 약자의 정당한 권리 보호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생활밀착형 사회복지란 무엇인가.
“그간 주로 찾아오는 국민을 지원했다. 수혜자가 직접 방문해 신청을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약자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은 하소연할 대상 자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법률 서비스에 접근할 통로를 더 개방하고 상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기존에는 복지라고 하면 생계 유지나 의료 등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점점 누구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법적으로 소외되지 않는, 즉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른바 법률복지다. 읍면동 사회복지전달체계와 연계하면 법률복지의 사각지대가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최근 서울 중랑구, 경기 남양주시, 경북 김천시와 협약을 맺었다. 전북 익산시, 충남 당진시와도 체결할 예정이다.
-법률복지를 통해 어떤 점이 달라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파악된 기초생활수급자, 학교폭력 피해자, 임금체불 근로자, 소상공인 등 경제·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료 법률상담과 소송 대리 지원을 하게 된다. 대표 모델로 시범 운영해보고 우수 사례, 효율성 등을 확인한 뒤 실질화 방안을 마련해 전국으로 확대하고자 한다.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등이 협력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복지 정착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구상하고 있다."
-기존 방식에 한계를 느낀 바가 있었을까.
"기본적으로 상담하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을 위한 법률구조를 진행했고, 찾아오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는 이동버스상담도 있었다. 2009년부터 전국 무변촌 등에 설치한 지소에서 찾아가는 법률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사회의 기존 시스템과 연계하다 보면 더 많은 각각의 사안이나 집단 피해 등도 동시 발굴되고 지자체와 협업해서 더 큰 지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 실제 읍면동에서 직접 주민과 접촉하는 사회복지사 등의 업무와 연계된다면 충분히 더 많은 사각지대 해소가 가능하지 않을까. 직원들이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다."
-예를 들면 어떤 지원이 가능할까.
"출생미신고 아동들이 지금 행정·복지 서비스를 전혀 못 받고 있다. 2023년 법 개정으로 출생통보제가 도입됐지만 아직 미신고한 아동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럴 경우 꼭 누군가 직접 찾아와 법률 상담을 하지 않더라도 지자체에서 사례가 발견되면 법률상담, 소송대리 등을 공단이 해줄 수 있다.
부모빚 대물림 문제도 심각하다.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했으면 되는데 못 한 상태에서 미성년자가 성년자가 된 후 갑자기 빚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자체와 공단이 협력해서 사망 신고 시 미성년자에게 상속 제도를 안내하고, 한정 승인이나 후견인 선임 등 상속 관련 법률 상담을 해주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지자체와 연계가 필요하다.
산불, 수해, 임대아파트 경매, 전세사기 피해 등 많은 분이 한꺼번에 피해를 입었을 때도 법률상담을 지원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지자체와 협업하면 더 체계적인 상담이 가능하다. 보통 법률문제는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고 느끼는 게 제일 힘든 점이다. 어려움에 대해서 쉽게 하소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체 상담은 연간 100만 건으로 이 가운데 소송으로 가는 건 13만 건 정도다."
-굳이 찾아오지 않았던 고령층 상담도 늘어날 것 같다.
“어르신들이 상속 문제 등 생활밀착형 고민이 많다. 상담과 경청이 법률복지에서 아주 중요하다. 다만 저희가 여러 인력적 한계 등으로 지금도 접수되고 있는 상담을 다 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상황이다."
-AI 기반 플랫폼도 추진 중인데.
"내년 1월부터 법률 구조 서비스 플랫폼을 선보인다.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법률구조기관 및 정부기관 35곳이 법률 상담, 소송 대리, 구조, 조정, 피해구조를 원스톱으로 안내한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내가 어려울 때 어디에 뭘 신청해야 할지 알기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대한법률구조공단, 가정법률상담소, 신용회복위원회 등 기관별 연계 플랫폼에서 찾아보도록 하면 해당 서비스를 한곳으로 안내하는 게 가능하다. 또 35개 연계기관 서비스의 기존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시중의 AI 법률서비스에 비해 환각 현상을 대폭 줄여서 답변할 수 있도록 구축하고 있다. 초기 단계에서 대폭 간편해지고 법률 서비스 접근성이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처음부터 모든 것을 AI로 해결하긴 어렵다. 유지·보수나 이용 과정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담당 인력 배치, 대국민 홍보 등도 필요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다."
