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 칼럼] 누가 그들을 캄보디아로 가게 했나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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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 유혹에 넘어간 청년 범죄 취업
좋은 일자리 부족에 투기 부추기는 사회
노동의 가치 존중하는 세상 만들어야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들이 20일 충남 홍성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범죄 피해자냐 피의자냐. 캄보디아 송환자를 향한 엇갈린 시선이다. 국민의힘은 ‘범죄자 송환 쇼’라고까지 비난했다. 하지만 한국이 ‘땀 흘려 돈을 벌라’고 꾸짖을 수 있는 사회인가? 각자도생에 내몰려 투자와 투기가 구분 안 되는 로또 사회가 아니었던가. 대포통장을 들고 캄보디아에 갔다가 사망한 대학생, 그를 캄보디아에 보낸 알선책과 모집책 모두 20대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끝나지 않을 문제를 우리는 안고 있다. 13개월째 20대 고용률이 하락(9월 고용 동향)하는데 위험자산 투자를 대안인 양 내세운 정치 부재의 문제다. 심화하는 불평등 문제다. 노동 멸시의 문제다.

부동산에서 수십 억 원의 불로소득이 솟는 것을 목격한 후 주식과 코인 투자는 사회초년생, 취준생, 대학생에게까지 번졌다. 정치는 개미 여론에 영합했다. 여당이 7월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을 원상복구(보유액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하려다 좌초한 것을 보라. 반대 국민청원 동의에 14만 명이 몰렸는데 정작 대다수는 과세 대상이 아니다. 기준이 10억 원이었던 2023년 양도소득세 신고자는 3,359명에 불과했다. 대주주들이 세금 부담 때문에 주식을 팔아 주가가 하락할지 모른다는 (근거도 불분명한) 공포가 부자 과세 반대로 이어졌다. 이건 조세 저항이 아니다. 과열된 투기 심리다. 공매도를 재개할 때도, 코인시장 규제를 도입할 때도 그랬다. 개미투자자들은 국회의원에게 건전한 시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주식투자도 안 하면서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위원이냐고 비난한다.

현실을 이해할 수는 있다. 지난해 큰아이가 직장 가까운 곳에 살려고 서울 전세를 알아봤을 때, 경기도에서 23년간 같은 집에 살아온 나는 경악했다. 방 하나 보증금이 내가 팔고 떠난 아파트값이었다. 물려받을 게 없으면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해졌다. 서울이 아니면 변변한 일자리가 없다. 그런 이들에게 주식과 코인은 자산 형성의 마지막 기회이고, 규제와 과세는 가진 자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인 것이다. 이조차 여력이 없거나 실패한 이들에겐 가능한 선택지가 '캄보디아 범죄 취업'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청년들을 갉아먹는 일자리는 우리 안에도 있다. 책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윤지영 지음∙클 발행)에서 핸드폰 판매원으로 성실히 일하고도 회사의 위약금 떠넘기기로 수천만 원 빚더미에 앉은 20대 여성의 사연을 읽고 나는 질식할 뻔했다. “노조의 기득권은 젊은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약탈 행위”라던 윤석열 정부는 노조를 깨부수면서 젊은이들을 위해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문재인 정부는 사회초년생을 악랄하게 착취하는 사업자를 왜 감시하지 못한 건가.

이재명 대통령이 내건 ‘코스피 5000’ 희망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근본적 해법은 노동을 존중하고 제대로 보상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일자리 격차를 좁혀 대기업 정규직에만 목매지 않아도 되는 취업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머니 무브에 앞서, 노동소득분배를 늘리고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노조와 임금을 억누르는 것이 성장의 비법이라는 착각은 벗어날 때가 됐다. 1950~70년대 초반 자본주의 황금기는 생산성 증가의 과실을 노동자와 공유해 임금소득-소비-투자가 선순환한 결과가 아니었던가.

나는 이 대통령이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로 가자”는 메시지를 내 주기를 바란다. 산재를 직접 챙기며 경각심을 높인 그 의제설정의 힘을 여기서도 발휘하면 좋겠다. 정당한 임금은 비용이 아니라 생산성과 소비 진작의 토대가 될 것이다. 기업과 노조의 동반자 관계야말로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고선 청년 문제 해결도, 경제 성장도 불가능하다. 캄보디아 사건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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