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수조 달러 美로 들어와야 공정”
부총리·주미대사 “트럼프가 최종 결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인 한국도 미국을 불공정하게 대해 온 것은 중국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다시 드러냈다. 관세 인하 대가로 선불 방식의 대미 투자를 받아야 공정하다는 입장을 재천명한 셈이다. 다만 19일 귀국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미 간 관세 협상과 관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적보다 친구 나빠” 7월 상황 재연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회담을 취재하던 백악관 기자들에게 이달 말 한국에서 개막하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예정이라고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한테 아주 심하게 이용당했다. 매년 중국에 (무역 적자로) 수천억 달러(수백조 원)를 잃었다. 따져 보면 우리가 그들의 군대를 키워 준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 안보와 연결해 관세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 국가 안보는 관세 덕에 굳건하다. 관세가 없었다면 국가 안보도 없었을 것”이라면서다. 열흘가량 뒤 시 주석과의 대좌를 앞두고 협상에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망을 최대한 이완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 가능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때리기’는 중국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느닷없이 “우리가 더는 어리석지 않다”며 “유럽연합(EU)도 일본과 한국도 (미국을 이용한 나라에) 포함된다. 이들 나라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공정하게 대우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들이 적보다 더 나쁜 경우가 많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관세 폭탄을 투하했던 7월 상황이 재연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정성 구현 수단은 대규모 대미 투자 유치다. 그는 “’공정하게’라는 것은 미국으로 수천억, 조 단위 달러가 들어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관세 인하로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준 만큼 제대로 값을 치르라는 뜻이다.
미중 경제수장 통화, 정상회담 준비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세 미국 동맹 중 가장 난감한 곳은 아직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한 한국이다. 가뜩이나 지난달 25일에 이어 15일에도 관세 인하 반대급부인 한국의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투자금을 선불로 받는다고 재차 언급한 터다.
일단 한국 정부는 미국측의 기류 변화를 시사했다. 관세 협상을 위해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에 갔던 김 실장은 19일 귀국 길에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미 협의를 통해 대부분 쟁점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며 "대부분 쟁점에서 상당한 의견 일치를 봤다"고 말했다. 앞서 16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한국 외환 형편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양국 재무장관끼리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시사했다.
하지만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요지부동이면 무의미하다. 구 부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협상 결과가 늘 불확실하다고 했다. 강경화 주미대사도 17일 미국 뉴욕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주요 외교 현안은 정상 차원의 의지와 결정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수는 미중 무역 협상이다. 갈등 수위가 올라갈 경우 미국 입장에서 동맹과 불화를 빚어 좋을 게 없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5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에 맞서 동맹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베선트 장관은 17일(중국시간 18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화상 통화를 하고 미중 정상회담 준비에 시동을 걸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양측이 조속히 무역 협상을 개최하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베선트 장관은 엑스(X)에 “솔직하게 대화했다. 다음 주 직접 만나 논의를 이어 갈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