-재외 동포 법률구조도 개선 중인데.
"재외동포가 국내 현안을 해결하려고 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데 수요 자체가 아주 많지는 않다. 다만 계속 수요가 늘 수 있다고 생각해 재외동포청과 업무협약을 추진 중이다. 변호사의 업무 영역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공단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중위소득 125% 이하의 국민인데, 재외동포의 경우 이를 입증하는 절차가 복잡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관련 대책을 재외동포청과 협의해 강구할 계획이다. 일본의 경우 총영사, 재일 민단 등과 연계돼 세미나를 열고, 생활상담센터 등에서 현지법 관련 상담을 하기도 했다. 다른 국가에도 확대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
-검찰 개혁, 사법 개혁 국면에서 공단의 역할은 어떻게 보나.
"우리 법조계가 여러 반성과 생각을 하면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률 관계 업무는 기본적으로 경청, 배려, 희생이 필요한 분야인데 그간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구성원들에게도 경청을 많이 요청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의 정당한 권리가 보호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전 직원 연봉 삭감의 배경은.
"공단이 재정적으로 아주 오래 어려운 입장이었다. 제 입장에선 직원들 연봉을 감액했다는 건 책임을 져야 하는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공단 직원들이 큰 희생을 감내해주셨다. 정말 고마웠고 미래를 위해 그리고 국민들의 신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재정 위기가 반복되고 인력 문제가 이어지면 사회적 약자 보호 및 지원이 점점 힘들어지지 않겠느냐'는 고민에 많이 공감한 것 같다. 변호사 노조는 두 번이나 임금 감액에 동의해줬고, 일반직 노조는 투표율 89.9%에 86.2%의 압도적 찬성으로 임금 감액을 동의해 주셨다. 그만큼 구성원들 의식이 선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 직장을 선택한 분들이다. 작은 희생을 감내해서라도 법률 구조 서비스의 중심 기관으로서 다시 일어서자는 마음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재정 건전성이 일정 부분 해소됐나.
"그간 퇴직적립금이 부족했던 구조적 문제가 심각했다. 이번 감액을 통해 마련된 재원으로 퇴직적립금을 우선 해결하고 나머지 상당 부분은 신규 직원 채용이 가능해졌다. 공개경쟁채용은 5년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필요한 상담과 소송 수요를 인력 부족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는 전화가 걸려오면 실제 저희가 20초 내에 받아 대응할 수 있는 상담 인입률이 50%에 못 미친다. 1년에 전화 상담은 47만 건인데 여러 한계로 올해도 전년 대비 10% 줄어든 수치다. 동시에 또 다른 47만 건 정도는 전화가 왔는데도 응답하기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면접 상담도 예약제로 할 수밖에 없는데 41만 건 정도가 이뤄지고 마찬가지로 지난해 대배 2.3% 정도 줄었다.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고 개인회생, 파산 사건 등은 상당히 상담 요청이 늘어나는 추세다. 공단의 개인회생 파산 지원은 4.2% 줄었다. 국민들이 겪는 사건 수는 늘었는데 모두 응대하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전체 법률 상담은 6.4% 줄었다. 공단의 인력 충원이나 이를 위한 재정건전성 안정화 등이 아주 중요한 상황이다."
-그 밖에 다른 개선 사항은.
"지속적인 서민 법률복지 지원을 위해서는 공단의 재정안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공단 변호사 보수가 대법원 규칙 상 보수의 50%에도 못 미친다. 기획재정부, 법무부와 많은 협의를 해나가고 있다. 안정적 지속적 수익 조달을 위해 공공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수익사업이 있을지도 검토 협의 중이다. 소액기부 활성화를 위한 세액공제 등이 가능해지면 국고도 절약하고 재정 건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임금, 경상비, 사업비 등이 경직돼 있어 관련 예산 편성의 자율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많은 요청을 드리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단기적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확보했지만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법률복지의 중추기관으로 국민께 기여하는 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세계화도 빠르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특히 법률 분야는 여러 예측 불가능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정당한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법률복지 실현 시스템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 법률 서비스 문턱을 더 낮추고 접근성과 편리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