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위·형사고발에도 공익신고 보호 못 받아
불이익 실제 벌어진 이후에야 보호 가능하다?
연구원, 노동부 감독서 PC 등 증거인멸 정황
자신이 다니던 회사 간부들의 비위 정황을 내부고발한 후 보복에 시달리다가 최근 세상을 등진 20대 청년 노동자가 생전에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 보호조치'를 신청했으나, 1년 간 대상자 판단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법상 보호조치 신청 후 처리기한은 최대 90일이다.
내부고발 후 당사자는 '비밀엄수 위반'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는데, 실제 징계 조치가 내려지지 않는 한 '불이익'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당사자는 회사 간부, 가해 상사로부터 '보복성 소송'도 당했지만 이 역시 공익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으로 간주되지 않는 제도적 맹점이 있었다.
보호조치 인용·기각 여부 판단을 미루던 권익위는 올해 5월 징계위 결론이 무혐의로 나자 뒤늦게 "보호조치 신청을 취소해달라"고 먼저 요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신고자 동의 없이 사건을 '자진 취하' 형식으로 종결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권익위, 지난해 공익제보자 보호 단 1명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한국지방세연구원 2년차 직원이던 김민석(가명·사망 당시 29세)씨는 지난해 초 연구원 부원장, 간부 등이 연루된 '보고서 평가 점수 조작' 정황을 우연히 알게 돼 이를 피해 동료 직원들에게 알렸다. 지방세연구원은 지방자치단체 용역을 받아 연구하는 기관인데, 박사급 연구자들은 보고서 점수에 따라 재계약 여부가 결정된다. 그런데 일부 연구자들을 의도적으로 해고하기 위해 점수를 조작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2312130004454)
내부고발 이후인 그해 5월, 연구원은 민석씨를 사내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비밀엄수·품위유지의무·집단행위금지 위반'이 이유였다. 이에 민석씨는 6월 권익위에 공익신고자 보호조치(불이익조치 금지)를 신청했다. 당시 신청서에서 그는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오직 공공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 게 연구원에 심각한 손해를 입힌 것이면 그 누가 약자를 위해, 피해자를 위해, 공익을 위해 나서겠냐"고 호소했다. 민석씨와 함께 징계위에 회부된 A박사 역시 보호조치를 신청했다.
그러나 이후 1년이 거의 다 되도록 권익위는 민석씨와 A박사에 대한 보호조치 인용·기각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두 번 연구원 측에 '불이익 조치 금지 의무'를 안내하는 공문만 보냈다. 보호조치 여부 결론이 안 난 사이 민석씨는 징계 가능성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회사 간부들이 비위 증거를 녹음한 그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사측은 '경찰 수사에 따라 징계하겠다'며 징계위 판단을 보류해서다. 통비법 위반은 수사 결과 무혐의였다.
권익위는 두 차례 '경고성 공문'을 보내는 게 최선이었다고 설명했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절차상, 징계위에 회부된 것 자체는 불이익이 실현된 것으로 볼 수가 없어 '보호 대상자'로 판단할 수 없었다는 해명이다. 또한 공문 발송 외에도 유선상으로 지방세연구원 측에 공익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금지 의무를 안내했다고 덧붙였다. 현행법상 '부패행위 신고'에 대해서는 실제 불이익이 발생하기 전에도 징계위처럼 불이익 절차에 대한 '일시정지 신청'이 가능한 반면에, 공익신고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일종의 가처분인 일시정지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권익위의 소극적인 대응은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공익제보자 보호 수준을 보여주는 '인용률'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많다. 참여연대가 이달 9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접수된 보호조치 신청 처리 490건 중 인용 사건은 36건(인용률 7.3%)에 불과했다. 인용률은 2021년 14.3%, 2022년 15.9%였으나 윤석열 정부 시기인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1건만 인용되어 1% 미만으로 급락했다. 또 신청 후 결론이 90일(60일 이내 처리·1회 30일 연장) 내로 나와야 하지만, 인용·기각까지 실제 처리 기간은 보호조치의 경우 125일이었다.
보복성 소송은 '금지 대상'에 포함 안 돼
권익위는 보호조치 신청 이후 11개월이 지난 올해 5월, 징계위 결론이 '불문(무혐의)'으로 나오자 민석씨와 A박사에게 "불필요한 행정력 소비를 방지하기 위해 신청한 사건의 취소를 부탁한다"며 먼저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A박사는 취하에 동의 의사를 밝힌 적이 없음에도 올해 6월 민석씨와 함께 신고 사건이 취소됐다는 게 의원실 설명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상 '보복성 소송'이 불이익조치 정의에 포함되지 못한 것도 제도의 맹점이라는 비판이 크다. 징계위와 별도로 민석씨는 괴롭힘 가해 부장에게서 보복성 고소, 회사 간부들로부터 통비법 위반 혐의 고발을 당했는데 이게 '불이익조치'로 인정됐다면 빠른 구제가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석씨는 각종 소송에 휘말린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다가 지난달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직전 그는 한 국회의원실에 도움을 요청하며 "정말 지옥을 살고 있다. (가해 부장이) 역으로 고소한 것도, 소송을 길게 끄는 것도 제 힘든 상황을 알아서 그러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정문 의원은 "고인은 보호 울타리 안에 있어야 했지만, 권익위의 무책임 속에서 홀로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다"면서 "공익을 위해 나선 이들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겪지 않도록, 권익위는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제도 전면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0109440002949)
한편, 최근 고용노동부가 지방세연구원을 상대로 벌이는 '특별근로감독'에서 증거인멸이 벌어진 정황도 나왔다. 전날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구원이 근로감독에 비협조적이고 증거를 은폐·훼손한다는 의혹이 있다"면서 "사건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최초 괴롭힘 가해자의 PC 하드디스크가 아예 사라지고, 인사부장 등 관리자들 PC도 노동청에 임의제출을 거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